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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가격 폭등으로 인해 포장김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대형마트 포장김치 코너에 '업체측 공급 사정으로 인해 1인당 1박스만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배추 가격 폭등으로 인해 포장김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대형마트 포장김치 코너에 '업체측 공급 사정으로 인해 1인당 1박스만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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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배추김치 나왔어. 야! 우리 학교 부자인가 봐!"
"진짜네. 엄마가 집에서도 배추김치 못 먹는다고 했는데..."

9월 30일 서울시 J중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4교시 체육수업을 마치고 들어온 학생들은 땀 냄새가 나는 체육복을 입은 채 밥상 앞에 앉았다. 최근 인기 있는 '슈퍼스타K2'나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이야기보다 '금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학생들도 근래 배추 가격 폭등으로 '김치'가 '금치'가 된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김치에 신경 안 썼는데, 뉴스에 계속 비싸졌다고 나와서 걱정돼요. 전 김치 없으면 밥 못 먹어요."
"영양사 선생님이 내일부터는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 나온다고 그랬어요. 원래는 (김치를) 잘 안 먹는데 안 나온다고 하니 싫어요. 잘 안 먹어도 다른 김치보다는 배추김치가 좋아요."

J중학교의 10월 식단은 지난달 말 일부 변경됐다. 배추김치가 나오는 날이 다른 달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김치를 납품하는 업체가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 없다"며 식단에서 배추김치의 양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최근 치솟은 배추 가격에 학교 급식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

J중학교 관계자는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가 배추 포기김치의 납품이 어렵다며 다른 종류의 김치로 대신하면 안 되겠느냐는 요청을 해왔다"며 "배추김치가 전혀 안 나가는 것은 아니고 나가는 횟수와 양을 조금 줄이는 선에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포천시 S중학교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 학교는 납품업체로부터 10월 1일 이후 3주 동안 배추김치를 전혀 공급받지 못한다.

S중학교의 영양사는 9월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업체에서 배추가 아예 없다고 해서 3주 동안 배추김치를 식단에서 빼버렸다"며 "3주 후에도 괜찮아질지는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또 "배추김치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 가격도 올라 식단을 짜기 매우 어렵다"며 "학생들에게 (식단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안내문이 나갔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비 올릴 수도 없고", 업체 "납품할수록 적자"

배추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배추 1포기가 1만4000원(3개 들이 한 망에 4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배추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배추 1포기가 1만4000원(3개 들이 한 망에 4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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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에서 배추김치의 양을 줄이기는 했지만 S중학교와 J중학교는 김치 납품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있어 급식비용이 늘어나는 부담은 다행히 없었다. 수의계약은 경매나 입찰을 거치지 않고 일정한 가격에 일정 기간 동안 한 업체와 계약을 맺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김치 납품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정해진 가격으로 납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치를 경쟁계약을 통해 납품 받는 일부 학교는 10월 납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몇 차례 유찰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납품 업체들이 학교에서 제시한 가격에 맞추지 못한 것이다.

서울의 S중학교는 10월 식단을 변경하지 않고 예정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김치의 입찰 가격을 높여야 했다. 기존 입찰 가격을 고집할 수 있었지만 업체들이 낮은 가격에 맞추려 하다보면 급식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0월 급식 최종 납품 가격이 9월과 100만 원 정도 차이난다"며 "다른 품목도 올랐지만 특히 김치가 올라 비용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입찰 가격이 높아져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급식비를 올려야 하지만 학부모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라 난처하다"며 "현재 급식비 인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채소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예산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추 가격 인상이 곤혹스러운 것은 김치 납품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업체들은 수의계약을 맺은 학교에 정해진 가격에 배추김치를 납품해야 하는데 김치 원가가 납품가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납품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놓였다.

서울 광진구 일대 학교에 김치를 납품하는 D업체의 관계자는 9월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본사 김치공장에서 배추 포기김치가 거의 안 나온다"며 "수의계약을 맺은 학교에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이번 달에는 경쟁입찰에 전혀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공장에서 하루 500kg씩 받아왔는데 지금은 200kg밖에 받지 못한다"며 "가격도 kg당 1000원에 가져왔는데 얼마 전에 3500원까지 올랐고 계속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가 평소와 같은 이윤을 남기려면 학교에 kg당 6000원 정도를 받아야 하는 상황. 그러나 각 학교와 수의계약을 맺은 이 업체는 무조건 kg당 3500원으로 납품해야 한다. 김치를 들여오는 가격과 납품하는 가격이 같아진 것. 김치 납품에 들어가는 운송료, 보관비용, 인건비 등이 모두 적자로 돌아오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채소 가격이 갑작스럽게 오를 때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경우는 10여 년 전 배추 파동 때문에 힘들었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각 학교에 납품가를 올려달라는 공문을 발송했지만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친환경 계약재배가 "정답"

이처럼 치솟은 배추가격으로 급식업체와 학교들까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여유 있게 배추김치를 즐기는 곳도 존재한다. 그것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 배추로 담근 김치를, 아무 부담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경남 합천군 합천초등학교의 학생들. 합천군은 2009년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며 관내 37개교 4769명의 학생들에게 지역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모든 학교가 농가와 직접 연결돼 농산품을 계약재배 하고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배추 가격 파동에도 학교 급식이 영향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합천초등학교 김미경 영양사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배추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며 "현재 학교에서 쓰는 친환경 배추가 시중의 일반 배추보다 저렴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 영양사는 "직거래를 하는 농가의 배추 생산이 줄지는 않았냐"라는 질문에 "납품 농가도 지역 친환경 영농 단체와 연결이 돼 있어 배추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며 "일반배추의 가격 변동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합천초등학교에 농산품을 납품하는 정미영씨도 "합천에서 나오는 배추는 11월에 공급될 예정이어서 그 전까지 울산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배추를 공급받기로 했다"며 "농사가 잘 안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 급식은 일정한 수요가 정해져 있어 미리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농산품 가격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라고 덧붙였다.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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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은 합천군 사례처럼 "친환경 급식을 시행하며 농가와 직거래 방식의 계약재배를 맺는 것이 물가 파동에서 학교 급식을 보호하는 정답"이라고 말한다.

김 사무처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설치해 농가들과 직거래를 하고 농산품이 학교 급식으로 모두 소요된다면 밭떼기를 하는 등 중간 유통 상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금은 배추 파동이 일어났지만 쌀 파동이 일어나 아이들의 급식에 영향을 준다면 끔찍할 것"이라며 "친환경 무상급식은 단순히 급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 시스템을 경쟁력 있게 바꾸고 유통과정을 합리화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태그:#배추, #배추가격, #김치파동, #물가인상,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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