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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A회사는 전기요금청구사건 소송을 박 모 변호사(1956년생, 서울)에게 맡겼다. 그러나 A회사는 1심 판결에서 패소하였고, 박 모 변호사에게 항소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박 모 변호사도 그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박 모 변호사는 법률에서 정한 항소기한을 넘겨버렸다. A회사로서는 항소심을 받을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린 것이다(이 일로 박 모 변호사는 과태료 300만원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만약 A회사가 박 모 변호사가 몇 년 전에 의뢰인의 돈을 돌려주지 않아 변호사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과연 박 모 변호사를 찾아가서 사건을 맡겼을까? 박 모 변호사로부터 상상도 못했을 피해를 입었을까?

박 모 변호사는 1998년 12월에 어떤 의뢰인으로부터 소송을 위임받고 착수금 500만원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 후 석 달이 넘도록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으면서도 의뢰인에게는 소장을 접수시켰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소송위임을 취소하고 착수금을 돌려주기로 의뢰인과 약속한 뒤에도 2000년 10월이 될 때까지 돈을 반환하지 않았다.

박 모 변호사는 또 1998년 말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의뢰인한테서 추징금 예납 명목으로 받은 1,000만 원중 실제 법원에 납부한 830여만 원을 제외한 170여만 원을 돌려달라는 김 모씨의 요청을 수 차례 묵살하고 1년이 넘도록 돌려주지 않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박 모 변호사는 2000년 10월에 징계(과태료 200만원)를 받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성실한 변호사를 찾고 싶었던 A회사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박 모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고, 항소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황당한 피해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민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그 변호사가 어떤 나쁜 일에 연루된 적이 있는 변호사인지, 아니 공식적으로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변호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가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변호사인지 불안해하면서 변호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이런 현실, 계속 방치할 것인가?

대한변호사협회, 일본과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생각이 없나?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에 대한 징계권을 가지고 있다. 1993년부터 자율징계라는 명분으로 법무부가 징계권을 변협에 위임한 것이다. 물론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법무부가 이의신청을 심사하여 최종징계를 내리고 있다.

변협은 징계를 내리고 난 뒤, 누가 징계를 받았는지 과연 시민들이 알게 하고 있을까? 우선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를 보면 징계와 관련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자료실에 가보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는 징계사례집이 4권 올라와 있는 정도이다. 그나마 작년 말에 발행한 최근 2006년 이후의 징계사례집은 올라가 있지도 않다. 물론 이 징계사례집을 보아도 내가 관심있는 변호사가 징계를 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다. 모두 익명처리되어 있기때문이다.

다음으로 변협은 징계를 내리면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변협의 기관지에 해당하는 '인권과 정의'의 공고란에 징계결정을 싣는다. 징계받은 변호사의 이름과 간략한 징계사유, 그리고 징계종류 등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시민이 내가 맘속에 생각하고 있는 변호사가 징계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찾아보는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맘속에 생각하고 있는 변호사가 홍길동 변호사라고 한다면, 1993년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200 여권이 넘는 '인권과 정의'를 다 뒤져보아야한다. 게다가 이 잡지를 어디서 볼 수 있기나 한 것인가? 사실상 볼 수 없고, 따라서 이용할 수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징계정보를 알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가 배울만한 사례이다.

우선 미국변호사협회에서는 산하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미국변호사윤리 데이터뱅크'를 통해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알려주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내용은 미국변호사협회 웹사이트에 물론 안내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회는 자신들의 웹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변호사 찾기' 검색 코너에서 특정 변호사의 징계경력 유무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 변호사협회의 웹사이트에서는 변호사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나이, 사무실 주소, 주요 경력, 출신 학교 등만 제공하는데 비해,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회는 징계받은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를 웹사이트 검색 결과화면에서 바로 보여준다.

