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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말고 학생들의 미래를 밝혀라."

지난 일요일 한 방송사의 개그에서 대입 전형을 두고 일침을 놓은 대사이다.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대입 전형이 개그의 풍자 대상이 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본격 대입 수시 전형, 로또 꿈을 말하는 아이들

대학에서 학교에 온 홍보책자 및 모집요강
▲ 대학 홍보 책자 대학에서 학교에 온 홍보책자 및 모집요강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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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대입 수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서류 전형 1차 발표가 있고, 논술 시험이 있다. 학생들과 대입 상담을 하고 원서를 쓰면서 학교에서 20년을 보냈지만 올해만큼 나의 말이 힘을 잃은 때는 없었다.

현재까지의 성적을 놓고 수시와 정시를 저울질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의 이야기는 먹혀들질 않는다.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성적을 아예 무시하고 로또 꿈을 말한다.

그동안 모자란 성적을 논술로 뒤집고, 서류 꾸밈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물론 이런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논술, 서류에 대한 로또 꿈을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릴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기에 그렇다.

논술과 입학사정관제 전형, 이 두 전형이 수시 전형의 주류이다. 현재 수시모집 비중은 점차 늘어 전체 선발 인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대입 전형이 잘못 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오늘도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수학과 영어 그리고 언어와 사탐 공부를 하고 있다. 왜 대입에서 비중이 높은 수시보다 수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그것은 논술에 대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길이 없고, 비교과 서류에 대한 검증의 잣대가 없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자신의 점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수시 전형의 서류 점수에 대해 대학에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잣대를 밝혀 놓으면 거기에 맞춰 그것만 준비하니까 밝혀줄 수 없다고 한다. 수능에서는 각 문항 별로 [1점], [2점], [3점], [4점]으로 다 밝혀 놓았는데도 말이다. 어떤 서류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수험생은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한다. 너무 일방적이지 않는가?

내신 부족해도 논술 좋으면 합격? 꿈 같은 소리

대학에서 가끔 정보랍시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내신은 조금 부족하지만 지원 학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활동사항에 잘 나타나 있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이런 말도 한다. 내신이 조금 부족하였지만 논술 실력이 우수하였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 한 마디에 수많은 학생들은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입학사정관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 곧 학교 내신이었으며, 그 다음이 지원 학과와 연관된 활동 사항이었다.

논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 추석 기간 동안 논술 고액 과외가 단속되기도 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논술의 비중은 높은데 학교에서는 논술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학교에는 논술이라는 교과목이 없다. 사회 교과서나 국어 교과서에 있는 학습 활동을 충실히 하면 논술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틈틈이 독서를 하면 논술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자.

그걸 누구 모르나.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것 아닌가? 수행평가 과제를 제출해야 하고, 중간,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고, 모의고사 성적도 올려야 한다. 논술은 학생들에게 당장 급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논술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고등학생 가운데 논술에 자신 있다고 외칠 수 있는 학생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기적을 꿈을 꾼다. 논술로 대학 역전을 이룰 수 있다고. 논술을 코앞에 두고 고액 과외로 몰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준비시킬 수 없는 입시 제도는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졌더라도 그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사교육만을 조장할 뿐이다.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한 학원과 논술 고액 과외가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촌은 현재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특수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조기 발굴해야 한다면 그러한 인재만 뽑으면 된다. 사실 그러한 인재는 고등학교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아직 고등학생들이다. 다양함을 키워나가는 단계이지 다양함이 완성되어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 다양성은 대학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대입까지 교육이지 않는가? 대입까지 교육이 아니라 대입부터 교육으로 바뀔 때 진정 그 다양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입학사정관제는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실시되어야

지식정보화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논리력을 길러 주기 위해 통합교과 논술은 필요하다. 필요하면 논술을 정규 교과목 시간으로 편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논술은 창의력과 논리력을 측정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단지 변별력을 위한 수단으로 논술 지문을 어렵게 출제해서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가 없다.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어느 국회의원 말씀대로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역균형선발전영이나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 정도면 족하다.

수능은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이전의 단순한 지식 위주 입시인 학력고사에서 벗어나 학문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마련된 대입 제도이다. 변화를 거듭하는 현재의 대입 제도 또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는 제도,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는 제도가 나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능력은 학교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교육은 흔들리고, 대학은 돈 말고 학생들의 미래를 밝히라는 개그의 소재가 될 뿐이다.


태그:#교육, #대입, #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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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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