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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김인규 신임 사장이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릴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측이 배치한 청원경찰들에 둘러싸여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KBS 김인규 신임 사장이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릴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측이 배치한 청원경찰들에 둘러싸여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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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7층 중식당 '도림'에서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유재천 KBS 이사장, 김은구 전 KBS 이사 겸 KBS 사우회 회장, 최동호 전 KBS 부사장, 박흥수 전 KBS 이사 등이 참석한 이른바 '7인 비밀회동'에서 오간 대화를 보면, 당시 이명박 정권은 KBS 사장 후임으로 '김인규 카드'를 접었음이 확인된다. 이 모임 이틀 뒤 김인규씨는 'KBS 사장 응모를 포기하며'라는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사장 응모를 포기한다면 그냥 응모하지 않으면 그만일 터인데, 굳이 '개인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을 도모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권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자신을 포기한 사실을 확인하자, 이번 기회에는 '개인적 결단'을 내린 것처럼 비치게 하면서 다음을 도모하자는 뜻이 이 '개인 성명'에 담겨 있는 듯했다.

KBS 내의 김인규 세력

사장 응모를 포기하는 이유가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 출범한 새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정치적 배려, "선거캠프에 몸담는 것 자체가 방송인으로서의 약점이 될 것을 우려해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개인 문제에 앞서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이명박 후보 캠프에 방송전략실장으로 참여하게 된 동기, 그런 것들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이명박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정치적 일체감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이 '개인 성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한 대목이 하나 있다. 다음 대목이다.

"비록 KBS 내부 직원은 물론 외부에서도 떳떳하게 KBS사장으로 나서라는 여론도 적지 않지만, 자칫 사장후보 응모 자체가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 출범한 새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실제 그랬다. KBS 내부에서는 그를 사장으로 옹립하려는 세력이 강건하게 있었다. 이른바 '수요회'라 불린 모임이다. 마치 군부 독재정권 시절 '하나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군부독재 시절, 군부의 주요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TK 출신의 육사 졸업 장교 사조직)를 연상시키는 사조직이라고 KBS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KBS 보도본부 내 '하나회'라 불린 '수요회'가 처음 정체를 드러낸 것은 나에 대한 사퇴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던 2008년 봄의 일이다. 당시 KBS 보도본부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랐다. 당시 보도본부 게시판은 익명으로 글이 올랐다.

보도본부 게시판에 나온 두 개의 글

수요회가 그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인규 선배를 사장으로 옹립하기 위한
KBS 보도본부 내의 사조직 비슷한 것이라는군요.
총국장 출신의 모 선배를 대표로
해설위원실의 모 선배가 실무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매주 수요일 만나서 모임 명칭이 수요회라나... 쩝

김인규 선배를 사장으로 선임하기 위한 방법 등을 모색한다고 합니다.

최근 그 조직이 불어나
지난주 수요일에는 무려 3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는데,
그 모임 성격이 빨리 줄을 서야지 앞으로 챙겨주겠다는, 뭐
이런 결속을 다지는 거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요회의 핵심인 모 선배는
심지어 최근 입사한 경력기자들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들에게 "내가 누군지 아냐"며 "빨리 내 밑으로 줄을 서라"는
웃지못할 제안까지 했다고 합니다.

평소 정연주 사장을 그렇게 욕하고 다닌 모모 선배들의 속셈이
결국 사조직 만들어서 특정인 사장에 앉힌 후
영화를 누려보자는 거라는 것으로 드러나는 셈입니다.

선후배님들.
여러분은 수요회의 부름을 받으셨나요.
아니면 못 받으셨나요.
도대체 보도본부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기가 찰 따름입니다.

이 글과 비슷한 시기에 보도 게시판에 또 이런 글이 실렸다.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선배들의 행태를 비판한 젊은 기자의 글인 듯했다.

준동의 시기인가?
난데없이 보도의 방향을 바로 세우자!
정 사장에 아부한 세력을 처단하자! 류의 선동들이 난무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의 뒷다리나 잡고
뒤통수를 치는 식의 험담이나 음모론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해 나갈 수 없다.

이들은 벌레들처럼
꿀 내음이 나는 쪽으로 무조건
움직이는 방향족속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꽃이 질 때와
꽃이 피는 시기를 벌레의 본능처럼 잘 안다.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천착하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헤아리는 수 밖에 없다

일부 준동 세력이나
노조의 선동에 함부로 놀아나는 경거망동은
KBS의 존립 근거를 흔들고 공영성의 기반을 크게 훼손시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뿐이다.

