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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첫 번째 이야기였던 경주양동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안동하회마을을 소개해본다.

2008년 경북 청송으로 여행을 다녀오던 길, 말로만 듣던 안동하회마을을 경유했다. 별 기대감 없이 무심코 찾아간 그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나고 행복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판, 고즈넉한 옛가옥들이 너무나도 정겨웠던 흙담길, 색색으로 물들어 더욱 멋스러웠던 2년 전 가을의 안동하회마을을 추억하며 다시 그곳을 찾았다. 2년 전 그곳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여행지였고, 이번 여행은 한국관광공사에서 마련한 체험행사로 많은 여행가들과 함께하는 여행지다.

도착하기 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안동하회마을의 모습이 속세에 물들어 변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10월 31일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걱정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많은 인파로 인해 예전의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곳의 풍경은 여전했다. 변치않음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지켜준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생겨났다.

안동하회마을 찾았으면 '부용대'엔 꼭 올라야

안동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양동마을이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씨족이 경쟁을 이루며 번성시킨 마을이라면, 안동하회마을은 풍산 류씨들이 홀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안동하회마을의 '하회(河回)'는 '강이 휘돌아 흐른다'는 뜻이며,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된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멀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굽이진 흙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린 후 멈춘 곳은 화천서원 앞이다. 서원앞에 세워진 목판에 '부용대 450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1,2,3......450!"

화천서원 대문 앞에서 부터 시작되는 길을 따라 450보를 내딛는 순간 부용대에 이른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안동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안동하회마을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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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올라서니 오르막길을 걸어와 숨이 차오르지만 '안동하회마을을 찾고도 부용대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다시 안동하회마을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절실히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회마을의 지형을 '산태극 수태극',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하는 이유는 부용대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실감할 수 없다. 산과 강이 태극모양처럼 마을을 감싸 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고운 백사장과 겸암 류운룡이 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소나무들이 백사장을 따라 서있는 만송정의 모습 또한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하회마을의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담기 위해 절벽에 발을 걸치다시피하고 서 있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아찔하다.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회마을의 전경을 담고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와 화천서원으로 들어선다. 안동하회마을 주위를 감도는 낙동강은 마을의 주산인 화산의 이름을 따 '화천'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화천의 이름을 따 서원의 이름을 '화천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화천서원
 화천서원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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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서원은 겸암 류운룡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사당 경덕사를 지으면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강당인 숭교당, 문루 지산루를 지으면서 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서원 뒤쪽에 들어서니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어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가 이곳의 운치를 더해준다.

옥연정사의 서당
 옥연정사의 서당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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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서원을 나와 그곳을 끼고 오른쪽 길을 쭉 따라가면 옥연정사를 만날 수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는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하회의 풍광을 느끼며 조용히 살아가기 위해 부용대 아래 터를 잡고 지은 가옥이다.

대문 옆으로 땔감들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에서 삶의 흔적이 드러난다. 옥연정사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당으로 지어진 옥연서당을 비롯하여 별당, 안채, 문간채의 모습을 차례대로 만나볼 수 있다. 현재에도 실제로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병산서원
 병산서원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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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에 올라 찾은 곳은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풍산에 있던 풍산 류씨 가문의 서당 풍악서당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부터 기원한다. 류성룡을 따르던 제자와 유학자들이 그를 모시기 위해 사당인 존덕사를 세우고 강학공간과 제학공간을 갖추면서 서원으로 격상되었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의 형상을 따라 이름지어진 병산서원은 화산을 사이에 두고 하회마을과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 뒤쪽에 들어서니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어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가 이곳의 운치를 더해준다.

가짜 제사상을 마련해 즐겼다는 '헛제사밥'

헛제사밥과 안동간고등어 그리고 안동식혜
 헛제사밥과 안동간고등어 그리고 안동식혜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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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주차장에서 하차한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옥류정이라는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안동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헛제사밥과 안동간고등어 그리고 안동식혜다. 예전 밥과 음식이 귀했던 가난한 시절 제사 때만은 풍부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고, 이에 거짓으로 가짜 제사상을 마련해 즐겼다는 데서 유래된 헛제사밥은 학자들이 많았던 안동이 그 시초이다.

식당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우리가 방문한 옥류정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과 나물을 더한 비빔밥과 맑은 두부국이 나온다. 제사를 지낼 때 먹어오던 음식들이라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비빔밥은 약간 심심하다. 원래 그렇게 먹는거라는 말에도 빨간 비빔밥에 익숙한 사람들은 종업원에게 고추장을 요구한다.

안동의 두번째 별미 안동간고등어는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소금으로 간해진 고등어구이가 다 비슷하겠지만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껍질을 들추면 속살은 부드럽고 담백하면서도 촉촉하다.

