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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SK의 4연승으로 끝을 맺었다. 보는 사람들 다수가 조금은 김이 샌다, 흥이 나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SK 선수단에게 쉬운 승부였냐고 묻는다면 '말이 되냐'는 표정의 답을 얻을 게다. 4차전 도중에 구토를 하며 경기가 끝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만수 코치의 심정으로 다들 그러했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승부가 결정나고, 컴퓨터에서 동영상 하나를 불러냈다. 2009년 한국시리즈 SK 와이번스 대 KIA 타이거즈. 연승 연패를 주고받으며 7차전까지 간 끝장승부였다. 동영상을 보는 곁에 책 한 권을 두었다. 그때 왜 SK는 그토록 원하던 한국시리즈 3연패에 실패했을까. 올 한국시리즈에선 어떻게 연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답이 될 힌트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랜덤하우스 펴냄)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헹가레를 받는 조범현 감독. 올해의 SK는 이 장면을 위해 독하게 뛰었고 그 결과 2010년 우승팀이 되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많은 장면을, 우리는 야구에서 만날 수 있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헹가레를 받는 조범현 감독. 올해의 SK는 이 장면을 위해 독하게 뛰었고 그 결과 2010년 우승팀이 되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많은 장면을, 우리는 야구에서 만날 수 있다.
ⓒ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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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그 위대한 승부

모든 승부는 위대하다. 그러나 작년 한국시리즈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이 책을 곁에 둔다면 그 여운을 더욱 길게 음미할 수 있겠다.
 모든 승부는 위대하다. 그러나 작년 한국시리즈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이 책을 곁에 둔다면 그 여운을 더욱 길게 음미할 수 있겠다.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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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다 똑같아요. 그때 우리는 이기고 있었어요. 6회초 5-1이 됐을 때, 상호가 홈을 밟았을 때, 이겼다고 생각했어요. 남은 아웃카운트는 겨우 12개였어요. 우리가 1년 동안 잡은 아웃이 수천 개예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거 알아요? 그 전날, 마지막 시합이잖아요. 밤새 고민 했어요. 몸도, 마음도, 머리도, 온통 야구 생각 밖에 안했어요."

이 책의 지은이는 경향신문 이용균 기자와 SK 전력분석팀의 김정준 팀장. 경향신문 이용균 기자에 대해 스포츠춘추의 박동희 기자는 "프로야구 기자 중 최고의 글쟁이"란 찬사를 보냈다. 또 한 사람 김정준 팀장은 그 승부를 겪어냈던 SK 관계자다. LG와 SK 재직 시절 상대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두 번이나 현장에서 지켜 본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상사이기도 한 김성근 감독이다.

이 두 명의 야구 전문가들은 작년의 기록을 더듬어, 아니 정확하게 불러내어 복기했다. 그 기록이 네이버 스포츠에 연재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야구담론서가 탄생했다.

"경기 전날 KIA 선발 구톰슨에 대한 공략법을 준비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구톰슨의 시즌 중 보였던 움직임, 선발로 등판했던 3차전의 투구 내용. 그리고, 3차전이 끝난 뒤 나온 구톰슨 의 언론 인터뷰도 참고 대상이었다. 구톰슨의 컷패스트볼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공 끝이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잘 던지는 투수였다.

김 팀장은 3차전이 끝난 뒤 구톰슨의 언론 인터뷰에 주목했다. 구톰슨은 "날씨가 좋지 않아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볼 스피드도 좋지 않앗지만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아 경기 운영이 어려웠다"고 했다." - <3차전의 구톰슨은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로야구의 전력분석은 승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2009 한국시리즈 7차전은 승패를 좌우할 승부처가 정말로 많이 나왔다. 팬들은 기회에 환호하고 위기에 마른 침을 삼켰지만 각 팀의 벤치와 전력분석팀은 흥분할 틈도 없이 지략 싸움을 펼친다. 그 승부처의 복기는 독자들을 1년 전 잠실구장의 관중석으로 시간이동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불펜진의 소진은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김재현의 대타 성공으로 맞은 4회초 무사 1,3루에서 추가 득점이 이뤄졌다면, 5회 이재원 대타는 없었다. 이재원의 대타가 성공했더라면, 공격 옵션보다 수비 강화를 고민할 수 있었다. 김강민을 대수비로 출전시키며 외야 라인을 강화했다면 7회말 김원섭의 타구는 안타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수천 경기를 지켜 본 해설자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야구에서 가정이란 모두 결과론일 뿐이다. 선택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업계 최강'을 자랑하는 SK 전력분석팀도 의외성이란 복병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이 결국 뼈아픈 패배의 빌미가 됐다.

