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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대합실을 걸어가는 할아버지 한분과 할머니 세분
 지하철 대합실을 걸어가는 할아버지 한분과 할머니 세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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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국군의 날이었고, 내일은 개천절, 오늘은 토요일, 또 뭐 다른 날인가요?"

노인의 날인 10월 2일, 지하철 4호선 노약자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세분의 노인들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느냐고 묻자 웬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듯 되묻는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다른 두 분의 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노인들에게 노인의 날은 아무런 의미도 관심도 없었다.

199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45차 유엔총회에서 10월 1일을 '국제노인의 날'로 결의하고, 1991년 10월 1일 제1회 '국제노인의 날 '행사가 치러졌다. 우리나라에선 1997년에 '각종 기념일에 대한 규정'에 의해 10월 2일을 '노인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우리 노인의 날은 '경로효친 사상의 미풍양속을 확산시키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기념행사는 1999년까지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였으나 2000년부터 노인관련단체의 자율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당사자인 노인들은 모르거나 무관심한 노인의 날의 유래와 의미

"듣고 보니 그런 날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것 같네요. 그러나 그런 행사가 무슨 소용 있어요. 기념행사는 여유 있고 잘난 노인들이나 참가하는 거지, 우리네 같은 못나고 가난한 노인들이야 어딜 얼씬 거리기나 하겠어요?"

노인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조적인 말을 툭 던지고 외면해 버린다. 노인의 날인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녀들만이라도 노인 어버이를 알아 모시면 좋지 않겠느냐고 다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무슨 소립니까?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 눈치 보이는데 ...."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까지 짓는다. 올해 81세라는 이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는 그래도 자신이 건강하기 때문에 건강유전자를 자식들에게 물려준 것 같아 자부심도 있지만, 가난한 살림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북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 70세 이상인 할머니 네 분과 할아버지 세분을 따로 만날 수 있었다.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멈칫멈칫 대화에 응해준다. 먼저 할아버지 세분 중에서 두 분은 배우자가 없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었다.

"혼자 살려니 외로울 수밖에요, 함께 산책도 하고 살갑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할머니 사귈 수 있으면 좋지요. 함께 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고..."

홀로 사시는 것이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할아버지 한 분이 반대편 벽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말한다. 이 노인은 올해 73세인데 매우 정정한 모습이었다. 재혼을 생각해 보았지만 자녀들이 달갑게 받아드리지 않는 것 같아 포기 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몇 푼 되지도 않는 재산문제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올해 75세라는 다른 할아버지도 좋은 할머니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도 나누고 생활도 보살펴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3년 전부터 홀로 독거생활을 하고 있는데 생활자체가 모두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장소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네 분의 할머니들 중에서 두 분 할머니는 할아버지들과 사별하고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의 할머니는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이성친구요? 영감들 말인가요, 싫어요, 냄새나는 영감이 뭐가 좋다고. 외롭기는 뭐가 외로워요, 영감탱이 없으니 홀가분하고 얼마나 좋은데"

우선 배우자와 사별한 두 분의 할머니들에게 외롭지 않느냐, 또래의 이성 친구나 재혼 생각해 보았느냐고 묻자 펄쩍 뛰며 하는 말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남녀 노인들

"수십년을 자식 낳고 함께 살아온 정 때문에 사는 거지, 좋긴 뭐가 좋겠어요? 아직도 고집불통에 집안일을 도와주기를 하나..."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는 할머니 한분이 푸념처럼 말을 꺼낸다.

"젊었을 때는 체취가 좋았는데 지금은 왜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한집에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 쓰고 있어요.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함께 사는 거예요."

다른 할머니가 거들고 나선다. 나이가 70대 중반이지만 남편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죽을 날 받아놓고 사는 늙은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내를 도울 줄도 모르고 군림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기를 등에업고 한손에 짐을 든 할머니와 빈손인 할아버지
 아기를 등에업고 한손에 짐을 든 할머니와 빈손인 할아버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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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 사는 모습 보면 참 부러워요, 남자들도 집안일 서로 거들고, 재미나게 사는데, 우리 세대 여자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거든요, 남자들이 너무 잘못했어요, 그런데 젊었을 때 그 버릇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는 할머니 두 분이 남편들 흉보기를 시작하자 다른 할머니들이 맞장구를 쳤다. 물론 함께 사는 것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홀로된 할머니들 말을 들어보면 자식들이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노인들, 특히 남자노인들 잘못된 생각과 행동 변해야 하는데,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에요. 세상이 달라졌는데 도무지 달라질 줄을 모르니"
"먼저 간 영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요"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푸념 뒤에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할머니의 말에서 이 시대 남녀 노인들이 살고 있는 모습과 생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태그:#노인의 날, #할아버지, #할머니, #이승철, #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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