이 두 개의 글은 당시 KBS 보도본부 젊은 기자들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직후부터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나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KBS 내부에서는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사내 '반 정연주 세력'들이 때를 만난 듯 나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수요회' 모임은 바로 이런 시류에 편승한, '꿀내음을 맡은' 인사들의 모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게시글에 "매주 수요일에 만나서 모임 명칭이 수요회라나 뭐라나... 쩝"이라고 한 뒤 "최근 그 조직이 늘어나 지난주 수요일에는 무려 3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실제 매주 수요일에 만났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려 3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다'는 그 수요일의 모임에 대해 실제 그런 모임이 있었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으며, 참석자는 누구 누구였는지를 얼마 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양지만 찾아다니는 무리들, 김인규 체제의 기둥 되다

KBS 김인규 신임 사장의 취임식 날인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 노조 조합원들이 'MB 특보 낙하산 인사 반대', '공영방송 사수' 등을 요구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KBS 김인규 신임 사장의 취임식 날인 2009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 노조 조합원들이 'MB 특보 낙하산 인사 반대', '공영방송 사수' 등을 요구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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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요일 모임에 참석한 명단을 보니, 이 녀석들, 정말 양지만 찾아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게시글에 나오는 '총국장 출신의 모 선배를 대표'로 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인물이 누구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즈음 어느 인터넷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수요회'라는 이름의 모임 자체가 없다고 부인을 했고, 자신은 대표도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모임이라는 것이 투표해서 대표를 뽑는 것도 아니고, 연장자에다 입사 기수가 가장 빠르면 그냥 좌장이 되기 마련이다. 그가 바로 지금 KBS 보도본부장인 이정봉씨다. 그는 내가 사장 재임 시절, 보도본부 보도국장을 거친 뒤 부산총국장 등 핵심 요직을 모두 거쳤다. 그랬던 그가 이제 '정연주 시대'가 끝나간다고 믿었을까, 그는 '반 정연주'의 기치를 내걸고 새 주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임창건. 지금 KBS 보도국장, 그도 나의 재임시 이른바 '좋은 보직'을 누렸다. 사회팀장을 지냈고, <시사기획 쌈> 책임자를 했다.

백운기, 고대영 등 참석자들 면면이 화려했다. 대부분 지금 김인규 체제에서 잘 나가고 있는 면면들이다. '수요회' 핵심 멤버들은 이날 수요일 모임에 각 기수별로 사람을 모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 모임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그 날 모임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어쨌거나 이날 모임에서는 정연주 퇴진의 당위성과 차기 사장 김인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 들었다. 김인규여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당시 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던 강동순, 이병순, 양휘부 등보다는 더 낫지 않느냐는 완곡한 논리를 폈다는 것이다.

2008년 6월 24일 KBS 본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사무실에 설치된 조형물. 정연주 사장을 생계형 사장으로 칭하며 비난하고 있다.
 2008년 6월 24일 KBS 본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사무실에 설치된 조형물. 정연주 사장을 생계형 사장으로 칭하며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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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수별, 팀 별로 이와 관련된 의견을 물어 보고, 가능하면 연판장 형식의 서명을 받기로 대략 의견을 모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보도본부 현장으로 돌아와서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젊은 기자들이 "이런 모임 자체가 부적절하고, 논의된 내용도 너무나 속이 보인다"고 반발하자, 의견도 모으지 못하고 서명도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흐름이 멎은 지 얼나 지나지 않아 KBS 노동조합에서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당시 보도본부의 젊은 기자들 사이에는, 정연주 사장 시절 이른바 좋은 보직을 거친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런 모임을 갖고 자신들이 희생양인 것처럼 행세하며 차기 사장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신의 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난 기회주의적 행태이며, KBS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교묘하게 '정연주 카드'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김인규 사장 취임 후 그 '수요회'의 핵심이었던 이정봉은 보도본부장, 임창건은 보도국장, 고대영은 해설위원장, 백운기는 비서실장 등 모두 김인규 체제에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정정보도문] 'KBS 수요회' 보도 관련

주식회사 오마이뉴스는 2010년 10월 15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 <KBS의 '하나회'인 '수요회를 아시나요'>라는 제목과, 2010년 10월 28일 위 홈페이지에 <"X만한 새끼!" KBS 기자는 왜 욕설을 날렸나>이라는 제목 하에 2008년 봄에 30여 명의 KBS 기자들이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은 김인규를 사장으로 옹립하기 위한 '수요회'라는 사조직이라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 사건 기사들이 '수요회'라고 지칭한 2008년 4월 16일 모임은 김인규를 사장으로 옹립하기 위한 사조직이 아님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태그:#정연주, #김인규, #KBS, #이정봉, #임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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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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