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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연출가 겸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명계남, 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연출가 겸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명계남, 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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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하기 싫어하는 주연배우가 있다.

"난 고통스러워요,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분에 의해서 인도된 것이니까. 내가 독재자라는 역할에 어울릴 거라고 하는데 그것도 기분 나쁜 거야. 못마땅해요. 하기 싫은 역할이고 하기 싫은 연극이에요."

이와 같은 이유로 그만두고 싶어 하는 배우의 등을 떠밀지 못한 게 아쉬운 기획자가 있다.

"연습을 하다가 이 연극 안 한다는 이야기를 백 번은 했는데, 아…. 그 중 한 번이라도 잡았어야 했는데. 지금 우린 지금 여우를 잡으려다 호랑이를 만난 것 같아요."

발을 잘못 담궜다며 '아차'싶은 연출자도 있다.

"연극으로 대중들과 만날 시간이 다가오는 데 점점 멍해지는 것 같아요. 이게 왜 여기까지 왔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지 말지 갈등 많아요... 빨리 보러 오세요"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연출가 겸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연출가 겸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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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명계남, 기획자 탁현민, 연출자 여균동. 이 셋이 모여서 연극을 만들었다. 연극 제목은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이다. 중국 작가 루신이 우매한 인민을 빗대어 사용한 단어인 '아큐'가 이름인 독재자가 등장하는 이 연극은 '소셜-폴리틱-인터렉티브-얼모스트-모노드라마'이자 정치적 우화이며 풍자극을 표방한다.

연극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을 마주하기 하루 전인 9월 30일, '프리뷰 및 VIP 시사회'가 열리는 홍대소극장 '예'에서 이들을 만났다. 정말 하기 싫은 표정인 명계남씨는 줄담배를 물었고, 협찬 받은 선글라스를 자랑하며 아이폰에서 손에 놓지 못하는 여균동씨와 장난기 섞인 농을 주고 받았다. 이 둘의 투닥거림을 관조하며 즐기듯 바라보는 탁현민씨까지. 한 가닥 하는 이들은 모두 달변가였고, 애연가였다.

인터뷰를 위해 나란히 앉은 셋에게서 서로를 향한 애정과 애증(?)이 묻어났다. 어떻게 셋이 뭉쳤을까, 뭉친 결과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여균동(이하 여)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해 조심히 대하지만, 한 번 역방향으로 돌면 파국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멀티적 인간들의 조합이에요. 우리 셋에게서는 동질한 분노와 결핍감이 있어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노인데 단순하게 돌을 던지는 행위보다 문화적으로 충격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탁현민(이하 탁) "상식대로 가자면 나와 이 둘 사이에는 한 세대가 더 있어야 해요. 근데 그 세대가 없이 바로 저로 넘어온 거죠. 직전세대에는 저항의 문화, 요구들이 없었죠. 그런데 MB가 들어오고 나서 저항의 문화가 확산되었고 그 속에서 두 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일로 부딪혔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섞여서 연극하게 된 게 영광스러워요." 
명계남(이하 명) "이봐 갈등이 많아. 우리 연극이 30일 동안 하는데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거기까지 못 갈 수도 있어요. 빨리 보러 오셔야 돼요."

다수는 불편하지만, 한 사람은 위로 받을 연극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명계남.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명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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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유일무이한 주연배우 명계남씨는 독재자 '아르피무히 마쿠(줄여서 '아큐'라 부른다)'를 연기한다. 연극은 동네 개를 모두 죽여 동물학대죄로 처벌받기 직전 '아큐'의 독백을 다루고 있다. 왜 하필 동물학대죄일까. 여균동씨의 설명은 명징하다.

"쫀쫀하고 쪼잔하게 가려고요. 이야기를 거창하게 시작하면 분명히 너무 직설로 흐를 것 같고 해서요. 그가 전 국민을 동물학대한 것처럼 한 것도 있고요. 4대강을 만들면서 22조원에 +알파의 돈을 들이고 말이죠. 국민의 세금을 한게임 머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건 엄밀한 의미에서 범죄잖아요."

독재자 '아큐'가 가리키는 대상 또한 명확하다. 명계남씨는 연극 제목을 '삽과 쥐'로 하자고 졸랐을 정도다.

"현재의 통치자 입장에서 살아있는 동안에 직설적으로 자기에 대해 언급하는 건 처음 있는 일 같죠?"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연극을 통해 다수는 불편하고 그 한 사람은 위로 받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입장에 대해 이야기 하니까."
"살아있을 때 동상 세워주는 셈이지 뭐."