또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이메일 등을 통해 정식요청을 하면 알려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변호사단체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무사들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법서사'들의 경우에는 징계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일본에서 제일 많은 사법서사가 활동하고 있는 도쿄사법서사회에서는 2005년에 '도쿄사법서사회 징계처분 등의 공표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고, 웹사이트에서 특정 사법서사가 징계받은 적이 있는지를 검색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도쿄사법서사회 웹사이트의 '사법서사(회원) 정보' 검색코너에서 징계받은 사법서사 여부를 검색해 본 사례임. '사나다 요시로'라는 사법서사의 이름을 넣고 검색해보면, 화면처럼 2009년 9월에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사실이 나타난다. 화면 왼쪽 아래의 이름 부분을 클릭하면 징계받은 이유를 상세히 적은 내용도 추가로 보여준다
▲ 도쿄사법서사회 웹사이트의 징계받은 사법서사 검색 사례 도쿄사법서사회 웹사이트의 '사법서사(회원) 정보' 검색코너에서 징계받은 사법서사 여부를 검색해 본 사례임. '사나다 요시로'라는 사법서사의 이름을 넣고 검색해보면, 화면처럼 2009년 9월에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사실이 나타난다. 화면 왼쪽 아래의 이름 부분을 클릭하면 징계받은 이유를 상세히 적은 내용도 추가로 보여준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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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왜 이런 규칙을 만들고 징계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했을까? '도쿄사법서사회 징계처분 등의 공표에 관한 규칙' 제1조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규칙은 도쿄사법서사회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법서사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본회 회원에 관한 징계처분과 주의 권고 등을 공표하기 위한 기준을 정하고..."

그렇다. 사법서사라는 법률전문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리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징계정보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4년전 참여연대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회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대한변협 등에 우리도 징계받은 변호사인지 아닌지를 시민들이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때, 나온 반응은, 프라이버시 침해다, 이중처벌이다 등등이었다. 하지만 도쿄의 사법서사회는, 국민의 신뢰와 권리에 주목했다.

참여연대가 모아둔 변호사 410명 징계내용, 변호사가 필요한 시민이 이용할만해

보다못해 참여연대가 지난 2007년 9월부터 변협이 '인권과 정의'에 공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징계받은 변호사 410명, 460건의 내역을 참여연대 웹사이트의 '변호사징계정보 찾기' 코너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1993년 이후 올해 7월까지 징계처분이 내려진 410명, 460건의 내역을 집적한 검색서비스인데, 특정 변호사의 이름을 넣으면 징계여부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참여연대가 제공하고 있는 변호사징계정보찾기 검색페이지에 강 모 변호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화면임
▲ 참여연대 변호사징계정보찾기 검색결과 사례 참여연대가 제공하고 있는 변호사징계정보찾기 검색페이지에 강 모 변호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화면임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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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이 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징계처분이 내려진 사례들에 대해 일부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33명의 변호사가 2회 이상 징계처분을 받았다. 그 중에는 6번이나 징계를 받은 변호사도 있고, 3번 징계받은 변호사도 9명이 되었다. 그런데 2회 이상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들의 경우 징계수준이 결코 낮은 징계들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6번이나 징계받은 김*식 변호사는 "정직 2월 - 정직 2월 - 정직 3월 - 과태료 200만 원 - 정직 3월 - 정직 1년"이라는 심각한 처분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3번 징계를 받은 김*환 변호사는 "정직 1년 - 제명 - 재등록후 정직 2년", 또 이*재 변호사는 "견책 - 정직 3월 - 제명" 처분을 받았다. 조*환 변호사는 "정직 4월 - 정직 8월 - 정직 2년"처분을 받았다. 2번 징계를 받은 이들 중에도, 최*식 변호사는 "정직 2월 - 정직 4월"을, 조*규 변호사는 "과태료 300만 원 - 과태료 1천만 원"을, 임*성 변호사는 "과태료 2천만 원 - 과태료 700만 원"을 처분받았다.

제식구 감싸기 등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엄정하게 징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그간의 비판을 감안해보면, 앞의 변호사들은 사실 제명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참여연대는 460건의 내역을 분석한 이슈리포트를 30일에 발표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슈리포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이런 변호사인줄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참여연대가 30일 발표한 이슈리포트의 주요내용입니다.



태그:#참여연대, #변호사, #변호사징계, #대한변협, #변호사징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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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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