"그러나 결국 한국시리즈 1차전을 내준 것은 6번 이종범을 막지 못해서였다. KIA 벤치는 이종범을 타선의 '키 맨'으로 삼았다.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 경험과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이 고려됐다. 이종범은 1차전에서 6회 2타점짜리 역전 좌중간 안타를 때렸고 8회 또다시 1사 2,3루에서 결승타를 터뜨렸다. 특히 6회 때린 안타는 SK가 준비했던 KIA 중심타선 대비책의 결과였다.

최경환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 타석이 3차전 대타 출전 이후 겨우 2번째 타석이었다. 전력분석팀의 커버 대상에서 빠져있었을 뿐 아니라, 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타격 내용을 체크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김 팀장은 "그라운드에 있는 그 어떤 선수에게도 최경환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배터리는 어느 코스로 승부해야 하고, 수비들은 어떤 방향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두가 잊어버린 상태에 가까웠다."고 했다. 최경환의 평소 타구는 우중간을 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견수 김강민과 우익수 박재홍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하기 어려웠다."

야구를 보는 새로운 눈

아버지나 친구를 따라 처음 가 본 야구장. 멋진 플레이와 하늘을 가르는 홈런에 환호성을 치고 나니 야구에 관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생기고 TV 중계를 챙겨보게 된다. 점수가 나는 과정에 관심이 생기더니 어느새 우리팀 뿐만 아니라 상대 선수까지 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선수와 승패를 넘어 그 상황과 과정을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기사 연재 때 볼 수 없었던 김정준 팀장의 관전 가이드는 야구를 보는 우리의 눈을 한껏 높여줄 주옥같은 자료다. 볼배함, 투수의 버릇(쿠세), 타선의 조합에서 선수들의 심리까지. 현장 경험이 잘 녹아들어있다.

"박경완은 도박사 기질이 충분히 있다. 쉽게 말해 승부수를 던질 줄 안다는 말이다. 언젠가 그에 대해서 한 번 물어봤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자기는 덕아웃에서 레그가드 차고 장갑 끼고 글러브 끼면서 홈플레이트 뒤 포수 자리로 걸어가는 동안 이번 이닝에 상대할 타자들과의 수 싸움 계산을 끝낸다고 했다.

그 1이닝의 시뮬레이션이 이미 박경완의 머릿속에서 모두 끝나 있는 거다. 단순히 이번 이닝에 나올 3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타자가 나오고, 몇 점을 내줘도 되고, 따라서 어떤 타자를 어떤 볼 배합으로 승부해야 하는지, 결정구는 몇 구째 어떤 공이어야 하는지까지 머릿속에 모두 그려놓는 것이다. 박경완은, 그런 남자다."

책을 읽고 영상을 찾는다. 영상을 보다 책장을 넘기기를 반복하니 그 경기 하나가 우리에게 던져준 이야깃거리가 이렇게 많았나 감탄한다. TV엔 피곤이 한껏 묻어나지만 승리의 기쁨에 미소짓는 김성근 감독이 보인다. 그랬다. 2009년 KIA의 우승엔 SK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허를 찔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SK이기에 올해엔 더욱 강하고 독했다.

상대가 들고 나온 수를 모조리 봉쇄하고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SK는 올해의 최강자 소리를 듣기에 손색이 없다. 이 강함을 깨트려야 할 일은 나머지 7개 구단의 몫이 됐다. 벌써 내년 시즌 개막이 기다려지니 겨울을 어찌 보낼까 걱정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승부의 위대함과 공 1구의 열정을 아는 모든 야구팬들에게 감히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

김정준 원안, 이용균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10)


태그:#한국시리즈,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야구멘터리, #이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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