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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소리판>겉그림
 <판소리 소리판>겉그림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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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부분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도시든 시골이든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뒷간', 혹은 '변소'라 불렀던 이 화장실은 어지간히 신경을 써도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시골 태생인 내게 소변만 따로 모으던 통과 똥 푸는 모습은 낯익다. 똥이나 거름을 뿌린 밭 옆을 지나자면 코를 움켜쥐어야만 하는 악취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낯익은 만큼 이 배설물을 둘러싼 우스개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이 쉽지 않은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자주 오갔던 것 같다.

들리는 소문에,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을 만큼 큰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똥물뿐이라고 했다. '설마? 아무리!' 싶었지만, "다 죽어가던 아무개 아저씨가 똥물을 먹고 살아났다더라!"처럼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지칭하거나, 똥물을 어떻게 채집하는지 그 방법까지 설명하면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명절특집 국악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어른들은 명창들의 판소리 혹은 창에 감탄하며 "명창들은 소리를 내려고 똥물을 마신다던데 정말 그럴까?"라고 반신반의의 말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여하간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정말 똥물로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정말 명창들이 원하는 소리를 얻고자 똥물을 마셨을까? 똥물의 어떤 성분이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며, 아무나 똥물을 마시면 명창이 될 수 있는 건가?'

수많은 판소리 명창들이 실제로 똥물을 마신 경험이 있다고 한다. 판소리는 소리를 내는 방법이 다른 음악과 다르다. 소리를 연마하기 위해 너무 무리하면 열이 나고 몸이 퉁퉁 붓게 된다. 뱃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내려고 기를 쓰다 보면 몸이 아플 수밖에 없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열과 붓기를 없애기 위해 그와 같은 민간요법이 쓰인 것이다.

그럼 똥물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아무리 약이 된다고 해도 똥물을 그냥 마실 수는 없다. 먼저 대나무 통이나 병의 주둥이를 솔잎이나 지푸라기로 막고 돌에 매달아 똥통에 담가 둔다. 그러면 빈 통 속에 맑은 물이 고이는데 그것을 삼베로 걸러서 마시면 정말 열이 내리고 붓기가 빠졌다고 한다.

그 맛은 어떠했을까? 드신 분들의 말에 따르면 신맛, 짠맛, 쓴맛, 단맛, 매운맛 등 다섯 가지 맛이 고루 느껴지는 오묘한 맛이란다. 그 맛이 역겹긴 해도 다시 목으로 넘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 <판소리 소리판>(우리교육 펴냄)중에서

'귀명창이 들려주는 우리 소리 이야기' <판소리 소리판>은 우리교육 제6회 어린이책 작가상, 기획부문 수상작이다. 어린이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자칫 어른들이나 즐기는 음악일 수 있는 우리의 대표 소리인 판소리의 역사와 이론, 역사 속 명창들의 삶을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책이다.

  판소리 다섯 바탕
판소리의 종류를 헤아리는 단위는 바탕이야. 바탕이란 어떤 일을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를 말해. 판소리는 모두 몇 바탕일까? 보통 판소리 다섯 바탕이라고 해. 모두 다섯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졌다는 뜻이야.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말하지.

판소리가 처음부터 다섯 바탕이었을까? 그건 아니야. 원래는 열두 바탕으로 이루어졌어. 욕심 많은 부자 옹고집을 비판한 <옹고집타령>,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배비장타령>과 <강릉매화타령>, 서울 한량들의 방탕한 생활을 꼬집은 <무숙이 타령>이 있었어. 또, 분수를 모르고 신선이 되려고 한 사람을 놀리는 <가짜신선타령>, 남녀 차별이 심한 조선 사회를 비웃은 <장끼타령>, 마지막으로 남녀의 성문제를 솔직히 다룬 <변강쇠타령>이 있었지.

지금은 왜 다섯 바탕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바탕은 불리지 않을까? 판소리를 다섯 바탕으로 정리한 사람은 신재효라는 분이란다.…처음 신재효가 정리한 사설집에 <변강쇠타령>이 포함되었어. 그는 총 여섯 바탕을 정리한 셈이지.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섯 바탕….-책에서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에 매료되어 판소리를 배웠고, 한동안 판소리에 푹 빠져 살았고, '나라음악큰잔치'와 같은 판소리 공연까지 기획하기도 했던 귀명창(판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인 저자 정혜원은 '판소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시작으로 누가 어떻게 명창이 되었으며 판소리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을 동화로 들려준다.

소리 광대가 되고자 양반 신분까지 벗어던진 권정생, 귀신에게 소리를 배웠다는(귀곡성) 송흥록, 진양조로 우리 판소리를 한 단계 끌어올린 앉은뱅이 명창 김성옥, 세상을 떠돌며 민중들의 아픔을 위로했던 시중성인으로 불린 모흥갑 등, 여러 명창들의 삶과 판소리에 얽힌 6편의 동화는 가슴 뭉클하다.

동화 사이사이에 '명창들은 정말 똥물을 마셨을까?' '정말 소리가 십 리 밖까지 들렸을까?' '정말 귀신에게 소리를 배웠나' '동편제는 뭐고 서편제는 무엇이며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등처럼 세간에 두루 회자되고 있는 판소리 관련 흥미진진한 소문의 실체와 상식들을 들려줌으로써 판소리에 흥미를 갖게 한다.

저자는 또한 비가비, 득음, 귀곡성, 진양조, 신청 대방, 또랑광대, 단가, 이면, 통성, 덜미소리와 같은 판소리 용어나 대표적인 판소리 설명까지 세세하게 곁들이고 있다. 이런지라 이 책 한 권으로 판소리 관련 어지간한 것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겠다 싶다.

누가 판소리를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그건 판소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판소리는 '더늠'의 예술이라고 해. 더늠이란 더 넣는다는 뜻으로  명창들이 자기 개성에 맞게 소리를 짜 넣은 것을 말하지. 예컨대 <춘향가> 가운데 <자진사랑가>는 고수관의 더늠이고, <이별가>는 모흥갑의 더늠이야. 그렇듯 판소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더늠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란다.

판소리의 존재는 영조 때 사람 유진환의 <만화집>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해. 그 책에는 '가사 춘향기 200구'가 실려 있어. 그런 점에서 대략 17세기 말 숙종 무렵 판소리 형태의 예술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왜 판소리가 필요했을까?
- 책에서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 유일 1인 오페라'로 불려지기도 하는 우리의 소리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에 등재됐다. 이는 판소리가 우리의 문화만이 아닌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판소리 소리판>을 통해 우리의 소리 판소리에 관심과 흥미를 갖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들뿐이랴. 이 책은 판소리와 명창의 존재는 알지만, 판소리는 좋아하지만 판소리에 대한 것들은 거의 모르고 있는 나와 같은 어른들에게도 우리 판소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좋은 참고가 되리라.

덧붙이는 글 | <판소리 소리판>|정혜원 지음|정승희 그림|우리교육|2010.9|값:11000원



판소리 소리판 - 귀명창이 들려주는 우리 소리 이야기

정혜원 지음, 정승희 그림, 우리교육(2010)


태그:#판소리, #명창, #유네스코 무형유산, #더늠, #춘향무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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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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