현존하는 대통령을 향한 직설적인 연극이라는 점 외에도 이 연극은 트위터 활용이라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 트위터로 올라오는 관객의 의견을 받아 곧장 극에 반영할 계획이다. 그 날 그 날에 따라 연극 내용이 즉각적으로 변한다.

여균동씨는 "이 연극은 트윗성 연극이에요, 연극 자체가 소통이고 문제제기 하는 것이니까요"라고 설명했다. 탁현민씨도 "연극 내용이 그래요, '지금'을 이야기 하니까 오후 8시 이야기를 오후 8시에 하고 싶은 것이죠"라고 말을 보탰다.

후불제 연극 "얼마짜리인지 관객이 직접 판단"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명계남과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이 공연하고 있다.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명계남과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이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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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공연료를 지불하고 있다.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공연료를 지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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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후불제다. 입장할 때 받아든 봉투에 관객들이 알아서 돈을 낸다.

"후불제인 이유는 하나에요, 그게 맞는 것 같으니까. 얼마짜리인지 관객이 직접 판단하게 맡기는 거죠. 진검승부랄까."
"착한 소비와 착한 생산이 맞물려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지에요. 그런 면에서 우리 연극은 대박날 것 같아요. 떼돈을 번다는 게 아니라 그 착한 구조 속에서 재생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무대에서 관객 표정을 볼 거예요. 연극이 끝나면 이제 얼마를 내야할지 생각들을 시작하겠죠(그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꺄흐하학' 외마디를 질렀다). 관객을 당황시키고 싶은 걸 수도 있어요."

이날 프리뷰 시사회에서도 봉투는 여지없이 건네졌다. 오후 8시 연극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봉투를 손에 들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100석 규모의 공연장이 가득 차자 암전된 무대에 명계남씨가 등장했다.

'메롱'을 하듯 혀를 낼름 내민 그는 "다 우리 편이 왔네"라며 "캐릭터를 사랑할 구석이 없어 연기하기 참 쉽지 않았다"며 농부터 던졌다. 관객과 대화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극은 시작돼 있었다.

"나도 데모를 해봐서 아는데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변절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수단 아냐?"
"너희들은 왜 뽑아놓고 지X이야. 내가 부정 선거했어? 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사람이야."

'아큐'는 자신을 만든 또 다른 아큐인 관객(시민)에게 일갈한다. 독재자를 통치자로 내세운 것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나, 1216개 도시를 운하로 연결한 아큐 각하야."
"재산 형성 과정? BBQ 치킨이 왜 내 거야, 나 닭 싫어해."

'아큐'는 현실의 누군가를 향한 말도 시원스레 내뱉는다. 그러다 연극에서 다시 현실의 배우 명계남으로 돌아온 그는 "나 이 연극 못하겠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현실과 연극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연극 보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고민했으면..."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명계남과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이 공연하고 있다.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본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프리뷰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명계남과 조연배우를 맡은 여균동 감독이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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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 연극을 통해 관객이 무엇을 얻어가길 바라고 있을까.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을 기획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을 기획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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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연출도 없고, 배우도 없고, 기획도 없는 연극이에요. 그렇지만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연출자와 기획자와 배우가 모여 얘기를 하자는 겁니다. 독재의 근거가 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고민해보는 접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대의 현실을 풍자함으로써 그 시점, 그 자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걸 보면서 스스로를 타자화할 수도 있고, 연극 안으로 들어가서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죠. 그걸 바랍니다."
"독재자가 태어나서 세상을 지배하고 뒤집은 것은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독재의 행태를 보면서 그를 잉태하게 한 일반 시민들이 겪는 당혹감을 함께 느껴보자는 겁니다."

이들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그 '무엇'을 느꼈을까. 속은 알 수 없지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봉투에 성의를 담아낸 이들을 향해 명계남씨는 말을 건넸다. 한껏 익살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연극은 뒤에 40분 가량을 안 한 상태에요. 특수 장비를 써야 하는데 그쪽으로 좀 조율이 필요해서. 또 와요, 또. 우리 연극은 한 번 봐서는 봤다고 할 수 없어요. 매일 다를 거거든. 또 와서 빈 봉투 넣고 가면 되잖아요. 흐흐흐."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의 포스터를 관심있게 보고 있다.
연극은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의 포스터를 관심있게 보고 있다. 연극은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홍대 앞 '예'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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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큐 , #명계남, #여균동, #탁현민,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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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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