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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신동아>는 "소설 <강남몽>의 4장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를 차용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월간 <신동아>는 "소설 <강남몽>의 4장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를 차용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 창비-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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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출간돼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소설가 황석영씨의 <강남몽>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최근 발간된 월간 <신동아> 11월호는 "<강남몽>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의 상당 부분이 조성식 <신동아> 기자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내용을 빼다 박았다"며 사실상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 강남 형성사를 다룬 소설 <강남몽>(2010년, 창비)의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조직폭력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조성식 기자의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2009년, 동아일보사)는 김태촌·조양은씨 등을 인터뷰해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파헤친 책이다.

소설 <강남몽>을 펴낸 창비의 한 관계자는 "이미 공개된 여러 자료를 섭렵해 50년의 역사를 소설로 쓴 것"이라며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작가가 참고한 여러 자료 중 하나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작가도 그동안 <강남몽>이 다큐소설이라는 점을 밝혀왔다"고 강조한 뒤, "학술논문도 아닌데 참고한 자료를 일일이 밝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표절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작가와 연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주먹들의 증언이 <강남몽>의 서사를 형성한다" 

<신동아>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서사한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강남몽>의 상황을 닮았다"며 "주먹들의 증언과 비슷한 내용이 <강남몽>의 서사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대구 출신 주먹인 조창조씨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서 자신의 싸움의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운동선수마다 약점이 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다 간파하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한마디로 꾀를 부린 거죠. 권투한 친구들과도 많이 붙었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 실전에서 가장 덕본 건 씨름입니다."(298쪽)

조창조씨의 이러한 증언은 고스란히 소설 <강남몽>에 옮겨져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각 부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가령 상대방이 권투하는 자세로 나오면 유도식으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이나 태권도로 공략했다."(265쪽)

조창조씨의 '직접서술'이 3인칭의 간접서술로 바뀌었을 뿐 표현도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표절'로 의심받을 만한 사례는 더 있다.

"조씨는 운동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육상을 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권투와 씨름, 유도를 배웠다. 도장에도 다녔지만 혼자 집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고1 때는 태권도를 연마했다."(<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297쪽)

"그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싸움으로 또래들 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십대 때부터 권투와 씨름, 유도를 배웠고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는데 몇 년을 단련한 것은 아니고 반년에 몇 개월씩 알짜 기술만을 연습했다."(<강남몽>, 265쪽)

"'동생'은 '후배'로, '싸우니'는 '싸우게 되니'로 바뀌었다"

또한 <신동아>는 OB파와 김태촌씨의 다툼, 화해 등에 관한 일화도 의심받을 만한 대목으로 꼽았다.

"김씨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OB파에 난자당한 친구 이석○씨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이동재씨의 사무실을 급습했으나 실패했다. 김씨에 따르면, OB파와의 전쟁은 이동재씨가 이석○씨를 찌른 동생들을 김씨측에 보내 야구방망이로 맞게 함으로써 종결됐다. 얼마 후 김씨는 화해의 표시로 건달 단합 체육대회를 구상했고, 이씨도 적극 찬성했다. 그해 6월 한강 둔치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을체육대회가 그것이다. 이 행사에는 유지광씨를 비롯한 주먹계 원로들과 송태준 박종석 정학모씨 등 호남주먹계의 선배 다수가 참석했다. 또한 구속된 조양은씨를 대신해 양은이파를 이끌던 백영○씨도 동생들을 거느리고 동참했다. 백씨에게 행사에 참여하게 된 사정을 묻자, 김태촌씨의 얘기와는 달리 자신이 먼저 제안해 성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생들끼리 자꾸 싸우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뜻에서 마련했다는 것이다."(<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56-157쪽)

"강은촌은 이대권을 칼로 찌른 놈들과 박광현의 영업부장을 때린 자들을 보내어 응징을 받게 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강은촌이 부하들이 그들을 야구방망이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뒤에 말썽은 종결됐다. 강은촌은 그맘때부터 현실에 눈뜨기 시작하고 이를테면 철이 들었다. 건달들의 친목을 도모하자며 그가 제안하여 새마을축구대회를 열었는데, 자유당 시절부터 늙은 선배들과 범호남파의 일세대 상경파 주먹들이 거의가 다 왔고, 구속된 양태파의 대리인 김현수도 동생들을 이끌고 참여했다. 후배들이 서로를 몰라서 자꾸 싸우게 되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취지였다고 그들은 말했다."(<강남몽>, 318-319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서 백영○씨가 증언했다는 "'동생들끼리 자꾸 싸우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뜻에서 마련했다는 것이다"라는 대목과, <강남몽>이 서술한 "후배들이 서로를 몰라서 자꾸 싸우게 되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취지였다고 그들은 말했다"라는 대목은 거의 같은 문장이다.

<신동아>는 "'동생'은 '후배'로, '싸우니'는 '싸우게 되니'로 바뀌었고 '서로를 몰라서'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례를 한 건 더 제시했다.

