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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만에 해 보는 산행이다. 가끔 시간이 나서 등산을 시도해볼라치면 비가 오거나 비가 올 예정이거나 해서 그간 제대로 산행을 못했다. 어느새 가을도 절정, 영축 신불평원이 맞은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배내골 청수골팬션 앞(9:40)에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어느새 발밑에는 묵은 낙엽이 아닌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이 밟힌다. 아직 수분이 다 빠지지 않은 것이어서 그런지 발밑에 밟히는 낙엽들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은 물기가 전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엷은 비명을 내며 바스러지는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나리라.

 

좁은 산길 옆에는 계곡이지만 언제와도 콸콸 흘러넘치듯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 밑으로 쫄쫄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산길로 접어들자 갈수록 점점 고도를 높인다. 그래 조금만 더 걸어봐 하고 어리광 피우듯 하는 아이 달래며 걸음마 연습시키는 것처럼, 천천히 점진적으로 경사가 높아진다. 경사가 높아질수록 호흡은 점점 더 가팔라지고, 깊어지고, 맑아진다. 공기 빠진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듯 높이를 더할수록 몸속 독소가 빠지고 폐부 깊숙이 맑고 깨끗한 공기가 주입되는 듯하다.

 

바람은 키 큰 나무들, 그 높은 가지 끝에서 끝으로 점퍼하고 있는 듯하다. 산과 산이 접히는 골짜기를 지나는 이 산길에서는 바람이 깊은 이곳까지 포복하지 못하나 보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가지 위로 발돋움하는 바람 발자국 소리 우우우~ 들려온다. 바람은 높이 인다. 맨 꼭대기 나무 끝에서 깃발처럼 펄럭이고 숲의 나무들과 나무들 사이, 그것들과 저들만이 아는 언어와 몸짓으로 교감하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을 산으로 든 사람들은 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높이 부는 바람은 우리 발걸음 산길 따라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가까워진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지척이다. 계속되는 완경사 오르막길 끝에서 바람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바람 앞에 선다. 여긴 숲 속 길 끝, 억새 능선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오후 1시 35분, 억새와 바람이 사는 곳, 영축 신불 억새평원이 두루마리 펼치듯 눈앞에 펼쳐진다.

 

시야가 툭 트인다. 이게 얼마 만이지? 바람 부는 억새 사이를 걸어서 영축산으로 향한다. 드넓은 억새평원에는 산이 좋아 산을 찾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처럼 박혀 있다.

 

계속되는 평원 길, 새로 산 하나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꽤나 멀고 길다. 모처럼 찾은 산인데 날씨가 아쉽다. 구름으로 덮인 하늘, 푸른 하늘빛이 보이지 않아 은빛 바다처럼 눈부실 억새평원이 채도가 낮다. 쨍하고 가을 하늘 맑고 높다면 더 좋으련만.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산악자전거가 내려오고 있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억새와 단풍 같은 등산객들과 산악자전거가 산정 높은 고원에서 마음껏 자연의 품속에서 놀고 있다.

 

산은 사람도 자전거도 내침 없이 받아들이고도 남을 넉넉한 품인가 보다. 이렇게 산에 받아들여진 우리는 여기서 쉼을 얻고 세상에서 묻은 마음 때를 씻어 맑은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서게 되나 보다.

 

구름에 가려진 하늘이 어쩌다가 한 번씩 열렸다 다시 열리기를 반복한다. 영축산 정상에 도착해보니 여기서도 산악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영축산 정상을 밟고 다시 평원으로 내딛는 사람들 사이로 그들은 마치 갈퀴를 휘날리면서 말 잔등에 올라탄 중세시대의 용감한 기사들(?) 같다. 평원을 내달리는 멋진 말이나 산정 높은 곳을 어슬렁거리는 사자나 호랑이 대신 이 높은 산정까지 자전거 타고 올라온 사람들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영축산 정상에서 조망되는 75만6천 평에 이르는 신불평원, 산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이토록 높은 산정 위에 이토록 드넓은 평원이 있다는 것, 저 아래 세상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까.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칸칸을 질러 경계를 긋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이들은 가끔, 일상을 벗어나 무한대로 펼쳐진 푸른 숲 푸른 산으로 올라 볼 일이다.

 

은빛 억새 장관을 이룬 산정 위의 평원 길... 한 번쯤은 걸어 볼일이다. 그래서 툭 트이는 이 넓은 품에서 그 모성과 부성을 느껴볼 일이다. 일상에서 묻은 마음 떼를 씻어 볼 일이다.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 섬세함과 깊고 넉넉한 품성을 만끽해 볼일이다. 그러면 알게 되리라. 가끔이라도 자연 안에 깊이 나를 담가야 한다는 것을.

 

영축산 정상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신불산 쪽으로 내처 걷는다. 산악자전거와 등산객들이 억새 고원을 오가고 있다. 그들은 양산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신불 능선 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온 길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앞을 내다보며 걷는다. 홀린 듯 이 억새평원 길을 걷다 보면 내 몸은 세상에서 묻은 속기가 다 빠져나간 듯하고 깃털인 양 가볍고 경쾌하다. 산정 높은 길을 걸어본 자만이 알리라. 그 누구도 이 능선 길에서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억새와 바람과 산과 산사람들과 산악자전거... 홀린 듯 걷는 길에 무심한 듯 동행하며 꽤 오래 걸었다. 은빛 물결 출렁이는 신불억새 평원 길... 하산 길에서도 산악자전거들과 만났다. 오늘 하루 온종일 울긋불긋 산 사람들과 산악자전거와 함께했다.

 

산행수첩

1. 일시: 2010. 10. 23(토) 약간 흐림

2. 산행기점: 배내골 청수골 펜션

3. 산행시간: 7시간 10분

4. 목적지: 영축산~신불재까지(신불평원)

5. 진행:

배내골 청수골펜션(9:40)-청수좌골-단조성터(2:05)-영축산 저상(12:40)-점심식사후 하산(1:15)-신불재(2:50)-임도(삼거리 3:25)-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매표소(4:25-청수골펜션(4:50)

6. 특징: 영축산 정상 조망: 언양읍, 양산시, 신불산, 천황산, 운문산 등 두루 조망됨

신불평원: 250만 km2(=75만 6천평. 756,250평)/단조성터: 임진왜란 당시 왜군 북상저지함


태그:#영축산, #신불평원, #가을, #산악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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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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