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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지금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 그 가운데 지역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관광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며, 대구의 근현대 문화유산들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역사책에서 짚어주지 못한 사실들을 지역 노인들의 증언을 통해 스토리텔링화 하는 이 사업을 통해, 지역 문화재를 활용한 관광 산업이 지자체 사업을 넘어서 코리아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역할을 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구 도심의 문화유산 중 대표격인 경상감영공원과 향촌동의 가치를 알아보며 대구 지역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되짚는 노력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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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종, 홍예교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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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 도청이 있던 자리, 경상감영공원

경상감영공원은 조선 선조 때 경상감영이 있던 곳을 기념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감영(監營)은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상감영(慶尙監營)이란 지금의 경상도 도청 쯤 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지방의 행정구역을 전국 8도로 나누고 각 도에 관찰사를 두었는데, 대구는 임진왜란 이후 교통과 국방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경상감영을 두었다. 이렇게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대구는 서울, 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시가 되었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는 이곳에 경상북도 청사가 있었고, 경북도청이 대구 산격동으로 옮겨간 후인 1970년부터는 중앙공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한 이 공원은 대구 읍성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대구 읍성은 조선 영조 때(1736년)축성되었고, 각 방위별로 성문 및 장대가 설치되었다. 이런 설치 양식은 훗날 정조 때 만든 수원화성 등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 경상감영 관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감영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없어졌다. 1907년 일제는 경상감영을 도시계획이란 미명하에 철거하면서 대구 읍성은 그 흔적마저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읍성에서 동서남북 방향으로 나 있던 길인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현재의 지명으로 남아서 대구 읍성이 이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공원 안에는 경상감영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대구유형문화재 1호)과 경상감영 관찰사 처소로 쓰이던 징청각(대구유형문화재 2호)이 남아 있고, 관찰사와 대구 판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그밖에 옛 건물의 멋을 살린 정문, 분수, 돌담, 자갈이 깔린 산책로,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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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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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종과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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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감영공원의 장식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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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 도로 옆에 접해있던 종각은 19997년 공원을 재단장 하면서 공원의 중안으로 옮겨졌다. 또한 1997년까지 재야의 종 타종행사를 이곳에서 했으나 현재는 대구시내의 또 하나의 공원인 국채보상공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우아한 휴식의 장소, 경상감영공원

경상감영공원의 특징은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우리 가곡을 많이 틀기 때문에 노인들의 모임이나 약속장소로 많이 이용되기도 한다. 공원에서 이어지는 향촌동 골목의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얼큰히 마시거나 성인텍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나온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시절을 회상하시는 곳이 이 공원의 특징이다. 자연과 역사와 사람이 있는 이곳에서 듣는 우아한 가곡 선율은 그 어떤 음악 감상실 보다 편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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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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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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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 바로 옆에는 한국산업은행대구지점(대구시 유형문화재 49호)이 자리 잡고 있다. 1931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2층 철근크리트 건물로서, 앞으로 이 건물은 미술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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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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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역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 경상감영공원은 대구 시민에게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제공하는 휴식 장소이다. 시내에 쇼핑 나왔다가 가족과 나들이하기 좋은 공원으로서, 역사 공부와 휴식을 동시에 즐기며 클래식 선율에 취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이 더욱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대구의 예술 거리, 향촌동

경상감영공원에서 바로 이어지는 대구의 근대 역사의 거리, 향촌동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의 피난예술이 꽃 피던 대구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소로서, 대구 도심의 화려함과 정반대의 얼굴을 가진 숨은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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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촌동 유흥가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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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은 현재 무궁화백화점 동쪽 길에서 북성로로 이어지는 300m 정도의 거리로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중영(中營)과 대구부가 있던 자리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에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인데, 화가 이중섭, 소설가 최정희, 시인 구상, 양병문 등이 이곳의 다방과 술집을 아지트 삼아서 예술을 논하고 나라의 앞날을 탄식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의 청킹맨션이 떠오르는 곳

개발이 덜 되어 있어서 낡고 허름한 향촌동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서있다. 조그만 식당이나 선술집이 빼곡이 들어선 탓에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고, 촌스러운 간판들 속을 헤집으며 장년들만이 이 거리를 누비는 유일한 방문객들이다.

