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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벌써부터 찹니다. 추운 날씨에도 막사에서 생활하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길 원하는 이들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투쟁이며, 두 번째는 현대차 하청업체인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투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홍대 두리반에서 철거 반대 투쟁을 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세 가지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기자 말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
▲ 두리반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
ⓒ 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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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 식당 앞 벽에 붙어있다.
▲ 두리반 두리반 식당 앞 벽에 붙어있다.
ⓒ 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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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개최 도시인 서울, 그 중심인 마포구 동교동 41번지 칼국수·보쌈 전문점 두리반은 11월 1일부로 농성 312일, 단전 104일째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새벽 1시경 GS건설의 시공사인 남전디앤씨 직원과 철거업체 직원이 전기계량기를 고의적으로 철거해 버리는 바람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그래도 인근 지하철 공사장 과장이 두리반에 전기를 빌려주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21일, 남전디앤씨는 주변에서 지하철공사를 하는 포스코 하청업체인 한영토건에 공문을 보내 '두리반 농성장에 전기 공급을 계속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하여 근근이 유지되던 전기마저 끊겼다.

시공사가 주인 유채림씨 부부에게 제시한 돈은 보증금 1300만원과 이사비용 300만원이 전부. 2005년 시설투자비 1억 300만원을 내고 연 두리반을 이사비용 300만원만 받고 쫒겨날 수는 없어 유채림씨 부부는 314일 째 이 힘겨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의 두 번째 겨울

두리반을 바라보는 유채림 소설가
▲ 두리반 두리반을 바라보는 유채림 소설가
ⓒ 작은용산 두리반 다음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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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자 두리반 주인이자 소설가 유채림씨는 걱정이 크다. 지난해 겨울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추위에 떨며 힘겹게 지켜낸 농성장이었다. 유채림씨는 겨울을 대비해 연탄 1000장과 연탄난로를 들였다.

하지만 옥상에 설치된 5개의 태양열발전 패널로는 연탄가스배출기를 돌리기가 여의치 않다. 혹시라도 배출기가 작동을 멈추면 곧바로 질식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리반에는 상근자 몇 명이 항상 숙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채림씨는 겨울이 오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에너지 기본권에 전기는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기초에너지로, 사람이 살거나 영업행위를 하는 한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지구단위개발계획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유채림씨는 시공사가 주는 300만원 이사비용을 거절하고, 버티고 있는 철거민으로 분류되어 전기조차 공급받지 못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자가 두리반을 방문한 날은 모처럼 날씨가 따뜻했다. 사장인 유채림, 안종녀씨 부부, 두리반 상근자인 유봉주씨와 활동가들, 문화예술인 그리고 두리반 죽돌이, 죽순이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토요일 자립 음악회를 함께 보고, 새벽까지 두리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화운동 거점지로 변한, 식당 두리반

공연을 하고 있는 레나타 수어사이드
▲ 두리반 공연 공연을 하고 있는 레나타 수어사이드
ⓒ 레나타 수어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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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열리는 두리반의 모든 공연은 경유 발전기 전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조명도 10W 알전구가 전부이다. 전력이 불안정하고, 농성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지만 실력과 창의력을 겸비한 자립 예술가들의 공연이기 때문에 분위기는 좋다. 무대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고 갑자기 전원이 끊길 염려도 없다.

연탄을 집고있는 유채림 소설가
▲ 두리반 연탄을 집고있는 유채림 소설가
ⓒ 작은용산 두리반 다음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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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순서로 공연을 한 그룹 레나타 수어사이드의 람혼씨는 "두리반에서 공연을 하면 정치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들을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공연장에서 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 있어요.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지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리반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과 활동가들이 노동절에 기획한 '5월 1일 뉴타운 컬쳐 파티'는 수천명이 다녀갔고, 두리반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포크음악노동자이자 자립음악가인 단편선씨는 "두리반을 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10대나 20대나 운동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화적인 목적으로 두리반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여기에선 꼭 정치적인 것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서로에게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해요. 단점이라고 하면 두리반이 좀 특화된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40~50대나 기존에 운동을 하시는 분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떨지마 두리반, 우리가 지켜줄게

두리반 '작은 용산'의 밤. 알전구 하나가 두리반 식당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다.
▲ 두리반 두리반 '작은 용산'의 밤. 알전구 하나가 두리반 식당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다.
ⓒ 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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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농성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유채림, 안종녀씨 부부와 1년 동안 함께 한 이들은 문화 예술인, 인권 활동가, 두리반에 공감하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마포구청과 한국전력 그리고 국가인권위는 "민간 기업이 담당하는 공사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 하였다. 두리반에 지원방문을 온 구로구(가명)씨는 "두리반을 관심 갖고 찾아주는 사람들과 상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GS건설로부터 두리반을 지켜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두리반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류한주 감독은 "두리반에 오는 사람들은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억지로 찾는다면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촛불 집회의 경험을 갖고 있는 거예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사회현실을 얘기하고, 공유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어갑니다"라고 말했다.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이 갖고 있는 운동 방식이다.

자정을 넘을 무렵 단편선씨가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두리반 농성장에서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축하했다.

늦은 새벽 두리반 건물 2층 구석 쇼파에서 잠을 잤다. 아직은 겨울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잠을 자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곧 있으면 두리반의 두 번째 겨울이 온다. 또한 GS건설의 시공사인 남전디앤씨가 농협으로부터 빌린 520억 원의 지급보증 만기일이 올 12월이다. 올 겨울을 보내는 것이 유채림씨 부부와 두리반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걱정이다.

