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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만발한 제주에서 추억만들기를 하고 있는 친구
 억새가 만발한 제주에서 추억만들기를 하고 있는 친구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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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4일째.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애월읍 숙소에서 쭉 다니던 길을 따라 해안가를 달려 곳곳을 구경 했고 그길로 다시 숙소로 되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서먹서먹했던 제주도 길이 평소 내가 살던 우리 동네 길처럼 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다녔던 길임에도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근한 날씨 탓일까? 며칠 사이 억새가 하얗게 활짝 피었다. 제주도 하면 광활한 벌판에 억새가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기도 한데 시간절약을 위해서 바삐 움직이며 무심코 지나다녔던 길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니 탐스런 억새도 보인다.

하얗게 핀 억새길을 호젓하게 걷고 있는 친구
 하얗게 핀 억새길을 호젓하게 걷고 있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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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억새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셔. 우리 이 길을 걸으며 추억 만들기 하자."

친구가 동심으로 돌아간 듯 큰 소리로 외치며 억새밭으로 순간 사라진다. 술래잡기를 해도 찾을 수가 없을 만큼 억새가 우거져 있다. 억새가 만발한 길을 걸어본다. 제주도의 특유의 거센 바람 탓에 억새가 서로 부딪히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요동을 친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고 싶지만 당초 여행 목표를 정했던 외돌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범섬쪽에서 외돌개를 끼고 배가 지나간다.
 범섬쪽에서 외돌개를 끼고 배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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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친구는 한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방향이 다른 외돌개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친구는 한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방향이 다른 외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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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는 제주도 서귀포시 천지동에 위치한 바위섬으로 높이는 20m로 삼매봉 남쪽 기슭에 있다.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외돌개라고 붙여졌다고,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 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생하고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반대방향으로 간 친구는 한손으로 외돌개를 잡아보겠다며 손을 크게 들어 보인다.

장군석이라고도 부르는데, 고려 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들은 고려에서 중국 명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목호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 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승리를 하였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외돌개 올레길을 걷고 있는데 거시기한 과일이 나타난다. 가지에 열매가 열린 모습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용과란다.
 외돌개 올레길을 걷고 있는데 거시기한 과일이 나타난다. 가지에 열매가 열린 모습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용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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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때가 되어도 밥 먹을 생각을 안하자 친구는 먹을 것이 나타나면 뭐든지 먹어 본다. 용과를 먹고 있는 친구
 끼니때가 되어도 밥 먹을 생각을 안하자 친구는 먹을 것이 나타나면 뭐든지 먹어 본다. 용과를 먹고 있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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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를 끼고 한 바퀴 도는데 길 가장자리에서 과일도 아닌 것이 우둘투둘하며 벌겋고 보기에는 참 거시기한 모습의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자 용과란다. 가지에 열매가 열린 모습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나?

용과는 7~10월까지 수확하는 선인장 열매의 한 가지로, 제주도에서도 재배되는 특산품이라며 '싹싹 더울 때 많이 나와요'(제일 더울 때를 이렇게 표현한다.)뭔가 색다른 게 있으면 꼭 먹어보거나 만져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친구는 용과를 대뜸 잘라 한입 가득 깨물어 맛을 보더니 마 같기도 하고 키위 같기도 하여 특별한 맛이 난다며 먹어보라고 건네준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신선한 느낌이 기분을 좋게 한다. 가격은 하나에 만원이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마음에 드는 피사체가 나타나면 그곳에 너무 몰두하다 밥 먹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끼니때가 되어도 밥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친구는 가게를 지나칠 때면 끼니가 될 만한 음식들을 사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친구는 때때로 배가 고프면 알아서 챙겨먹곤 했다. 장시간 함께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서로 이해하며 맞추는 것도 척척 해 나갔다. 

외돌개 뒤로 보이는 범섬은 섬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 같아 호도라고 하였단다. 범섬과 외돌개 사이로 유람선이 지나가는데 마치 최영 장군이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오는 개선장군처럼 보이는 착각을 하게 된다.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에 있는 쇠소깍,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에 있는 쇠소깍,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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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은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를 가리키며, 이곳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쇠소깍이라는 이름은 제주도 방언이다.

쇠는 효돈 마을을 뜻하며, 소는 연못, 각은 접미사로서 끝을 의미한다.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워 뛰어난 비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 어느 곳을 가나 지역에 걸맞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들이 있는데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쇠소깍에도 역시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부잣집 귀여운 무남독녀와, 머슴의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머슴 아들은 처녀를 사랑했고 신분상 서로의 사랑을 꽃 피우지 못할 것을 알자 머슴의 아들이 쇠소깍 상류에 몸을 던져 숨을 거두었다.

처녀는 머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신이라도 수습하려고 쇠소깍 기원바위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하자 큰 비가 내려 총각의 시신이 떠내려 왔고 부둥켜안아 울다가 자신도 '쇠소'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전설이다. 슬픈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쇠소깍에는 커플이 아닌 여인들이 물이 훤히 비치는 투명 카약체험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워 뛰어난 비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 쇠소깍.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워 뛰어난 비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 쇠소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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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는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고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벌집모양처럼 생겼다.
 주상절리는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고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벌집모양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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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에 파도가 몰아치자 하얀 포말이 부서진다.
 주상절리에 파도가 몰아치자 하얀 포말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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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의 느릿한 풍경이 연약한 여인의 섬세함이라면 웅장하고 남성미가 넘치는 주상절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대범하여 기골이 장대한 남성의 힘이 넘치는 모습이리라. 주상절리는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고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벌집모양처럼 생겼다.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정성들여 조각을 한들 이보다 더 정교할 순 없으리라. 단정하게 잘려져 있는 주상절리는 자연만이 가능한 신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주상절리에 파도가 치며 물보라를 일으키자 하얀 포말이 솜사탕처럼 부서진다.


태그:#외돌개, #주상절리, #쇠소깍, #억새, #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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