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 13일 오후 9시 39분]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W'를 만들었던 박정남 프리랜서 PD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MBC, 'W'라는 브랜드 가치를 생각했다면 없애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W'를 만들었던 박정남 프리랜서 PD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MBC, 'W'라는 브랜드 가치를 생각했다면 없애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07년, 나이지리아 무장단체가 현지에서 근무하던 대우건설 직원을 납치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언론들은 직원들의 납치 사실과 귀환 여부에만 초점을 맞췄다. 무장단체가 왜 납치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 그때 현지에 들어가 주민을 인터뷰한 언론사가 있었다. 5m 앞에서 석유가 나오지만 정작 먹을 물조차 없어 굶주리는 상황에 놓인 주민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주민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납치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했음을 보도한 곳이 바로 MBC <W>였다.

그 <W>가 폐지된다. 높은 제작비 대비 '효율성'이 없다는 것이 김재철 MBC 사장의 판단이다. 프리랜서 PD로 MBC에서 일하며 나이지리아 현지 취재를 맡았던 박정남 PD는 "국제사회 흐름에 대해서 우리 시각으로 보는 국제뉴스를 만들려고 한 국내 유일의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W>가 처음 만들어진 2005년부터 4년간 <W>와 함께하며 약 50편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지금도 외국 현지 코디네이터와 <W>팀 사이의 다리 구실을 하는 등 <W>와 맺은 인연을 놓지 않고 있는 <W>의 식구다. 그에게 <W>는 돌아가고 싶은 친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갈 곳이 사라지게 되었다.

"<W>라는 브랜드 가치 생각했다면..."

12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박 PD는  "MBC, <W>라는 브랜드 가치를 생각했다면 없애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그는 <W> 폐지 직전에 사측이 제작비를 올려주고 김혜수씨를 MC로 세운 것에 대해서도 "쥐약을 먹인 것 같다"며 "제작비를 올려준 다음에 왜 이렇게 제작비를 많이 쓰느냐고 없애버린 격"이라고 날을 세웠다.

"공영방송인데도 SBS보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비율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웃긴 거예요. <W>와 <후 플러스>를 폐지하고 그 대신 <여배우의 집사>,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편성된다죠. 정말 쪽팔리지 않아요? 어떻게 케이블을 따라하죠? MBC가 그렇게 먹고살기 힘든가, 뭐하는 짓인가 싶죠. 상당히 괜찮은 회사인데 뭐 하나 바뀌어서… 아니지 두 개 바뀌었구나. 하나 바뀌면서 연쇄 작용으로다가 같이 바뀌는 바람에 이렇게 됐어요."

박 PD가 바뀌었다고 말한 '두 개'는 대통령과 MBC 사장 자리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재철 사장 취임 후 제작 환경이 대폭 바뀌었다는 말이다. 박 PD는 "지금의 MBC는 엉망이지만 구성원들의 저력이 있으니 앞으로의 MBC는 본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며 "<W>의 시즌 2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정남 PD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W> 제작 초기부터 함께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취지로 만든 프로그램인지.
"우리나라는 국제관계가 없으면 먹고살 수가 없는 나라잖아요. 그런데 해외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위치가 어디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접근이 필요했죠. 그런 면에서 꼭 필요한 방송이었어요.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고민은 국제사회 흐름에 대해서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뉴스가 아니라 우리 시각으로 보는 국제뉴스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 일정 정도는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W>가 중요시했던 것 중 하나가 스트레이트성 뉴스가 아니라 그 이면을 보자는 거였죠. 2007년에 나이지리아에서 무장단체가 대우건설 직원을 납치한 일이 발생해 취재하러 나이지리아에 들어갔었죠. 다른 뉴스는 석방 여부, 밖에 보이는 모습만 방송하고 말지만 우린 납치 배경에 대해 찍었습니다. 원주민을 만나러 직접 현장에 가니까요. 가보니 5m 앞에서 유전이 터지는데 주민들은 먹을 물이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악에 받쳐서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납치해 협상하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뉴스에서는 다뤄지지 않잖아요. 이런 역할을 유일하게 하던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겁니다."

- 구성원들 사이에서 <W>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정말 남달랐죠. 다들 굉장히 좋아했어요. 내부에서도 프로그램 개편 때 옮기고 싶은 프로그램 1순위가 <W>였을 정도였으니까요. 프로그램 자체에 무게가 있으니 다들 욕심을 냈어요. 외부 강연을 나가고 하면 <W>에 대한 질문을 무지하게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W>를 만든 게 영광이었어요."