"두리반이 승리해야, 미친 재개발 광풍도 멈출 것"
[인터뷰] 두리반 사장인 안종녀씨의 남편, 소설가 유채림
두리반 사장이던 안종려씨의 남편인 유채림 소설가.
▲ 유채림 소설가 두리반 사장이던 안종려씨의 남편인 유채림 소설가.
ⓒ 작은용산 두리반 다음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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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 사장인 안종녀씨의 남편 유채림 소설가를 만났다. 소설을 쓰며 살던 유채림씨는 312일째 재개발 광풍을 맞은 한국 사회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 남전디앤씨 직원들이 작년 12월 26일 전기를 끊을 때 사전 통보를 했었나요?
"없었어요. (내가 가게) 안에 있었는데, 전기가 뚝 끊겨서 밖으로 나가봤죠. 남전디앤씨 직원과 철거업체 직원이 도망을 가는 거야. 당시에 동료들도 같이 있어서 잡으러 갔지만 못 잡았어요. 씩씩 거리면서 오는데 인근 지하철 공사장 한영토건 과장이 '한 겨울에 사람이 어떻게 살라고 전기를 끊냐'고 하며 전기를 연결해줬어요."

- 전에 전기 없이 살아보신 적 있으세요?
"70년대 초반에 살던 동네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기까지는 전기 없이 살았어요. 그때가 5학년 때였나? 그럴 거예요.

- 전기 없이 지내시니까 어떠세요.
"7월 21일 끊긴 이후로 8월 중순까지는 그때는 태양열 패널이 하나만 있었어요. 올 여름 엄청 더웠잖아요. 밤에는 촛불 한 30개를 테이블 위에서 밝혀놓았어요. 그래도 알전구 하나 킨 거보다 어두워. 엄청 더웠죠. 선풍기도 못 돌려서 더워서 깨고, 모기에 물려서 깨고 하루 밤에 두 번 세 번 깨면 이놈들이 나한테 고통을 줄려고 전기를 끊은 것이 아니라, 이놈들이 나한테 인간이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줄려고 전기를 끊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비참했죠."

- 겨울에는 어떻게 버티실지 준비하신 거 있으세요? 
"겨울엔 연탄난로를 피워야지요. 전기를 24시간 돌릴 수는 없으니까. 연탄가스배출기를 쓸 수가 없어요. 여기에는 상근자도 자고, 여러 사람들이 자고 가는데 배출기가 돌다가 멈추면 큰 사고 나니까요. 그렇다고 난방을 안 할 수도 없고. 태양열 패널이 하나만 더 있으면 문제없는데…."

- 글 쓰시는 분이 농성장에 계시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처음엔 엄청 창피했어요. 철거민하면 사회의 밑바닥 아니에요. 근데 우리 집사람이 '이 억울함을 어떻게든 풀어야지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한테는 살림하고 직장 잘 출근하라는 거야. 아무리 힘없고 멍청한 가장이라고 해도 아내를 농성장에 놔두고 일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마누라 보호해야지. 근데 차마 문 밖에 나가질 못 하겠는 거예요. 창피해서. 근데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또 거리에 떼쟁이 하나 늘었다고, 저렇게 비참하게 철거농성 할 거면 새 출발 하겠다'고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창피해서 문을 못 열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구단위계획 지역같이 작은 단위 철거 지역은 시설 투자에 대한 영업보상도 없고, 단지 이사비용 300만원만 주고 삶의 터전을 뺏어버리는 이 놈들 실체를 까발리고 싶어요. 그래서 글도 계속 쓸 거예요."

- 농성 하신 거 후회는 안 되세요?
"다른 철거지역에서 싸우는 형태라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겠는데, 두리반에서 싸우면서 농성하는 건 후회가 안 돼요. (두리반에서) 너무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아서. 여기서 매주 화요일 다큐 영화 상영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밴드들이 와서 공연하는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공연을 들으면서 요새는 일주일에 록밴드 공연 안 보면 스트레스가 안 풀린다니까요."

- 다시 칼국수 집 운영하고 싶으시죠?
"다시 열고 싶죠. 인근에 어딘 반 만한 거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개선이 될 테고, 우리 같은 영세 세입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거 아니에요. 두리반이 승리해야 이 미친 재개발의 광풍도 멈출 겁니다."

덧붙이는 글 | "10월 한파 몰아친 농성장에서 1박 2일"에 기획했던 3편을 마쳤다. 신문과 책에서 알게된 것 보다 현장에서 만난 그들의 삶은 훨씬 더 비참했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 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의하면 우리 모두 건설자본에 짓밟혀 보상 한 푼 못 받고 쫒겨난 철거민들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방조하였기 때문에 공범자인 셈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이 "몇몇 노동조합을 거론하며 체제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기륭전자, 동희오토, 두리반에서 싸우던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빨갱이들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 아저씨, 형, 누나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생존이자 삶이었다. 살고싶은 이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는 잔인하다. 왜냐면 우리 누구도 해고될 수 있고, 살던 곳에서 쫒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을 마치기 전에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이 사측과 만족할만 한 협상을 하였다고 들었다.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의 승리를 축하하며...



태그:#두리반, #철거민,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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