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리산 자락 경남 하동 악양에 사는 주민들로만 구성된 '동네밴드'가 처음으로 창작곡을 선보였다. 2008년 12월에 동네밴드가 결성됐으니 2년여 만이다.

 

지난 23일 저녁 전남 해남 땅끝 미황사. 시인 박남준(하모니카), 옻칠공예가 성광명(베이스), 공무원 정대영(드럼), 음악치료사 이소영(건반), 귀농인 신희지(보컬) 등 동네밴드 멤버 5명이 대웅전 앞마당에 차려진 무대 앞에서 다소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느덧 스산해진 산사의 날씨 탓인가 했다. 

 

그게 아니었다. 동네밴드 결성 후 처음으로 '남의 노래'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연주하게 돼 긴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작곡가인 한보리(싱어 송 라이터)씨가 동네주민들이 직접 노래를 지어 부르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는 동네밴드의 음악감독도 맡아 연습 때마다 '눈물 쏙 빼게 만드는' 호랑이 선생님이다.

 

성광명 : "남의 곡만 하다가 우리 곡 하니까 좋긴 한데... 왜 이렇게 떨려?"

박남준 : "괜찮아, 틀려도 아무도 몰라. 틀려도 원래 그런 곡인줄 알아."

신희지 : "우리는 공연 전에 곡차(술) 한 잔 마시고 해야 하는데, 동네밴드니까."

 

 

가수 허설의 무대가 끝나고, 한국가곡협회에서 온 김성일(바리톤), 윤은주(소프라노), 박혜란(피아노)씨의 앵콜 무대까지 끝났다. 사회를 보던 나무(음악인)의 소개로 드디어 동네밴드가 창작곡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시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가 노래가 되어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노래는 그의 동반자인 신희지씨가 불렀으니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다.

 

시인 박남준도 자신의 자작곡을 들고 무대에 섰다. 노래 제목은 <문밖의 세상>. 

 

"공장에서 나오는 소, 알 까는 기계가 낳는 달걀들

이런 세상이 좋아 이런 세상이 괞찮나

입시감옥에서 사육되는 아들 딸 쳇바퀴 속 달려가는 어른들

이런 세상이 좋아 이런 세상이 괜찮나

삽질로 죽어가는 사대강물

삽질로 죽어가는 산과 들

이런 요지경세상 이런 제기럴 세상"

 

300명에 이르는 관객 중 어느 누구는 "정태춘 같아"라고 옆 사람에게 소곤댔고, 어떤 이는 "밥 딜런의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같아"라고 평했다.

 

'앵콜 송'도 준비 못한 동네밴드의 마지막 노래는 '객원' 딱지를 뗀 보컬 신희지씨가 불렀다. 곡목은 <나를 사랑해>. 귀농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결코 편하지만은 않은 사연이 아리게 흘러간다.

 

"이제 난 그대가 좋아/ 이제 난 여기가 좋아/ 지나간 상처는 아무 것도 아냐/ 내가 날 사랑하면 돼."

 

 

어쩌면 가장 따뜻한 위로는, 가장 아픈 내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일 게다. 이를 알기에 연습조차 많이 못하고 나온, 여느 동네 주민들 노래에 온통 마음이 쏠리는 것일 게다.  

 

졸지에 동네밴드의 기타 세션이 되어 무대에 함께 올랐던 음악감독 한보리씨.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멤버들에게 일일이 방금 전 무대에서의 실수를 상기시켰다. 아직 멀었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오늘 공연 평가 좀 해달라고 하니 슬쩍 멤버들과 거리를 두곤 말했다.

 

"연습 두 번이나 제대로 했나...? 새로운 한 곡이 나오면 최소한 100번 이상은 연습해야 자신에게 익고 다듬어지는데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중요한 건 창작곡이라는 거예요. 자신의 생각과 얘기를 담아 곡을 썼다는 것이 중요하죠. 비록 이번 공연이 실패했다 해도 이미 100점이에요."

 

그 100점 짜리 노래를 오는 11월 13일 들을 수 있다. 늘 해오던 것처럼 경남 하동 악양 동매수련관에서 '동네밴드 정기공연'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지리산 자락 악양 주민들이 직접 지어 부르는 노래를 오지게 들을 수 있다.  


태그:#동네밴드, #박남준, #한보리, #지리산, #미황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