- 대략 몇 편이나 제작하셨나.
"2005년부터 4년 동안 50편 정도 했어요. 가장 최근에 제작한 건 페루의 '시장과 인간, 사람들' 시리즈였어요.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천일염 생산 염전이 있는데 그 소금으로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그런 얘기였죠." 

"사람 죽이는 기계가 된 시에라리온 소년병, 가장 기억에 남아"

박정남 PD.
 박정남 PD.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은 팔다리 없는 친구였던 닉 부이치치씨의 이야기였어요. 상도 많이 받았고요. 개인적으로는 시에라리온 소년병을 찍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05년 말인가 취재를 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슬펐어요. 전쟁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드는구나 싶었죠. 요만한 애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 팔다리를 자르고 그랬어요. 나라 전체가 정신병원 같았으니까요. 소년병들 중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병원에 갇혀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자기 침대를 끌고 다니고, 내리치는 동작을 계속 반복하고… 끔찍하죠.

소년병을 인터뷰하는데, 그 아이가 '선임병이 임산부 배에 뭐 들었나 확인해 보라고 해서, 배를 갈라 꺼내보니 아들이었다'고 태연하게 말하더라고요. 죄의식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약에 취해 있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머리에 있는 핏줄을 갈라서 그쪽으로 마약을 직접 투입한다고 하니 말 다했죠. 그냥 사람 죽이는 기계가 되는 거예요. 갔다 오고 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원빈씨와 함께 감비아에 갔었는데, 원빈씨도 <W>를 매주 빼 놓지 않고 봤대요. 녹화까지 해서 봤다더라고.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아이들한테 애정이 넘치는 게 느껴졌어요. 사람 참 괜찮다 싶었죠. 바오밥나무 숲에서 아이들이랑 함께 걸어오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때 석양이 지면서 후광이… 진짜 잘생겼다, 한 번 더 감탄했다니까요. 나랑 같이 간 형은 원빈 보고 가슴이 떨린대. 크크크. 정말 조각 같더라고요."

- 섭외와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취재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현장에서 그냥 섭외하면서 찍는 경우도 있고, 사전에 섭외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본에 노숙자를 촬영하러 갔는데 현지에서 거부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전에 뽑아놨던 아이템 중 일본 이발사 양성 교육에 대한 게 있었는데, 오후 10시에 연락을 해봤더니 흔쾌히 오라고 하더라고요. 자정에 이발사가 후배를 지도하고 교육하는 걸 찍었죠. 방송도 잘 나가고 반응도 좋았어요.

신기한 건 한국 사람들이 세계 어디를 가도 있다는 거예요. 시에라리온이고 그루지아고 어딜 가든 있어요. 그 사람들과 접촉해서 현지 코디네이터로 도움을 받죠. 아프리카 쪽은 선교사가 나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아요. 취재 기간은 4주 정도입니다. 사전 조사하고, 현지 연락해서 촬영 가고, 편집해서 사전 시사회를 하고요."

- 위험하지 않았나요?
"콩고 내전 취재를 갔을 때, 콩고강을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찍은 적이 있어요. 저하고 코디네이터하고 둘이서 배를 타고는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강을 지났는데, 한가운데에서 기름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노를 저었어요. 정말 식은땀이 나더군요. 그루지아 전쟁 때도 고리라는 지역에 들어갔는데 운전기사가 계속 성호를 긋는 거예요.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프레스 붙은 차들이 줄줄이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지역 전선이 그루지아 군 지역에서 러시아 군 지역으로 바뀐 거예요. 전쟁의 정말 한가운데였던 거죠. 그때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죠."

- <W>를 제작하면서 전 세계 곳곳을 살펴봤을 텐데, 세계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욕망이죠. 우리가 조금만 양보하면 아프리카에서 굶어죽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버리는 것들을 양보해서 보내주면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한쪽에서는 굶어죽는데 다른 한쪽에선 남아도는 것을 처리하지 못해서 비만이 되는 상황이 황당해요. 개인의 욕망이 모여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든 거고요."

"목숨 걸고 만든 프로그램이 없어지니 눈물 난다"

- 이렇게 돈 주고도 못 살 경험들을 선사한 <W>가 폐지됩니다. 느낌이 어떠셨는지.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목숨 걸고 만든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거고요. 14년 동안 PD를 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었고요. 사장이 시청자를 생각했다면 이 프로그램 폐지 못했어요. 예능 프로그램은 많잖아요. 공영방송 사장이면 이 프로그램을 살려주었으면 해요. 언젠가 <W>에 복귀하고 싶기도 하고요. <W> 시즌 2는 안 할까요?"

