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거 수십 년 전에 사회 통념적으로 이뤄진 일을 지금의 공정사회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고 오히려 공정사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는 일시적인 구호가 아니다. 우리 임기 마지막 날까지 국정운용의 중심기조이고, 다음 정권까지도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많은 언론들이 이 대통령의 발언은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29~30일)를 앞두고 김 후보자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에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이명박 정권이 자신의 과거 국정운영 행태를 지금의 공정사회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과 교섭단체 원내대표 및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야당 대표인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겨냥하여 "할 수 없는 것을 너무 요구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하면서 "정권을 잡으면 여당이 일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야당의 몫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겠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야당에게 훈수 차원을 넘어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야당의 역할을 규정짓는 듯한 발언이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빌리지 않더라도, 야당은 야당으로서 존재의미와 역할이 있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야당은 정당정치에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정당으로서 재야정당(在野政黨)의 준말이다. 여당의 정치이념이나 정부시책을 비판,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여당의 독주에서 오는 폐해를 보완하는 한편, 차기 정권창출을 위한 정치활동을 벌인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2대 정당제의 영국에서는 제1야당은 '폐하의 반대당'이라고 불리며 특권이 부여되어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야당의 역할을 여당이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듯이 발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야당이 그 존재의미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하여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6가지 요구사항'을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박지원 대표가 말한 ▲4대강 사업 조정 ▲대북 쌀지원 확대 ▲기습폭우 수해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및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선언 ▲민생예산 확충 ▲SSM(기업형 슈퍼마켓)법의 조속한 통과 등 '6가지 요구사항'이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야당은 '무조건 국정운영에 협조하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뿐더러, 마치 야당 대표의 발언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갈등만 조장하는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동네 초등학생들이 싸우는 듯한 장면이다. 국민들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시기라 해도 대통령과 야당 대표 등의 면담에서 지도자들이 초등학생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정치에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여당과 그렇지 않은 야당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모토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씀하셨듯이 '공정사회'는 일시적인 구호가 아니고 다음 정권까지도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면,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공정사회'를 구현해야 마땅할 것이다. 적어도 독재적 발상을 하거나 독재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야당 고유의 존재의미와 역할을 인정하고 '국정협조'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야당의 요구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라, 대범하게 건전한 요구는 받아들이면서 '국정협조'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 실천을 주창할 자격이 있느냐는 말이 있다.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사회에서 과거의 자신의 불공정한 행태는 그대로 묻어두고, 지금부터, 그것도 남의 불공정한 행태만 문제 삼으며 '공정한 사회' 타령을 한다면, 차라리 '공정한 사회 포기'를 선언해야 할 것이다.

 

평소에 친여당적인 논조를 보이던 <조선일보>도 27일 최보식 선임기자 칼럼에서 "자신의 문제를 뒷전에 밀어둔 채 남을 가르치려고 하면, 앞에서는 눈치를 보겠지만 돌아서면 마음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삼척동자의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에는 나도 허물이 있었으며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나 자신의 과거 허물에 대해 사과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도약하기 위하여 공정한 사회를 주창하니 국민들도 협조하여주시기 바란다'라는 식의 담화문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이 있다.

 

요즈음 야당에서는 '담대한 진보'라는 말이 하나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말이 이인영 전의원의 주창이든 정동영 고문의 제안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담대한 진보'를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담대한 진보'나 '담대한 보수'는 못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쫀쫀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민심을 제대로 읽고 그 민심에 맞는 국정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태그:#공정한 사회, #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야당, #민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