식사가 끝나고 안동식혜가 식탁에 올려진다. 우리가 먹던 하얀 식혜와는 그 모양부터가 다르니 신기하면서도 살짝 거부감이 든다.

일반 식혜는 끓여서 만들지만 안동식혜는 발효를 시켜서 만든다. 찹쌀과 무,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엿기름을 얹은 물과 버물려 따뜻한 곳에서 삭히는 것이다. 그 맛은 시큼한 동치미국물에 찹쌀을 넣은 것과 비슷하며 거기에 생강맛을 살짝 더했다면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달달한 일반 식혜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너무 생소해 한 입 먹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친 후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사람들 발길 붙잡는 다양한 표정의 장승들

하회마을 입구의 장승들
 하회마을 입구의 장승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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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하회마을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하회장터에서 시내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관광공사에서 주최한 행사로 많은 인파들이 버스로 몰려 버스가 혼잡하다는 핑계삼아 걸어가보기로 한다.

하회장터에서 하회마을까지는 버스로는 5분, 도보로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버스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이며, 굳이 걸어서 가야할만큼 특별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하회마을입구에 들어서니 언제나처럼 가장먼저 장승들이 우리를 반긴다. 2년 전에 비해 그 개수가 늘었다.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한 장승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거리게 만든다.

안동하회마을의 가을
 안동하회마을의 가을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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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 뒤를 쫓지만 두번째 방문인 나는 좀 다른길을 걷고 싶다. 마을의 전통, 역사 이야기보다는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즐기며 하회마을의 가을에 취하고 싶어 호젓한 길을 선택했다.

안동하회마을의 가을은 2년 전의 그것과 변함이 없다. 황금빛 들판을 지키고 서 있는 허수아비는 얼마만인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슬쩍슬쩍 스쳐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이 솟아난다. 이미 부지런한 주인 덕에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볏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가집 처마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들을 발견하고서는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고 이런 풍경들이 홀로 걷는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안동하회마을에는 유난히도 감나무가 많다. 집안에도 감나무, 골목길에도 감나무, 밭에도 감나무, 교회앞에도 감나무… 온통 감나무 천지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못해 메말라보이는 몸뚱이에 고운 감열매가 하나씩 달려있는 모습이 마치 꼬마전구가 달려있는 것처럼 보여 너무 예쁘다. 고즈넉한 시골풍경에 절묘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어진다.

노비들에게 초가집 지어주고, 동네 사람들과 나눔 실천한 '북촌댁'

북촌댁
 북촌댁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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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을의 정취에 취해 걸으면서도 딱 한곳,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곳이 있다. 하회마을로 오는 버스안에서 주최측에서 나눠준 책자를 살펴보던 중 그 훈훈함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던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답게 안동하회마을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굳이 나열을 하자면 앞서 설명한 화천서원, 옥연정사, 병산서원을 제외하고서도 양진당(보물 제 306호), 충효당(보물 제 414호), 남촌댁(중요민속자료 제90호), 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작천고택(중요민속자료 제87호), 하동고택(중요민속자료 제177호),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 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 빈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차가워진 내 맘을 녹인 곳은 북촌댁이라는 고택이다. 책자에 소개된 여행작가 한은희님의 글에 의하면 이 북촌댁은 '나눔과 배려를 실천한 집'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사랑채에서 부인이 머무는 안채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동할수 있도록 문을 낸 것,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아이가 안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몸집에 맞는 작은 문을 내어준 것 등은 가족간의 사랑이 느껴져 따뜻하다.

또한 큰사랑채 '북촌유거'를 짓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목재를 홍수 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죄다 밀어넣고, 남은 것은 불을 붙여 주위를 밝히는 데 사용했다니 집주인의 훈훈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담장 밖으로 화장실을 내어 급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이용하게 한 점, 노비들이 머무는 행랑채를 없애고 인근에 그들만의 초가를 지어 노비들에게도 밤 시간만큼은 가족끼리 지내도록 배려한 점, 소작인들과 수확을 반반씩 나눈 점 등은 그 시대에서는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니, 글로나마 그 시대를 알았던 현대인들에게도 무척이나 파격적인 일이다.

'몇년도에 지어져 몇년도에 보물 몇호로 지정되었다'와 같은 다소 공식적인 배움보다는 때로는 이런 소소한 생활상의 배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북촌댁 앞마당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옛 주인장의 하해와 같은 마음씨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북촌유거 뒤쪽을 돌아 하회마을을 닮아 하회소나무로 이름지어진 나무를 찾아보자.

올해로 두 번째 방문인 안동하회마을. 양반의 곧은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너무나도 점잖아보이는 마을이지만, 은은하게 풍겨오는 사람 냄새도 느껴지는 이곳.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안동하회마을,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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