- 제작비를 올려주고 김혜수씨를 MC로 영입했는데 갑자기 폐지했습니다. 이례적인 일인데. 
"예의가 아니지 뭐야. 불러다 놓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쥐약 먹인 것 같아요. 제작비 올려준 다음에 왜 이렇게 제작비 많이 쓰느냐 하고 없애버리는 거지. 김혜수씨 같은 경우엔 작가들이 놀랄 정도로 열정적으로 하셨다고 해요."

박정남 전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W' 프리랜서 PD.
 박정남 전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W' 프리랜서 PD.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 폐지의 이유였습니다.
"제작비는 초기엔 편당 5000만 원대였는데, 나중에는 3000만 원대까지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반 시사프로그램은 2000만 원대라더군요. 이전에도 제작비 압박은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원래 <W> 세트가 굉장히 멋졌는데 그 세트도 포기하고 '버추얼'로 바꾼 거잖아요. 50대 되는 본사 선배들도 혼자 현장 가서 찍어오고 그랬어요. 제작비가 없으니까. 재작년부터 폐지 1순위였죠. 그렇지만 없애지 않았어요.

<W>라는 브랜드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한 것 같아요. 공영방송 사장이 맞나 싶죠. <W>가 존재함으로써 MBC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게 있고, 분명히 해야 하는 프로그램인데도 말이죠. 프로야구가 적자라지만 왜 운영하겠어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거든요. 제작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라서 한 번 없어지면 다시 생기기 힘들어요. PD들이 이거 제작하면서 스킬도 많이 느는데 말이죠, 왜 없애나 이해를 못 하겠어요. 사장이 시사 프로그램은 다 싫어하는 것 같은데 한심해요."

- MBC 내부 구성원들의 기류는.
"결사 반대죠, 지켜야 하는데 지킬 방법이 없다는 심정이에요. 사장이 강공으로 나오면서 없애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이제 SBS보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비율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웃긴 거잖아요. 공영방송인데. <W>와 <후 플러스>를 폐지하고 그 대신 <여배우의 집사>,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편성된다는데 정말 쪽팔리지 않아요? 어떻게 케이블을 따라하죠? MBC가 그렇게 먹고살기 힘든가, 뭐하는 짓인가 싶죠."

-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과 후, 김재철 사장 전과 후의 변화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W>가 없어지잖아요. 입막음하려는 게 강하다는 느낌 많이 들고요. 외주에서 일하다 보면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 '빨아주는' 프로그램은 협찬이 잘된다는 걸 느껴요. 최문순 사장 때는 세계사 중심에 서는 아이템을 많이 했어요. 제일 좋았죠. 프로그램 가치에 대해 인정받았고, 제작비 문제가 있었어도 가치를 인정받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돈이 우선시되었어요."

"<W> 시즌 2 기대, 복귀하고 싶다"

- 누리꾼들이 <W> 폐지 반대 청원을 올리기도 하고 시청자들도 <W>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같은데.
"누리꾼들이 <W> 좀 살려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프로그램 살려주세요.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W>를 하면서 NGO 단체들의 모금액이 상당히 늘었다고 해요. 에이즈 관련 방송을 하면 에이즈 퇴치 기금 마련에 성금이 많이 들어오는 식으로요. 시청자들이 점차 세상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인식한 거죠. 이렇게 시청자와 국제문제 간의 소통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쉽게 감동하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두드리면 마음을 열게 됨을 프로그램 만들면서 알았어요. 그러니, <W> 시즌 2로 가야 해요. 기대하고 있어요. 복귀하고 싶어요."

- 지금의 MBC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MBC를 전망한다면.
"김혜수씨가 말했잖아요, 엉망이라고. 그런 것 같아요. 공영방송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혼동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예능해서 얼마나 더 벌진 모르겠지만 돈 버는 게 목적인 회사가 아니잖아요. 시청자에게 해야 될 의무가 있는 건데. 상당히 괜찮은 회사인데 뭐 하나 바뀌어서... 아니지 두 개 바뀌었구나. 하나 바뀌면서 연쇄 작용으로다가 같이 바뀌는 바람에 말이죠. 그래도 미래까지 어둡진 않아요. 구성원들의 저력이 있는 회사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다고 해도 자기 본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이니까요. 그 힘들이 다시 작용할 거라 믿습니다."


태그:#W 폐지, #김재철 , #MBC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