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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의 뜨겁고 모질던 햇볕도 제풀에 지치고 어느덧 완연한 가을 냄새가 물씬한 오후, 지인의 격앙된 제보전화를 받고 7일, 4대강 사업이 한창인 안동시 풍천면 가일마을 앞 들판을 서둘러 찾았다. 지난해만 같아도 높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황금색 들판을 떠올리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갔겠지만 올해는 다르다.

 

그곳은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낙동강 준설사업 현장, 준설토를 쏟아 부으며 멀쩡한 옥답을 덮고 있는 현장이었다. 불도저와 굴착기, 대형 덤프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넓은 논들을 종횡무진 휘젓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 사업의 심각성에 둔감했다. 아니 눈앞의 한끼 진수성찬에 배고픔을 잊고 있었다. 2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미 그 보상을 해주었기에 당장 배고프지 않은 것이다. 강이 난도 당해도 아픔을 못 느끼는 게다.

 

어귀를 지나 벌판 중간쯤 갔을까. 눈에 들어온 광경은 너무도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멧돼지처럼 콧김을 내뿜는 불도저가 씩씩거리며 의기도 양양하게 황금빛으로 영근 벼들을 밀고 있었다. 아니 짓밟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풍천 1, 2지구 농지 리모델링사업, 면적 306ha에 강 준설토로 2m를 높이고 그 위에 기존 논흙을 50cm 두께로 덮는 사업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한쪽으로는 제방을 높이 쌓느라 부산하다. 높이 올라간 제방 옆으로 준설토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쏘다니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먼지 날리는 논들 사이에서 다급하게 낫을 움직이며 벼를 거두는 중년의 부부가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하던 일을 재촉한다. 또 그 옆에서는 노모인 듯한 팔순의 할머니가 허리를 구부리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따고 있었다. 누렇게 익는 벼 이삭을 추스르며 길고 모진 한숨을 내쉬었다.

 

"할매요 뭐 하시니껴?"

"보면 모르니껴? 쌀이 남아돌고 나라에서 보상을 받았다고 해도 글치, 어찌 이럴 수가 있노, 멀쩡한 곡식을…."

 

말끝을 흐리는 할머니의 얼굴엔 안쓰러움과 분노가 묻어났다. 일평생 땅과 함께해온 농민의 상식으로 멀쩡한 벼를 흙으로 덮는 이 요상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듯보였다. "자식 같은 쌀이 아까워 나왔지"하며 겨운 숨을 내쉬는 할머니 얘기로는 그들은 그 논의 주인은 아니었다. 너무 안타까워서 벼 한 톨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일부러 씨 부린 것도 아니고 작황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콤바인 갖고 있는 주인은 추수를 하지만 나머지는 품삯이 겁나 엄두를 못 내고 있지."

 

그랬다. 모내기를 하고 피를 뽑고 지은 논농사는 아니었다. 지난해 보상을 받은 주인네들이 돈 냄새에 취해 건성건성 가을걷이를 할 때 우수수 떨어진 벼들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 황금들판을 만들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누군가 씨를 뿌린 듯 무성하게 자라 영락없는 황금들판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멀리 콤바인을 소유한 몇몇 부지런한 주민들이 이들의 가을걷이에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식량자급률 25%, 세계 5위의 식량수입국인 대한민국. 국토의 젖줄이자 우리 농업의 젖줄인 4대강을 따라 기름진 옥답을 밀고 파고, 농경지를 줄이고 있다. 자전거도로와 공원을 만드느라 우리의 어머니인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 창고가 모자란다고 한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민은 울고 정부는 정부대로 올 가을 벼 수매를 놓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그렇다고 있는 대로 뺨따귀를 갈겨놓은 북한에 듬뿍 내주자니 전쟁불사 외쳤던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고 배알도 틀린다.

 

그러니 이 4대강 사업이 얼마나 고마우랴. 경작지를 줄이고 2년씩 휴농시키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이렇게 4대강 사업 현장은 정부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있는 기특한 곳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는 어릴 적 아버지께서 끼니 때마다 밥 한 톨이라도 남기는 것을 용납지 않았던 카랑카랑하던 꾸지람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내가 나의 두 아들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사람의 피땀으로 만든 것을 천시하면 천벌 받는데이."

 

일그러진 풍산 들녘을 뒤로하고 쓴 입맛을 다시며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지난 봄 '4대강 살리기' 현장에 다녀온 시인 신경림 선생이 "지금 이 공사를 추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막지 못하는 사람들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다"고 술회하며 최근 채소 값 폭등이 이미 그 징후의 시작이라고 기술했던 글귀가 생각났다.

 

"그럼 천벌을 받지. 암!" 자동차 가속기를 밟으며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욕을 하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4대강, #안동, #가을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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