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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로 곳곳에 만발한 미국쑥부쟁이가 한창이다(팔당-한강변에서).
▲ 미국쑥부쟁이 요즘 도로 곳곳에 만발한 미국쑥부쟁이가 한창이다(팔당-한강변에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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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외로 나가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가을 꽃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쑥부쟁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 수입된 곡물 어딘가에 씨앗을 숨기고 있다가 우리나라 지천에 퍼지게 된 꽃이다. 가을꽃 쑥부쟁이를 닮아서 얻은 이름이 '미국쑥부쟁이'일 터이다.

그런데 해도 너무한다.
한강변으로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곳곳의 경사지는 하얀색 꽃을 피우는 미국쑥부쟁이와 서양등골나물과 가시박이 점령을 하고 있다. 아니, 경사지 뿐 아니라 풀이 있는 곳은 거의 다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특징은 토종식물을 가차없이 몰아내고 오로지 자신들의 영역만 확장한다는 점이다. 유해식물이라는 것이 알려진 뒤에 조치를 취하지만, 결코 그들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 땅에서 천년만년 피어나던 꽃들을 왜래종들이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은빛물결 바다를 이룬 억새.
▲ 억새 은빛물결 바다를 이룬 억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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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억새가 은빛물결을 이룰 무렵이면 들판에서 흔히 만나던 꽃들이 있었다.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왕고들빼귀, 눈괴불주머니, 물봉선, 박주가리, 진득찰, 도깨비바늘, 뚱딴지, 곰취, 취, 씀바귀, 꽃무릇....

뭐, 이런 꽃들은 지천이었는데 그 중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눈괴불주머니, 물봉선, 박주가리, 도깨비바늘 같은 것 정도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뿐 다들 자취를 감추었다. 자취를 감추었다기 보다는 미국쑥부쟁이같은 외래종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이다.

가을꽃 감국, 우리 꽃들이 들판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 감국 가을꽃 감국, 우리 꽃들이 들판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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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와 들풀의 역사, 그것이 어찌 따로갈 수 있겠는가?

현재 4대강 사업으로 세간에 알려진 희귀식물 '담양쑥부쟁이'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개발론자들은 족히 그들을 멸종시킬 수 있으며, 그동안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소비하고,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으니 마지막 하나가 사라지고 나서야,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서야 그 중요성을 깨달으니 들풀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흔히 못생긴 꽃들, 잡초라고 불리던 것들은 변방으로 밀려났고 조금 화사하고 잘난 것들은 원예종으로 바뀌거나 애호가들의 비싼 소장품 정도로 전락되어 본래의 들꽃 됨을 상실했다. 그나마 흔하디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서민을 닮은 꽃들, 위에서 이름 한 번씩 불러주었던 꽃들은 이제 미국쑥부쟁이나 가시박이나 서양등골나물 같은 것들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보랏빛으로 잘 익은 며느리배꼽, 이들이 익어가면 가을이다.
▲ 며느리배꼽 보랏빛으로 잘 익은 며느리배꼽, 이들이 익어가면 가을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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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간의 갈등,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우리네 역사에서 며느리들이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터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네 들풀의 삶은 며느리들이 당하는 고통보다도 더 아픈, 그래서 삶의 뿌리를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것이다.

평택 대추리.
어디 그 뿐이랴, 우리 역사 곳곳에 그들이 새겨놓은 아픔들은 포장되고 미화되어 '평화 혹은 동맹'으로, 이것을 의심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 땅에서 쫓겨난 이들의 운명과 미국쑥부쟁이에 밀려난 우리 쑥부쟁이의 삶이 어찌 다르단 말인가? 하긴, 미국에서 들어왔다고 해충에도 선녀'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넣어주는데 무슨 말을 더할까 싶다.

주변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가 놀잇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 도깨비바늘 주변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가 놀잇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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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흔하디 흔하던 도깨비바늘도 오랜만에 만났다.
잘 익은 씨앗들이 반갑다고 옷에 달라붙은다. 귀찮으면서도 정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깨비시장 같은 이 세상,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으로 사람같은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릴적 놀잇감이었기 때문이다. 도깨비바늘을 따서 던지면 옷에 척척 달라붙었다. 도깨비바늘만 놀잇감이 아니라 거의 모든 들풀들이 놀잇감이었다.

이렇게 어릴적부터 놀잇감도 되고, 귀한 약재로도 쓰이고, 식용과 음용 등등 우리 서민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었던 우리 들풀이 이 땅에서 밀려나고 있다. 우리네 역사도 해를 더해 갈수록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외세의존적인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들풀이 뿌리째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뿌리채 사리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아니, 철학이 없다.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겠다는 철학도 없을 뿐더러 오로지 자기 한 몸 호위호식하는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어찌, 나라의 장래가 밝다고 할 수 있는가!

쑥부쟁이 뒷배경의 하얀 꽃들은 모두 미국쑥부쟁이다.
▲ 쑥부쟁이 쑥부쟁이 뒷배경의 하얀 꽃들은 모두 미국쑥부쟁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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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도, 그 틈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쑥부쟁이가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고마운지 '쑥부쟁이야, 고맙다!' 인사를 했다. 제법, 그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감히 미국산 쑥부쟁이가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듬성듬성 피어난 것들은 내년이면 미국쑥부쟁이의 기승에 싹도 틔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한강을 개발해 놓고 절개지마다 외래종들이, 그것도 유해식물들이 번져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한강의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팔당댐 근처에서부터 하남시까지 절개지마다 온통 미국쑥부쟁이였고, 가시박 또한 질세라 퍼져가고 있었다. 지금은 드문드문 보이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강변 전체가 미국쑥부쟁이와 가시박 세상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가을꽃 구절초도 야생의 상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꽃이 되었다.
▲ 벼룩나물과 구절초 대표적인 가을꽃 구절초도 야생의 상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꽃이 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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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9일), 오랜만에 홀로 하이킹을 떠났다.

서울 송파구에서 출발하여 고골과 남한산성 은고개를 넘어 40여 키로를 달려 퇴촌 반환점에 도착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팔당쪽으로 택했다. 팔당댐에서부터 한강둔치까지 이어진 자전거도로, 어느 지점까지는 그야말로 미국쑥부쟁이와 서양등골나물과 가시박 천지였다. 이것이 점차 남하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조금 무리를 했다.
왕복 100 키로 정도 되는 하이킹 거리도 거리였지만, 사진을 담으며 쉬기도 하다보니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까지 뱃살을 뺀다고 점심도 거르고 강행군을 했다. 입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 힘듦보다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지천으로 퍼져가는 미국쑥부쟁이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는 쑥부쟁이의 삶이 우리네 역사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 현실이었다.


태그:#미국쑥부쟁이, #억새, #도깨비바늘,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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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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