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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2010.9.7~14, 인천) 보석가공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유수진(고3)양에겐 여러 타이틀이 붙는다. 이 부문에서 국내 최초 여성 금메달 수상자,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 성적으로는 학교의 최고기록 보유자 등.

사실 알고 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3월 경기도지방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덕분에 이 부문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어쩌면 올해는 유양의 해인가 싶을 정도다.

유양이 직접 가공한 보석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바로 전국대회 금메달 감들이다.
▲ 작품들 유양이 직접 가공한 보석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바로 전국대회 금메달 감들이다.
ⓒ 두원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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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말린 길, 홀로 그 길을 가다

가녀린 몸매, 예쁘장한 얼굴, 크지 않은 키. 어디를 봐도 이걸 해내리라고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해냈다. 동메달도 아니고, 은메달도 아니고 금메달. 사실 이 소녀가 획득한 금메달보다 더 값진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소녀의 몸으로 공고를 지원하기도 쉽지 않았다. 2008년 자신의 의지로 공고를 지원할 때도 상당한 결단을 해야 했다. 주위의 시선을 물리치고 당당히 이 학교에 지원했다. 그것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학교 시절, 자신이 아는 선배가 보석가공 부문에서 메달을 수상한 걸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된 것. '나도 한 번 해보리라'는 맘이 두원공업고등학교(교장 조한신)로 이끌었다.

유양이 속한 보석가공부는 재료비가 만만찮아 학교에서도 신입생 중 2~3명 밖에 뽑지 않는 곳이다. 더군다나 여학생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 학교를 지원한 꿈이 있던 유양은 주위의 걱정을 뒤로 한 채로 이 부에 지원했다.

지금 유수진 양은 학교에서 보석가공 작업 중이다. 이 작업을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거의 매일 한다. 일반 수업도 듣지 못한 채 여기에만 집중한다. 이런 땀이 있었기에 금메달이라는 열매가 주어졌으리라.
▲ 작업 중 지금 유수진 양은 학교에서 보석가공 작업 중이다. 이 작업을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거의 매일 한다. 일반 수업도 듣지 못한 채 여기에만 집중한다. 이런 땀이 있었기에 금메달이라는 열매가 주어졌으리라.
ⓒ 두원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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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지쳐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건장한 성인 남자들을 다 제치고 유수진 양(두원공고 3년) 은 당당하게 금메달 단상에 올랐다.
▲ 금메달 지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건장한 성인 남자들을 다 제치고 유수진 양(두원공고 3년) 은 당당하게 금메달 단상에 올랐다.
ⓒ 두원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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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남학생도 체력이 달려서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공하다가 간혹 손도 다치고, 간혹 몸에 파스도 붙이는 등의 모습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요일 빼고는 쉬는 날도 거의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보석 가공에만 몰두한다. 대회가 있는 날이면 새벽까지도 하곤 한다.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간 후로 2~3학년 때는 수학여행과 졸업여행도 갈 여유가 없다.

이런 그녀에게 친구들이 말한다. "그거 왜 하느냐고". 그럴 때면 "나에게 꿈이 있어. 내가 가는 길이야. 뭐라도 잘 해야 될 거 아니냐"는 등의 말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 자신조차도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니.

칼날로 보석을 가공하는 일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체력도 소모되는 일이라 동기들도 떠나갔다. 신입생 때 자신과 함께 지원했던 동기들이 포기하고 나니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혼자서 이 길을 가야 했다. 홍일점도 모자라 동기도 없이 혼자의 싸움을 싸워야 했다.

보석가공부, 선배가 지도하는 학교의 외인부대

잠시 말을 비쳤지만, 이 학교의 보석가공부는 '장난'이 아니다. 소수 정예화의 정수라 하겠다. 꼭 하고 싶고, 할 의지가 있는 학생들이 지원하는 곳이다. 이 부서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주로 남학생들의 전유물이다. 이 부서는 모두 5명이 전부다.

보석 가공부는 일반 학과수업엔 들어가지 않는다. 하루 종일 하는 것이 보석가공을 하는 일이다. 학교 시험은 시험 일 주일 전부터 집중해서 공부하고, 내신도 관리한다. 이 학생들의 수업은 '보석 가공' 연마가 전부다. 

더 신기한 것은 학과 교사가 이들을 지도하지 않는다. 바로 직속 선배들이 후배를 지도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에게 배운다. 선배는 또 그 선배의 선배에게. 정밀기술도 중요하지만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선 적어도 교사보다 선배가 더 뛰어나다. 3년 가까이를 주야장천 보석 가공만 한 덕분이다.

이러다 보니 선배의 위엄은 절대적이다. 선배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곧 길이 된다. 선배의 좋지 못한 습관은 바로바로 고쳐서 전수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옛날 장인들이나 예술가들의 전수방식이 떠오를 정도다. 이론 전수가 아닌 순전한 실기 전수의 전형이라 하겠다.

유양의 금메달 획득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준 획기적인 사건이다. 보석가공부의 4명의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인 청사진이다.

유수진 양이 다니는 두원공업고등학교 전경이다.
▲ 두원공업고등학교 유수진 양이 다니는 두원공업고등학교 전경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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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짠한 말 한마디 "고생했다"

유양은 금메달을 따서 좋기도 하지만, '청출어람'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도 느낀다. "금메달을 딴 선배가 지도했는데, 그 성적도 못 내느냐"는 질타의 소리가 유양의 가슴에서 벌써 맴돌곤 한다.

엄격한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남자 후배들이 여자라고 깔볼 수 있다. 하지만, 유양은 가르칠 때는 카리스마로, 평소엔 누나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후배들도 그녀에게 "누나, 누나"라며 잘 따른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바로 그녀의 무기다. 

이번 전국기능경기대회, 내로라하는 도전자 고교생부터 50~60대 성인까지의 사람들이 출전한 곳에서 이루어낸 쾌거다. 그녀가 딴 금메달은 어쩌면 학교의 전설로 남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날 각고의 노력 끝에 일구어낸 열매이기에 더욱 값지다.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찍은 사진이다. 참 예쁘고 참한 소녀다. 이런 일을 해내기에는 말이다.
▲ 유수진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찍은 사진이다. 참 예쁘고 참한 소녀다. 이런 일을 해내기에는 말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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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수상 소식을 접한 부모님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이 말을 한마디 했을까. 그동안 옆에서 딸이 고생하는 걸 지켜본 부모의 무게 있는 한마디였기에 유양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불거진다.

"고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8일 안성 두원공업고등학교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유수진, #전국기능경기대회, #안성두원공업고등학교, #안성, #보석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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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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