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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자유가 학생들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 공립학교는 물론이고 종교사학(종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립학교, 특히 종교계가 설립한 사학도 예외 없이 학생인권조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헌법의 정신이 교문 앞에서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소신도 다시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28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불교·기독교 등 종교계 인사와 시민 100여 명을 상대로 종교자유와 학생인권에 대해 강연했다. 이 행사는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인사들로 구성된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주최했다.

 

김 교육감은 이 자리에서 종교사학이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사립학교에게도 공교육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재정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거론하며 사학재단을 '압박'하기도 했다.

 

"선교의 자유가 종교 선택의 자유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

 

"사학재단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초·중 사립학교 재정의 약 80%, 고교는 약 50% 이상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재정도 사학재단이 모두 지원하는 건 아니다. 중학교의 경우 약 15~16%를 가계가 부담하고 있고, 고교 역시 45%를 학생 등록금 등으로 채우고 있다. 재단 지원금은 대체로 2%가 채 안 된다."

 

사학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국민 세금으로 채워지는 만큼 공익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 김 교육감은 "사학은 분명 공교육의 범주 안에 있고, 공익성의 기본 가치를 (학교에서)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사학이 방만하게 혹은 족벌체제로 운영되거나, 부정부패 문제가 생기면 교육청이 지도감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종교사학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소수 학생들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주의해야 한다"며 종교사학에서 종교 과목을 수업할 때는 꼭 대체과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도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15조 3항은 "학교는 학생에게 특정 종교행사 참여 및 대체과목 없는 종교과목 수강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김 교육감이 사학재단, 특히 종교사학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인 게 아니다. 그는 학부모와 일선 교사들에게도 생각의 전환을 당부했다.

 

"내 부모님도 예전에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상곤이)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요즘도 많은 학부모님들은 그런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난 이제 '그런 말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때려서 아이들 잡는 시대는 지났다."

 

김 교육감은 "이제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학습지에만 '눈높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데에도 눈높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최근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나와 눈길을 끈 박칼린 음악감독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 개인에게 자율권을 보장하고 철저하게 책임지게 했다. 성과는 바로 그 자율과 책임 속에서 나왔다. <남자의 자격>에 나온 박칼린 선생의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을 존중하고 자율권을 주면서, 원칙과 기준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합창단의 하모니의 비법은 거기에 있었다. 학생들에게 자율권과 책임의식을 갖게 하자."

 

"때려서 사람 만들자고? '자율과 책임' 박칼린 리더십에서 배우자"

 

또 그는 "학생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90개국에 가깝고,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전 세계 10위권에 들어간다"며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요즘 선진국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선진국이 도대체 뭔가, 학교 문화가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선진국 외쳐봐야 소용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학생들에게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통제해서는 국제적이고 민주적인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자율권과 책임의식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보살필 때 국제적이고 공익적인 인재가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오는 10월 5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할 예정이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날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대한 지도 감독을 곧바로 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학교별 교칙 개정과 구체적인 시행령 제정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경기도교육청 측은 무상급식 시행보다 학생인권조례 안착이 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상급식은 제도의 문제지만, 학생인권조례 안착은 일상 문화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무상급식처럼 시민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태그:#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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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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