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 풍경. 가을에는 벼베기가 한창이다.
 가을 풍경. 가을에는 벼베기가 한창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가을하면 황금들판?

가을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단풍, 파란하늘, 황금들판 등등. 단풍은 아직 이르고, 들판은 황금으로 변해간다. 이른 곳에서는 이미 벼베기를 끝내고 이모작으로 약초로 쓰이는 택사를 심은 곳도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 따뜻하고 넉넉한 느낌이 든다. 그럼 벼는 논에서만 자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벼 재배방식은 여름이 오기 전에 물에 논을 가두고, 여름이 시작되면 모내기를 한다. 그리고 밭에서는 옥수수, 감자 등을 수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벼가 밭에서도 잘 자란다. 들판만큼 풍족한 맛은 덜하지만 산자락 아래 밭에서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볼 수 있다. 물론 물을 가둔 다랑이 논이 아닌 감자 심고 옥수수 따는 밭에서 말이다.

밭벼는 모내기를 하지도 않고 경사진 비탈에서도 잘자란다.
 밭벼는 모내기를 하지도 않고 경사진 비탈에서도 잘자란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밭에서 물을 가두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벼를 전라도 말로 '산두'라 부른다. 정식 명칭은 밭에서 재배하는 벼의 일종으로 '밭벼'라 부르며, 산도(山稻), 육도(陸稻)라고도 한다. 밭에 심다 보니 당연히 모내기를 하지 않고 그냥 볍씨를 뿌린다. 많은 물이 없이도 잘 자라고, 뿌리가 깊이 내려서 가뭄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논에서 자라는 벼와는 달리, 나오는 쌀도 다르다. 밭에서 자라는 벼에서는 주로 찹쌀이 나온다. 밥해먹는 쌀이 아닌 떡 해먹는 쌀이다. 물론 수확량도 논에서 나오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올해는 '산두' 농사가 잘되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수확하지? 밭이라 콤바인이 들어가기 힘들 뿐더러, 기껏해야 작은 밭을 보고 기계를 빌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판이다.

밭에서 자란 벼. 논 만큼은 풍성하지 않지만, 쌀이 필요한 시절에는 요긴한 농사였다.
 밭에서 자란 벼. 논 만큼은 풍성하지 않지만, 쌀이 필요한 시절에는 요긴한 농사였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그래서 온가족이 동원되어 벼를 베고 탈곡하는 작업을 직접해야 할 판이다. 낫으로 벼를 베야 하고, 베어 놓은 벼를 직접 훑어 나락(낟알)을 만들어야 한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해요?"
"예전에는 주변에 찹쌀을 많이 심어서 기계가 올라와서 했는데, 지금은 우리 집만 심다보니 기계가 안 올라와."

오랜만에 벼를 벤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낫질이다. 벼를 벨 때는 낟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밑둥치부터 자르고 가지런히 놓아서 햇볕에 살짝 말린다. 작은 밭이라 쉽게 베어 버릴 것 같았는데…. 한나절이 다 가도록 벼가 아직 고개를 들고 있다.

비탈진 밭에 가지런히 베어진 벼
 비탈진 밭에 가지런히 베어진 벼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낫으로 벼를 한 움큼씩 잡고 벤다. 처음은 쉬운 것 같은 데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낫으로 벼를 한 움큼씩 잡고 벤다. 처음은 쉬운 것 같은 데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허리가 뻐근하고, 왼쪽 무릎이 묵직하다. 해는 서산에 바짝 달라붙는다. 마음은 급해지니 낫질도 더 빨라진다. 그만 두고 내일 와서 하자는데…. 조금 남겨두고 일을 마치기가 싫다. 어둠이 주변을 감쌀 즈음 벼들은 모두 베어지고 줄을 맞춰 가지런히 놓여졌다.

베어 놓은 벼는 탈곡을 해야 한다

요즘은 콤바인으로 벼를 베면 바로 탈곡까지 되어 자루에 담아서 나온다. 그런데, 콤바인은커녕 직접 베어서 땅에 눕혀놓았으니…. 어떻게 탈곡을 하지?

'홀테'라는 빗같이 생긴 도구가 등장한다. 커다란 빗을 'ㅅ'자 형태의 나무 받침대 위에 거꾸로 얻어 놓고 발로 고정시킬 디딤판을 만든 도구다. 바닥에 깔판을 깔고 그 위에 '홀테'를 세운다. 그리고서는 베어 놓은 벼를 가져와서 한 움큼씩 '홀테'에 넣고 잡아당기면 낟알만 아래로 떨어진다.

옛날 방식으로 벼를 탈곡하는 작업.
 옛날 방식으로 벼를 탈곡하는 작업.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홀테에서 벼가 탈곡되어 낟알이 되는 과정
 홀테에서 벼가 탈곡되어 낟알이 되는 과정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홀테에 벼를 탈곡하는 풍경
 홀테에 벼를 탈곡하는 풍경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앉아서도 탈곡할 수 있다.
 앉아서도 탈곡할 수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그걸로 끝이 아니다. '홀테'에서 탈곡된 벼는 이삭 채 떨어진 것도 있고, 잎도 함께 떨어져서, 낟알만 분리하는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 바람이 부는 곳에서 탈곡된 낟알을 바가지에 담아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 무거운 낟알은 바로 아래로 떨어지고, 가벼운 것들은 멀리 날아가서 떨어진다.

이삭 채 있는 것만 골라내 도리깨로 두드리거나 손으로 낟알을 떼어낸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낟알만 남게 되고, 이것으로 밭에서 하는 벼 수확작업은 끝난다. 그러나 쌀이 되기까지는 아직 몇 가지 과정이 더 필요하다. 낟알을 더 건조해야 하고, 정미소에 가서 껍질을 벗겨 쌀로 만들어야 한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벼베기 하는 풍경
 온 가족이 동원되어 벼베기 하는 풍경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벼농사를 짓는 다는 것은 다른 농사보다 힘든 과정이다. 요즘은 농업기계화니 하여 콤바인이 등장하고, 헬기가 동원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시절에 직접 낫으로 벼를 베고, 홀테로 탈곡을 해보니, 예전에 어르신들이 쌀 한 톨도 아까워 했던 게 이해가 된다. 그건 금전적인 가치가 아니라 생산의 가치였다는 것을….


태그:#벼베기, #탈곡, #밭벼, #산두, #홀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