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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깊어 겨울로 달려가는 길목에서 꽃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식물은 사계의 모양새가 다르기에 꽃이 지고 잎이 색을 달리해 가는 이 계절에도 볼거리가 많다.

 

지난 10월 27일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지만 유물과 유적은 뒷전으로 하고 야생식물들을 보려고 둘레 정원만 돌았다. 박물관 정문 입구에 있는 거울연못 오른쪽 숲길로 돌면 야생식물단지다. 박물관에 전통염료식물원이 있다는 것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도톰한 잎에 키 작은 보라색 '해국'이 노란 '산국'하고 어울려 피어있다. 늦가을에 돋보이는 국화과 꽃들이다. 바닷바람과 바위틈의 열악한 환경을 비웃듯 고고히 자라는 해국이 도심 복판 원예용 화단에 심겨져 있으니 오히려 안쓰러워 보인다. 잎을 만져보니 끈적끈적 하다. 바닷가의 해국은 끈적거림이 더 심하다고 한다. 


국화과인 '사데풀', 이름도 처음 들어 본다. 노란 꽃에 씨앗은 털모자의 방울 같다. 만져보니 삽살개 털을 만지는 느낌처럼 부드럽다. 만져진 씨앗은 자손을 퍼뜨리려고 풀풀 하늘로 날았다. 잎은 고들빼기처럼 썼다.

 

'고광나무', '병아리꽃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꽃은 없다. 내년 봄에 오면 장관이겠다면서, 야생식물달력을 만들면 어디에 어떤 나무, 어떤 풀들이 있는지 찾아다니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한다.


생긴 모양과 향이 좋아 '정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안내판이 꽂혀있다. 5월에 꽃이 피고 우리나라 자생특산물이란다. 향이 좋다고 하나 꽃이 없으니 느낄 수 없어 잎이라도 입에 대 보았다. 그런데 어찌나 쓴지 시간이 지나도 입안에서 쓴맛이 솟았다. 한 회원은 첫사랑맛보다 더 쓰다는 표현을 쓴다.

 

'오죽'(검은 대나무) 숲도 있고, 잎 하나하나 빠짐없이 골고루 붉게 단풍든 '복자기' 나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일본사람들은 물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귀신의 눈병까지 고칠 정도라고 해서 귀신의 안약나무라고도 한단다. 루페로 들여다보니 보실보실 털이 나있다. 그것 때문에 잎이 폭신하다. 그 앞에 서니 사람도 함께 물들어 간다.

 

 

노란 산국이 지천이고 말끔히 쭉쭉 뻗은 금강송의 숲도 가을나들이 온 우리들을 반기는 듯하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있기에 이 길은 참으로 호젓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제가 여러분들 보여주려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강사의 농담을 들으며 얼키설키 헝클어져 있는 억새 숲 아래를 들쳐 보인다. 갈색 숲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보라색 꽃이 화려하게 드러난다. '용담'이다. 야생초 동아리 회원 중에 '용담'이라는 인터넷 별칭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도대체 용담이 어떻게 생겼기에 자신의 별칭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했었다. 아름답고 신비해 보였다. 아마도 많이 심겨져 있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용담은 용담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통꽃이다. 한방약제로 쓰이는데 용(龍)의 쓸개처럼 맛이 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도대체 누가 용의 쓸개를 먹어 보았을까?

 

 

전통염료식물단지 옆에 온실이 있다. 우리는 식물원인줄 알고 들어가려고 했더니 박물관에 심겨져 있는 식물들의 생장을 연구하는 곳이지 식물원은 아니란다. 염료식물단지에는 염료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와 풀들의 잎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부석부석해 보인다.


그중에 온통 붉은 줄기로 변해 버린 '쪽'이 보인다. 초록색의 잎을 말리면 짙은 남색이 나오고 그것으로 옷감을 염색하면 빛도 곱고 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출어람'의 고사 성어를 만들어낸 푸른빛을 보기위해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디풀과의 여뀌속이라 꽃이 피었던 흔적을 보니 꼭 여뀌처럼 생겼다.

 

 

'수영'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수확, 늘 궁금했던 풀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댁은 소금강 줄기가 흐르는 강원도 깊은 산골이었다. 어릴 때 그곳에서 잠깐 살았었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의 놀이터는 소금강 강가였다. 물속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자갈밭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했다. 그럴 때면 바위에 낀 이끼에 침을 뱉어 돌로 문질러(이끼가 붉은 색으로 변한다.) 손톱에 물을 들였다. 마른 뒤에 벗기면 봉숭아물처럼 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붉게 물들었다.


그러고 놀다 보면 입이 궁금해진다. 그러면 강둑으로 올라가 새콤한 맛의 풀을 뜯어 먹었다. 우리는 그것을 시금치라고 했다. 아주 어렸을 때라서 그 풀이 어떻게 생겼던 건지 기억에 없지만 맛은 잊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뜯어먹고 그 맛을 기억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줄기 끝에 붙은 잎이 귓불처럼 생겨서 잎끼리 서로 겹치는 모양의 풀을 먹어보라고 강사가 권하는데 바로 그 맛이다. 수영, 일명 시금초. 우리가 시금치라고 했던 것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반가워서! 다른 사람들은 맛만 보고 뱉어 내는 것을 그대로 씹어 삼켰다.

 

우리나라 산야에 흔하게 있는 풀이라는데 모양을 기억 못하고 있었으니 알아볼 수가 없었던 거다. 뿌리를 이용하여 황색의 염색재료가 된단다. 이전에 맛보았던 열매들의 쓴 맛을 일거에 휩쓸어 가버린 수영. 그 새콤한 맛이 옛날을 더듬게 했다.


태그:#마들꽃사랑회, #국립중앙박물관, #수영, #사데풀, #전통염료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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