향촌동 건너편에 있는 동성로는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젊음의 거리이고, 이곳은 드라마 세트장처럼 복고풍 일색이다. 마치 90년대 말 왕가위 감독의 홍콩 영화 '중경삼림'의 낡고 허름한 건물들 분위기과 흡사하다. 세월의 풍파에 자연스레 바랜 건물들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풍광을 보여주며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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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촌동의 건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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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촌동 주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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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에는 유흥가가 많다.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성인텍, 콜라텍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들을 볼 수가 있다. 50~60대 장년층들이 화사한 얼굴로 삼삼오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 드나들던 향촌동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듯 들뜬 얼굴로 그곳을 찾고 있다.

일제치하의 향촌동

일제강점기 향촌동은 일본인들의 생활문화 중심지였다. 번화가라기보다는 주택가에 가까웠고,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주요 건물들이 하나 둘 헐리면서 향촌동은 요정과 여관, 술집 등이 번성한 밤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가운데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요정과 양주점, 병원과 요릿집, 사진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지금도 스모노 같은 특별한 일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향촌동이기도 하다. 예전에 향촌동 부근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었다. 그들의 식성에 맞게 어묵이나 단무지 등을 많이 팔아서 '일본 시장'이라고 불렸다.

해방직후의 향촌동

대구 향촌동이 오늘날과 같은 다운타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터다. '서울에는 명동, 부산에는 남포동, 대구에는 향촌동'이라는 말은 이때 생긴 것이라고 할 만큼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난민 예술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대구로 피난 온 시인, 화가, 문인들은 대폿집이 많은 향촌동에 둥지를 틀고 살았고, 그들은 이곳에서 토론이나 전시회를 했다. 이 시절 백조, 백마, 호수, 백록 등의 다방이 생겨서 한국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다방에서 레코드판으로 클래식과 재즈를 듣고, 그곳에 비치된 신문과 잡지를 읽다가 드나드는 예술가나 언론인과 담소를 하고, 이따금 개인 전시회나 출판 기념회를 다방에서 열기도 했다. 그리고 화가 이중섭이 백록다방 구석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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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성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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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음악 감상실인 녹향이 처음 자리를 잡은 터도 향촌동이었다. 녹향은 세월과 함께 여러 번 자리를 옮긴 후에 지금은 대구역 길 건너에서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의 향촌동

전쟁이 끝난 후 향촌동은 예술인들을 비롯해 외지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일시적 공동화를 겪기도 했다. 70~80년대에는 백화점들이 들어서서 상권으로의 변화도 시도했으나 위치상의 단점으로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쇠락해 버렸고, 70년대부터 형성된 수제화 골목만이 묵묵히 장인의 자존심을 유지해가고 있다.

이제 향촌동은 술값이 싸기 때문에 드나드는 곳, 경제가 나쁠수록 많이 드나드는 골목이 되었다. 그래서 잚은이들에 비해 경제적 취약 계층인 실버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인근에 있는 경상감영공원에서 실버들 끼리 미팅을 하거나 장기나 바둑을 두다가 지치면 댄스와 사교 등 노인들의 문화생활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이기도 한 곳이 바로 향촌동이다.

향촌동에는 성인텍이 11개나 영업중이고, 실버들은 그들의 인생과 역사를 함께 하는 향촌동에 대한 지극한 향수에 이끌려 이 골목을 찾는다. 하지만 젊은 층에겐 흥미가 없는 곳이기에 길 어느곳을 둘러봐도 젊은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골목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을 발굴하여 젊은이들도 이 골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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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촌동 무궁화 백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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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의 부흥, 가능할 것인가?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지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향촌동의 기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들을 발굴하면 역사가 체크하지 못한 다양하고 정감 넘치는 또 다른 향촌동의 생생한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서 향촌동은 재개발이 덜 된 만큼 과거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어 진정한 의미의 도심재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제, 대구는 숨은 골목을 향촌동을 눈여겨봐야 할 시점이다. 그 안에 품고 있는 스토리가 무궁무진한 점을 바탕으로 지역민 이하 관광객들의 호기심과 방문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태그:#경상감영공원, #대구 향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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