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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의 고양이 푸스보다 더 매혹적인 눈동자를 가진 '양양'.
 <슈렉>의 고양이 푸스보다 더 매혹적인 눈동자를 가진 '양양'.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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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를 소개한다. 먼저 '양양'. 녀석과 동거한 지는 1년하고 약 1개월쯤. 만화영화 <슈렉>의 고양이처럼 50원짜리 동전만한 까만 동공이 최대 무기다. 궁금하면 무조건 건드리고 올라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저런 사고를 치곤 냉장고 꼭대기 같은 곳에 앉아 '내가 뭘' 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 하나는 '꾸럭'. 녀석과 함께 산 지는 약 10개월. 양양과는 배다른 남매다. 양양에 대한 숱한 구애가 모두 실패로 끝나자 지금은 '애인 같은 누나' 정도로 맘을 접은 듯하다. 스킨십을 좋아하고 의사표현이 무척 적극적이다. "야옹"의 각기 다른 버전으로 '배가 고프다' '심심하다' '짜증난다' 등의 의사를 또렷하게 전달한다.

양양과 꾸럭의 우애는 가히 눈물겹다. 한 녀석이 비를 맞거나 목욕을 하고 나오면 다른 녀석이 다가와 이마와 볼 등을 핥아주는 건 예사다. 잠이 들 때면 마치 어린 누이가 남동생을 씻기듯 양양이 꾸럭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주기도 한다. 한날은 웬일로 조용한가 싶어 돌아봤더니 둘이 이마를 맞대고 그림처럼 잠들어 있었다.

의사표현에 무척 적극적인 '업둥이' 꾸럭.
 의사표현에 무척 적극적인 '업둥이' 꾸럭.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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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건너건너 돌담길 따라 산책도 함께 한다. 돌아올 때 꾸럭이 앞서 걷다 양양이 더디 오면 멈춰서 기다렸다 같이 온다. 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거짓말 같다 생각하겠지만, 이런 풍경을 진짜로 보면 행복해서 가슴이 찡하다. 한번은 동네 '건달냥이'가 현관문까지 쫓아왔는데 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지 녀석들이 내게 와락 달려와 안겼다. 그때의 감격이라니!

흔히 고양이는 주인을 모른다고 한다. 사람을 만만히 본다고도 하고 정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고양이 애교에 한번 중독되면 헤어날 길이 없다. 개를 마음 좋은 친구에 빗댄다면 고양이는 애인이다. 애인 중에서도 얄밉도록 도도하면서 어찌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여자에 가깝다. 퇴근을 하고 와도 멀찍이 앉아 눈길만 한번 주는가 하면 어느새 곁에 와서 꼬리나 몸을 슬쩍 비비며 농밀한 유혹을 한다.

오랜 타지생활로 정서가 음침해진 나를 녀석들이 변화시켰다. 홀로 있는 주말에도 난데없이 꺄르르 웃게 했다. 사랑을 할 때처럼 세상이 한 톤쯤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의 온도가 2도쯤 오른 것처럼 한겨울인데도 마음이 따뜻했다.

이렇듯 나를 행복하게 해준 양양과 꾸럭에겐 태생의 아픔이 있다. 둘 모두 '길고양이' 어미에게서 태어나 갓난쟁이던 몇 개월을 노상에서 보낸 것이다. 양양은 연일 기록적인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겨울, 어느집 음식쓰레기 앞에서 발견됐다. 며칠 동안 같은 곳을 어슬렁거리니 근처 살던 맘좋은 아가씨가 자신의 집에 들여 씻기고 먹인 뒤 유기묘 사이트에 입양 공지를 올렸다.

내가 녀석들에게 준 사랑보다, 녀석들이 내게 준 사랑이 훨씬 크다.
 내가 녀석들에게 준 사랑보다, 녀석들이 내게 준 사랑이 훨씬 크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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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듯 입양 변경신청, 뭉클했던 첫 만남

당시 이미 다른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나는 녀석의 사진을 보고 뭐에 홀린 듯 입양 변경 신청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중성화 수술을 받고 약간 몽롱한 상태인 녀석을 만났다. 실밥 근처로 핏빛이 선연한 배를 보며 목이 메었는데 녀석은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걸어왔다. 양양에겐 배의 상처 말고도 어깨에 크게 찢어졌다가 아문 상처가 있는데 상대는 분명 양양을 죽이려 했던 것 같다.

꾸럭과의 만남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부모님댁 근처에 집을 마련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고양이 습성에 문외한인 어머니와 이모가 내 집 구경을 온 사이 양양이 집을 나가서 사흘 동안 들어오질 않았다. 처음 일어난 일에 놀라 울지도 못하고 넋을 빼고 있었다. 하루에 네댓 번씩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헤맨 지 이틀째 밤, 어머니가 대뜸 고양이 이동가방을 건넸다.

'반려동물을 학대하지 마세요'
 '반려동물을 학대하지 마세요'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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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양양을 찾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양양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또 다른 고양이였다. "XX집에서 못 키우겠다고 해서 데려왔어. 양양이랑 닮았지?" 어머니 입장에선 당시 사태에 대한 자책감과 어릴 적부터 동물한테 각별했던 나를 걱정해 취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때 정말이지 기가 차고 코가 막혔다. "당장 도로 갖다 줘!" 겨우겨우 참고 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말았다. 

결론을 말하면 양양은 바로 다음 날 아침 모친에 의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집 건너건너 놀이터 정자 아래서 발견됐는데 어머니 팔 곳곳에 생채기를 남기는 사투 끝에 붙들려 들어왔다. 제 녀석도 낯선 사람들 틈에 옴짝달싹 못하고 고생을 꽤나 한 듯했다. 안도와 송구스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는데, 그때 어머니 왈 "어제 걔 있잖아... 못 돌려줬거든... 양양이도 찾았는데 같이 키우면 어때?"

양양과 꾸럭은 모두 '길고양이'였다.
 양양과 꾸럭은 모두 '길고양이'였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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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서 함께 살게 된 것이 꾸럭이다. 본의 아니게 전날 야멸치게 문전박대했던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알고보니 녀석의 어미도 길고양이였다. 그리고 운 좋게 입양이 됐는데 주인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파양된 것이었다. 우리의 좌충우돌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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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침 외교관 부모를 둔 20대 남성이 시험에 낙방했단 이유로 5개월 된 자신의 반려견을 폭행했단 기사를 접했다. 외국의 사례였지만 올해 국내외를 포함해 사람들을 경악케 했던 반려동물 학대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화단을 망쳤다'는 이유로 고층빌딩에서 내던져졌는가 하면, '귀찮게 해서' 세제를 먹이고 발길질을 했으며, 라이터로 털을 태우고 가위로 귀를 자르고 면도칼을 먹게 하는 등의 행위로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고통 속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과 공존했더라면 사는 내내 사랑받고 사랑주는 존재가 됐을 것이다. "도둑고양이"라 천대받던 두 마리가 길고양이가 이렇듯 나와 함께 행복한 것처럼.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이 자명한 진리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우매한 인간들이라니….


태그:#길고양이, #고양이은비, #동물학대, #생명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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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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