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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어난 일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감각기관을 통해 느끼고 그것들을 기억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이라 합니다.

K형과 나는 실제 큰 교통사고를 겪었고 의식이 없는 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니,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사고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의식 회복 후 K형이 지금 겪고 있을 정신적인 혼란을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회복 초기 그저 곤하게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몸이 자유롭지 못했고 특히 의사소통이 어려울 만큼 어눌한 자신의 말투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통해 교통사고를 입었다는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사고 사실을 믿지 못했을 정도로 사고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백지상태였지요.

사고 후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의식을 찾아 사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K형은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겁니다. 의식회복 후 K형은 둘째아이의 탄생으로 인해 부인과 떨어져 계시는 시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의 시간들이 K형에게 상당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건대 초기의 재활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단순한 동작의 끝없는 무한반복이 필수입니다. 그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한데 그러한 인내는 재활에 대한 강한 동기유발에서 비롯됩니다. 성공적인 재활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고 지금이 K형에게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입원하고 계신 재활병원에는 수많은 재활환자들이 있을 겁니다. 의식회복 후 재활병동에 입원한 초기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저 사람은 좀 심하고 낫기는 할 상태인지 모를 지경이다'는 생각을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의식회복 초기 사랑하는 아내가 24시간 옆을 지키면서 각각의 환자별로 엄격한 스케쥴로 각종의 치료과정이 진행되는 재활병원의 전 과정을 관리해주고, 내가 해야 할 사소한 일들을 도와주어 사고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로 인해 내 몸의 불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겁니다.

 2008년 5월에 열중했던 108배로 초기의 재활은 단순동작의 무한반복이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재활운동입니다.
▲ 불교에서하는 108배를 운동으로 응용한 '108배 운동' 2008년 5월에 열중했던 108배로 초기의 재활은 단순동작의 무한반복이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재활운동입니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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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재활환자들의 상태가 현재의 내 모습이라는 걸 자각하시길...

돌이켜 보면 재활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의 상태가 곧 나 자신의 상태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 나는 곧 낳게 될 것이다'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정작 중요한 재활에는 별반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재활 의료진 누구나가 초기의 재활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 하곤 하는데 제 경우에는 그 중요하다는 재활초기의 시간들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겁니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저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거쳐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의지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고 후 만 1년 만에 아내를 곁에서 떼어놓고 제 사고로 헝클어진 가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재활에 돌입하게 되는 긴 과정을 거치게 된 겁니다.

그러한 제 경험에서 이제 갓 의식을 회복한 K형에게 지금 단계에서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것은 가족과 보호자에서 떨어져 독립적인 병원생활을 하면서 생활전반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해 그들이 고쳐야 할 부분들을 살펴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겁니다.

K형이 의식을 회복하면서 출생한 둘째로 인해 부인은 산후조리를 하실 것으로 생각되고, 아마도 다른 가족들이나 간병사가 옆에서 K형을 도울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각 환자에게 분야별로 치료시간이 지정되어있는 재활병원의 체계에 따라 생활할 텐데 K형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챙기고 치료사와 대면접촉을 하면서 그들에게 치료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치료과정을 소상히 이해하시는 게 지금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내를 떼어놓고 혼자서 본격적인 재활에 접어들면서 검색한 자료 중 지금도 소중히 기억하는 '재활은 학습이다'란 논문이 있습니다. 몸으로 재활을 경험한 제 입장에서 100%공감하는 논문이었으며 K형에게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각 분야의 치료사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재활하면서 제가 치료과정에 가진 가장 큰 불만이 재활이나 내 상태에 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그저 의례적 무조건적인 치료과정을 되풀이하여 정작 재활의 주체가 되어야 할 환자는 치료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활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재활에 관한 개념을 먼저 구축하셔야 하는데 각 분야의 치료사들의 설명과 다른 재활환자들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 긴 시간 하셔야 할 재활의 개념을 굳건하게 터 잡으십시요.

 장애를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 한적한 장소만 찾아 숨어서 재활운동을 하는 장애우가 많지만 당당하게 어울려야 더 큰 자극과 발전이 담보된다 생각합니다.
▲ 재활이 제 궈도에 오르면서 자가재활을 시작 장애를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 한적한 장소만 찾아 숨어서 재활운동을 하는 장애우가 많지만 당당하게 어울려야 더 큰 자극과 발전이 담보된다 생각합니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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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입고 평생을 운명처럼 장애를 가지고 살 것인지, 아니면 어렵지만 재활을 통해 극복할 것인지 그 선택은 온전히 K형 몫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 곰곰이 생각을 모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수단도 이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온전히 철저히 K형 혼자서 감내해야 할 재활입니다.

간병사가 됐든 가족이 됐든 옆에서 사소한 것들을 도와주려는 이들의 도움부터 과감하게 거부하시고 혼자서 해나가는 습관을 철저히 들이셔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온전하게 혼자의 힘으로 해나가려는 철저한 자기경계가 주변에 번지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고 후 1년 만에 집근처의 재활병원에 혼자 입원생활을 하면서 다른 환자의 보호자나 간호사가 저를 도우려고 할 때마다 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도와주시지 않는 게 저를 돕는 겁니다!'란 말로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도움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명료하지 않은 의식 속에서 치료과정을 소화하시기도 벅차리라 생각 합니다. 의식을 잃으면서 잠든 K형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일이 깨워야한다고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경험한 우리 몸의 회복력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그러니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내 몸에 상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내게 가장 효과적인 재활은 무엇인지 개념을 잡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2009년 여름으로 언제든 어디서든 공간과 시간이 허락하면 내게맞는 재활운동을 개발해 스스로 해야합니다. 이는 초기재활기간에 재활에 대한 개념정립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언제 어디서나 공간을 찾아 끝없이 내게 맞는 재활을 해야 2009년 여름으로 언제든 어디서든 공간과 시간이 허락하면 내게맞는 재활운동을 개발해 스스로 해야합니다. 이는 초기재활기간에 재활에 대한 개념정립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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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다시 운전을 하면서 한동안 시달린 '외상후 스트레스'가 있는 반면 그걸 어렵게 극복하고 새롭게 알게 된 개념 중 '외상 후 성장'이란 것도 있더이다. 심한 외상 후 그것을 오히려 새로운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는 개념입니다. 긴 무의식의 시간을 각자 이겨내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연결된 K형과 내가 긴 시간이 흐른 후 각자의 자리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외상 후 성장'을 이뤄낸 사람으로 우뚝 서자는 다짐을 하면서 K형에게 드리는 두 번째 편지를 맺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4월 사고 후 4개월만에 의식을 회복한 K형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로 미만성 축삭손상으로 인한 장애라는 공통의 장애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공개편지를 보내서 외롭고 힘든 재활을 함께하고자 함



태그:#K형에게 드리는 편지, #외상성 뇌손상, #미만성 축삭손상, #재활, #교수형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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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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