"정씨 형제는 그 일이 전낙원씨의 영향력과 관련된 것으로 믿고 있다. 덕일씨에 따르면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이던 엄삼탁씨가 '당신들이 살 길은 전낙원씨와 화해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는 것."(<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93-194쪽)

"안기부 기조실장 엄상택은 전씨 형제에게 '당신들이 살 길은 원 회장과 협조하는 것뿐'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강남몽>, 325쪽)

황석영씨의 소설 <강남몽>의 표절 의혹을 보도한 월간 <신동아> 11월호.
 황석영씨의 소설 <강남몽>의 표절 의혹을 보도한 월간 <신동아> 11월호.
ⓒ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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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호텔 습격사건, 조양은-김태촌 첫 구속 등도 '유사'

<신동아>는 그밖에도 ▲홍양태(조양은)를 '홍깡'('조깡')으로 표현한 것 ▲조창호(조창조)가 중앙청과시장(염천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장면 ▲진상사파(신상사파)를 습격한 모나코호텔사건('1975년 사보이호텔사건') ▲홍양태와 강은촌(김태촌)의 만남 ▲강은촌의 오종오(오종철) 습격사건('1973년 엠파이어호텔 습격사건') ▲강은촌과 홍양태가 처음 구속되는 대목 ▲양태파(양은이파)의 내분 등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서 차용했다고 주장했다.

<조양은 구속 관련>

"조씨가 성인이 되어 처음 구속된 것은 1970년 2월이다. 명동 캠퍼스 다방에서 벌어진 패싸움으로 8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출소 직후 소공동의 명소이던 조선호텔 고고클럽 투모로우의 관리를 맡았다. 이듬해 8월엔 중앙정보부 간부로 호남주먹의 후견인 노릇을 하던 문무회씨에게 대들었다가 괘씸죄(?)로 구속돼 6개월간 실형을 산다."(<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48쪽)

"양태가 서울에 올라와서 징역을 산 것은 두 번인데 첫 번째는 명동의 씨티다방에서 패싸움을 벌인 일로 십개월 옥살이를 했고, 두 번째는 조선호텔 고고클럽인 투모로우에서 기관원에게 대든 사건으로 육개월을 살았다. 첫 번째 사고는 명동의 토박이 똘마니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고 두 번째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강남몽>, 143쪽)

<사보이호텔 습격사건 관련>

"조씨를 비롯한 무교동 식구들은 사보이호텔사건 이후 수사기관에 쫓기는 몸이 됐다. 가장 먼저 체포된 정학모씨는 7개월간 형을 살다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사건이 난 지 3년쯤 지나 조씨는 서울지검 윤모 검사실을 찾았다. 윤 검사는 그와 동향인 평양출신이었다. '고마운 검사였습니다. 살마을 통해 만나자고 해서 찾아갔어요. 사건 기록에는 내가 총지휘한 걸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사가 나보고 적당히 피해 다니며 공소시효를 넘기라고 조언하더군요. 공소시효가 7년인데 절반쯤 남았을 때였습니다. 윤 검사는 오종철과 조양은을 자수시키라고 권했습니다.'"(<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305쪽)

"홍양태가 잠행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왕래하는 중에도 수배령은 풀리지 않았고, 모나코호텔 사건에서 홍의 윗선으로 지목된 정학영과 조창호에게도 검거령이 떨어져 있었다. 정학영은 순순히 잡혀서 칠개월을 때우고 집행유예로 나왔고 조창호는 공소시효를 절반쯤 남긴 시점에서 동향 선배인 서울지검 아무개 검사를 찾아갔다. 때마침 오종오가 심한 부상을 입고 은퇴한 사실이 검찰에도 알려진데다, 이미 형을 살고 나간 정학영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자기처럼 선배세대들은 오히려 말렸다는 식으로 진술한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겨 조창호는 무혐의 처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제일조건이 홍양태를 자수시키는 것이었다."(<강남몽>, 295쪽)

<동아일보> 사설 "당당하게 출처를 소명하는 것이 도리"

<신동아>는 "<강남몽>이 그려낸 실존 주먹 관련 에피소드는 대부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서술한 것"이라며 "독자들도 두 책을 겹쳐 읽으면서 조양은-홍양태, 김태촌-강은촌, 조창조-조창호, 엄삼탁-엄상택, 정학모-정학영, 신우회-청우회의 행적을 비교해보라"고 주문했다.

이어 <신동아>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논픽션이고 <강남몽>은 소설이므로 표절로 몰아세우기엔 마땅치 않다"면서도 "그렇다면 거장의 리얼리즘 소설 안에 표절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목이 숱하게 발견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라고 독자의 판단을 물었다.

<신동아>는 황석영씨의 해명과 관련, "작가의 의견을 듣고자 수일에 걸쳐 집 전화, 휴대전화, SMS로 접촉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장문의 이메일로 취재경위, 보도방향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편 <동아일보>는 19일자 사설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8년 논문 표절과 관련해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등을 표절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강남몽>은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렵고 최소한 저작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법적 논란을 떠나 당당하게 출처를 소명하는 것이 양식있는 작가의 도리"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태그:#황석영, #강남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조성식,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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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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