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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학생들의 깃발 공연 광경.
▲ 화교소학교 학생들의 공연 광경. 화교학생들의 깃발 공연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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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대구화교축제가 23일 종로 화교거리 일원과 화교소학교(동아쇼핑 뒤편골목)에서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화교축제는 대구화교인들의 제2의 부활을 꿈꾸며 대구소학교에서 열던 행사를 올해는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종로 화교거리에서 열렸다. 이번 축제에는 학생들의 발표, 중국기예단의 묘기, 중국 사자춤과 용춤, 일렉볼쇼이의 축하공연까지 다채로운 무대로 이어졌다.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를 알리는 중국전통사자춤과 용춤을 위해 화교협회부터 시작해 만경관 사거리, 동아쇼핑을 거쳐 동성로, 화교협회로 돌아오는 거리까지 퍼레이드도 펼쳐졌쳤다.

중국문화축제를 알리기 위해 나선 대학생 자원봉사들이 열심히 시내를 돌며 거리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광경.
▲ 대학생 자원봉사들의 거리퍼레이드 중국문화축제를 알리기 위해 나선 대학생 자원봉사들이 열심히 시내를 돌며 거리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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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대구화교축제에서는 대구에서 개최되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화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대한 다짐 순서와 함께 화교출신의 세계 거상들의 대구투자 유치에 노력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개막을 알렸다.

이번 축제를 주관한 대구화교협회 손보충 회장은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국제화에 초점을 두었다"고 강조하면서 "대구시에서 많은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화교인들의 복지증진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화교축제가 열린 종로거리는 모처럼 활기를 띄었고 부산과 서울 등지에서 장사를 해오던 '왕서방'들이 대구까지 방문해 중국화교축제를 반겼다.

중화의상체험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내가 황제로소이다"
▲ 중화의상체험 광경. 중화의상체험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내가 황제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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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를 어떻게하면 쉽게 배우나요?"라며 문의를 하고 있는 한 주부의 모습. 대학생 봉사자들이 열심히 상담을 돕고 있는 모습.
▲ 중국어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중국어를 어떻게하면 쉽게 배우나요?"라며 문의를 하고 있는 한 주부의 모습. 대학생 봉사자들이 열심히 상담을 돕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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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는 자장면과 전병, 대구시와 자매결연 맺은 중국 청도의 맥주 홍보, 중국어체험코너 운영과 페이스페인팅, 중국 전통 옷 입어보기, 동물매개치료센터(영천)와 함께하는 포토타임 등의 이색적인 부스도 운영됐다.

중국 황제의 옷을 입어본 김민(대학생)씨는 "황제의 옷이라는 것을 모르고 입었는데 직접 입고 나니 황제의 자리가 무겁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전하면서 "이런 기회가 쉽지 않은데 직접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고 말했다. 김민씨와 함께 중국 전통 옷 입기 체험에 나섰던 박현정(대학생)씨도 "평소 치파오를 입어보고 싶었는데 직접 입어보니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중국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종로거리의 모습이다.
▲ 중국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종로거리. 중국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종로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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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명 의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자원봉사에 나섰던 우삔(경북대 1학년) 총괄책임자는 "동료 학생들과 함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즐겁다"고 말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사자춤과 용춤 거리퍼레이드, 전통놀이 체험, 각 부스에서의 안내 및 상품 판매, 스태프 활동 등을 하며 화교거리를 찾는 일반 시민들에게 중국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파수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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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까지 열리는 대구중화문화축제는 자장면 먹기 대회, 사자춤 공연, 락그룹 공연, 우슈공연(대구시청팀), 밸리댄스와 전통기예, 중국전통식 불꽃놀이의 이색적인 순서도 마련된다.

대구화교거리에는 약 10여 점의 화교상점이 운영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는 중국인들의 손때가 묻은 빨간 벽돌의 근대식 건물(계산성당, 제일교회, 동산의료원에 선교원 사택, 성유스티노신학교 등)들이 아직도 대구에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화교인들의 흔적인 많이 남아 있다.

대구화교의 역사
대구에 처음으로 중국인이 이주한 것은 1905년경이었다. 이 후 1928년 화상공회가 설립되고 화교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한다.

미군정(1945년 9월-1948년 8월)시절 화교 인구의 증가로 화상공회 건물을 현재의 대구화교협회 건물로 이전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때 인천, 서울의 화교 피난민이 대거 대구로 내려와 화교 인구가 급중하게 된다. 주요 산업 중 포목상 및 잡화상, 중화요식업, 주물업, 종교건축청부업, 의료업 등이 화교 경제발전의 근간이 된다.

대구화교협회 제공


태그:#대구화교축제, #중국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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