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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는 <경향신문>이었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지난 1일 <경향신문>은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시동을 걸었다. 신문은 사설을 통해 "(민노당은) 3대 세습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두고 비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하고 말았다,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고 밝혔다. 지난 달 29일 민주노동당(민노당)이 밝힌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는 당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었다.

<경향신문>의 비판에 대해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은 <경향신문> 절독을 선언하며 반응했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등 인터넷 언론의 합류와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연개련) 상임정책위원, 이택광 교수 등 많은 인사들의 글로 논란은 더욱 확장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와 새언론포럼은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이었나' 토론회를 개최했다. "오늘날 남북문제와 이슈를 생산·유통·소비하는 미디어의 기능과 역할을 살피고 남북문제 해결의 진화적 실마리를 찾아가자"는 취지였다. 18일 오후,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토론회는 유영주 언개련 정책위원의 발제로 진행됐다.

북한 3대 세습 문제, 보수 프레임에 갇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배포한 웹 자보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배포한 웹 자보이다.
ⓒ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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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 위원은 사안의 흐름을 '우파의 주류→ 진보의 마이너→ 진보의 즉자적 반응→ 진보의 클리셰한(진부한) 반 비판'으로 분석했다.

<경향신문>의 사설이 나오기 하루 전인 지난 달 30일 <조선일보>가 "3대 세습을 못 본 체하는 좌파는 가짜 좌파다"는 사설(우파의 주류)에 반응해 손호철 교수가 "남한 진보여,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라"는 글을 실은 것이 '마이너 진보'의 반응이었다는 것. 이후, <경향신문>이 1일 사설을 통해 '진보의 즉자적 반응'을 보였고, 지난 13일 <미디어오늘>이 가세해 "경향신문의 사설은 과도하게 문제를 단순화시켜 쟁점화했다"는 '진보의 클리셰한 반 비판'을 내보낸 것이 사안의 구도라는 설명이다.

유 위원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진보 정치권의 낡은 '종북' 논란을 저널리즘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으로는 진보적 저널리즘으로서의 리더십을 검증받을 수 없다"며 "여기서 남는 물음은 '북 세습을 둘러싸고 형성된 사회의 가치관과 선입관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이다"라고 정리했다. 진보 언론은 보수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더 나아갔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진보의 클리셰한 반 비판'으로 평가된 <미디어오늘> 사설에 대해 류정민 <미디어오늘> 취재1부장은 "유 위원은 <경향신문> 사설이 <조선일보> 사설에 영향 받지 않았다면, <경향신문> 사설은 좋은 사설이었다고 평가한 것 같다"며 "유 위원이 정파적 관점에서 <경향신문> 사설을 해석했고, 신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변론을 한 것 아닌가 싶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류 부장은 "진보의 기본은 존중에 있는데 이번 논쟁에서 존중이 무너졌다"며 "민노당이 북한 세습을 비판하지 않으면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한 <경향신문>의 입장에 의해 민노당에 종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정부더러 북한 세습을 비판하라고 하진 않으면서 민노당은 비판하라는 논리"라며 "민노당이 어떤 견해를 표현하건 남북관계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 건 민노당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 부장은 "보수 측에서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북한 옹호'라는 흐름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런 여론몰이에 <경향신문>이 일조했다"며 "민노당의 커밍아웃을 왜 이리 채근하는지가 이번 논란의 중요한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의 논쟁"

1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의 모습이다.
 1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의 모습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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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경향신문의 보도 태도가 아니라 북한의 권력 승계에 대한 진보의 평가 및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며 토론의 흐름을 바꿨다. 이 교수는 "이 논쟁의 뿌리는 결국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의 논쟁"이라며 "왜 이 논쟁을 계속하는지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이것을 통해서 진보의 의제를 점검하고 가자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경향신문> 사설을 시작으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결국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PD, NL이 드러났다"며 "진보 내부의 문제들을 우리도 모르게 폭로한 것으로, 논의가 쏟아져 나와 시끄럽게 떠드는 게 진보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북한이 무엇인지 툭 까놓고 이야기 하며 공론의 장에서 검증받자는 것이다.

안정식 SBS 기자는 "내재된 논쟁의 지점은 결국 NL-PD 논란인데, 3대 세습이라는 게 진보 세력의 절대적 입지를 줄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분석했다.

안 기자는 "일반인들은 3대 세습에 대해 '저런 애들한테도 계속 퍼주기해야 해요?'라는 생각을 갖는다"며 "논쟁을 벌이는 양 측은 결국 3대 세습에도 (불구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이므로 (일반인들의 입장이 돌아선 가운데) 왜 교류가 필요하냐를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3대 세습에 대해 내부 싸움에 몰입하는 것보다는 '위기'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경향> 논쟁은 비생산적 ... '북한 현실 어떻게 볼까' 접근 필요"

1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의 모습이다.
 1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의 모습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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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는 "오바마 정권의 제국주의적인 대북정책, 6자회담 관련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동조 등의 문제를 종합해서 3대 세습을 봐야 하는데 북한의 권력 체계 이동만 잘라서 '웃기다' 식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불행하다"며 "<경향신문>도 역사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현상을 무 자르듯이 무지막지하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고 박사는 북한에 대한 진보언론의 보도 태도로 문제를 확장 시켰다. 고 박사는 "보수 매체와 진보 매체의 6자회담 보도는 거의 차별성이 없었다"며 "이런 2~3년의 흐름을 봤을 때 <경향신문>의 사설과 칼럼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남북 문제, 북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풍조인데 이는 보수, 진보 모두에게 문제"라며 "향후 5~10년 안에 (북한에) 큰 변화가 왔을 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보고 적극적이고, 깊이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태호 <한겨레> 국제부 기자는 "대부분의 논쟁들이 아직도 분단적인, 이념적인,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어 이를 피해야 하는데 <경향신문>의 논쟁이 생산적이었나 회의적"이라며 "(지금은) 당 대표 회의에서 성급하게 김정은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야만 했던 북한의 현실 문제를 어떻게 볼까, 우리가 접근해야 할 방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생산적인 논의에 갇히지 말고 북한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이고 깊이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태그:#북한 3대 세습, #경향신문, #민주노동당, #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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