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일을 맞은 기륭노조 조합원 윤종희씨가 구사옥 옥상에서 생일케잌과 함께 축하를 받고 있다. 단식농성중인 윤종희씨는 결국 생일 케잌을 먹지 못했다.
 생일을 맞은 기륭노조 조합원 윤종희씨가 구사옥 옥상에서 생일케잌과 함께 축하를 받고 있다. 단식농성중인 윤종희씨는 결국 생일 케잌을 먹지 못했다.
ⓒ 대학생사람연대

관련사진보기


오늘(10월 22일) 후배들과 함께 처음으로 기륭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념하여 실천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20대 청년들입니다.

기륭노조 인터넷클럽에 나와 있는 대로, 가산디지털단지역 1번출구로 나와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충남슈퍼에서 내렸습니다. '충남슈퍼'라는 정감 가는 동네 슈퍼의 이름과 '1800일이 넘는 투쟁의 현장'이라는 절박함이 잘 매치가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동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 그것이 바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가진 삶이 아닐까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쉽게 농성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포클레인과 컨테이너 박스, 천막은 너무나도 눈에 잘 띄었습니다. 형형색색의 플래카드들과 저녁시간에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은 흡사 작년 용산의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외관만 봐도 용산에서 함께 싸웠던 송경동 시인이 기륭전자의 포클레인 위에 오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경비실 옥상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올라 단식을 하고 있는 윤종희, 오석순씨 두 분 조합원과, 포클레인 조정석 지붕 위에 텐트를 치고 올라있는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의 모습은 누가 뭐라해도 용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16일 경찰 침탈이 있었을 때 송경동 시인은 줄을 잡으며 경찰이 더 이상 다가오면 손을 놓아버리겠다며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합니다. 세상의 중심 가장 아픈 곳은 용산에서 이곳 가산동 기륭전자 구사옥으로 옮겨졌습니다.

첫 방문이라 죄송스럽기도 하고, 급하게 만들어 온 피켓이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쭈뻣쭈뻣 서 있는데, 조합원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시고 소속단위와 이름부터 물어봐주십니다. 염치없게 함께 간 친구들과 밥도 얻어먹습니다. 거리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은색 깔깔이(?)는 여기에도 어김없이 깔려있습니다.

오늘 기륭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옥상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윤종희씨가 생일을 맞으신 겁니다. 생일케이크를 준비해서 올라가고, 7시 문화제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밑에서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런데, 단식중이라 정작 생일케이크는 먹지 못합니다. 그 사연도 참 기구합니다.

 "2006년에는 구속되어 유치장에서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2008년에는 이 자리에 세워놓은 아시바가 철거될 때 생일을 맞았습니다. 2년마다 이렇게 생일을 맞는 것 같습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하시지만, 지난 6년의 세월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단식중이라 먹지는 못하지만 생일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많이 달라'라고 하자 순간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내공이 느껴집니다.

7시 문화제는 공연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민중가수 '우리나라'가 정말 많은 노래를 불러주시고 갔습니다. 큰 집회가 아닌 작은 문화제에서 맛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노래는 기륭노조와 사연이 많은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포클레인 위에 앉아있던 김소연 분회장은 노래가 나오자 벌떡 일어나서 함께 부릅니다.

노래제목처럼 지난 6년간 기륭의 조합원들은 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대내였을 겁니다. '연탄 한장'이라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라이브콘서트를 보는 기분입니다.

갑자기 발언을 하라고 하십니다. 처음 왔는데 말만 하기도 그래서, 후배들을 팔았습니다. 급하게 '새물'이라는 민중가요에 맞춰 문선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역시나 급조해서 그런지 제가 보아도 엉망이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습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이제 너무 자주 와서 죄송하다는 말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오늘 서강대, 서울대, 인천, 그리고 성균관대 학생들이 오셨는데 자주 오실 수 있죠?"

참가한 학생들은 차마 못한다는 말은 못하고 큰소리로 '네'라고 대답합니다. 마땅히 할 말도 없고 죄송스럽고 또 앞으로 자주 와야 되기도 해서 또 후배들을 팔았습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약속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합니다.

문화제는 9시쯤 끝났습니다. 한 조합원은 아홉 시가 되자 급하게 핸드폰의 DMB를 켜십니다. 꼭 봐야 하는 드라마가 있는 가 봅니다. 주변에서 학생들도 있는데 소리를 낮추라며 핀잔을 주십니다. 그렇게 그곳에는 수십여 일의 단식을 하고, 구속을 당하고, 6년이 넘게 투쟁을 했던 투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저 사람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22일) 혜화동 재능교육본사 앞에서는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가압류를 신청한 회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1000일이 넘게 투쟁한 사람들입니다. 21일에는 양재동 현대차 앞에서 100여 일이 넘게 투쟁하던 동희오토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기륭노조의 1800일의 시간은 이렇게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의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문화제 말미에 12일 기륭전자의 합의가 철회된 것이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정책과 맞물려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고용을 늘이겠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기륭의 합의는 확실히 분위기를 깰만한 겁니다.

정권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겁니다. 기륭의 싸움이 모든 노동자들의 싸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20대 청년들의 이해가 걸린 싸움이라는 것을.

요즘 20대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88만 원 세대부터 청년유니온까지, 그리고 20대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다룬 성찰적 책에서부터 20대 자산관리 책까지 그야말로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잠시 접고, 그냥 일단 한 번 기륭에 갑시다. 거기에 우리가 책과 강의실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현실과 우리들의 미래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거 다 떠나서 20대도 인간인데, 인간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면 인간적으로 한 번쯤 두 눈으로 확인해보아야지요. 20대 청년들이 모두 기륭에서 꼭 한 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제에 참여한 '전태일 열사 40주기 실천단' 소속 대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화제에 참여한 '전태일 열사 40주기 실천단' 소속 대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문화제에 참여한 학생이 만든 영화 패러디 피켓. '비정규직'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문화제에 참여한 학생이 만든 영화 패러디 피켓. '비정규직'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대학생사람연대

관련사진보기



태그:#기륭노조, #기륭투쟁, #대학생사람연대, #박정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