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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다니는 키스방에는 인터넷 사이트가 따로 있는데 거기서 활동을 엄청 열심히 했더라고요, 여섯 살 난 딸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글에 올리면서 정말 세세한 이야기를 다 적어 놓았더군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저한테 '여자가 싫다, 만지기도 싫다' 이래놓고는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 알았을 때 너무 힘들어서 2주 동안 앓아누웠어요."

신지은(29, 가명)씨가 남편이 키스방을 다닌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1월이었다.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추궁하자 나온 것이 "바람이 아니라 키스방에 다녔던 것"이라는 답변이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는 신씨 앞에서 남편 김상헌(35, 가명)씨는 당당했다. 그는 "키스방은 합법"이라며 "키스방에서 간혹 성매매를 원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이들을 막는 역할까지 했다"며 '선'을 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신씨는 "남편이 처음엔 미안하다고 했지만 들킨 뒤에도 계속 키스방에 다니고, 사이트에 키스방 이용 후기 글을 올렸다"며 "한 때 학생운동을 하며 여성운동도 했던 사람이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믿음을 완전히 잃어 이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남편과의 일을 이야기하는 신씨의 입에서는 자조 섞인 헛헛한 웃음이 자주 새어나왔다. 신씨 부부는 현재 이혼에 합의한 상태다.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은 신씨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합법'적인 키스방이 낳은 피해자다.

키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팔 수 있는 것'으로 통용

키스방 홈페이지에 각종 이용 후기들이 올라와있다.
 키스방 홈페이지에 각종 이용 후기들이 올라와있다.
ⓒ 키스방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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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성매매특별법(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된 지 이 날로 꼭 6년이 된다. 그러나 '키스'를 사고파는 키스방은 신체 일부와의 직접적인 성기 삽입을 '유사 성행위'로 전제하는 '성매매방지법'을 피해갈 수 있다. 현행법으로는 키스방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법의 빈틈이다.

지난해 변도윤 여성부 장관이 "키스방 등 변종 유흥업소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키스방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7월 말 현재,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키스방의 전국적인 규모는 132곳.

경찰 관계자는 "132곳은 키스방의 간판을 달고 세무서에 신고한 규모"라며 "키스방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달지 않거나 신고를 안 한 업체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업 중인 키스방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몸집을 키워 20여 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키스방들이 전국에서 성업 중이며,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노골적인 홍보를 일삼고 있다. 최근 키스방은 트위터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길에 흩뿌려진 명함으로 구매자와 접촉했던 키스방은 이제 인터넷을 통한 접근이 더 활성화 된 상황이다. 사이트에 나란히 진열된 여성들은 클릭 한 번에 자신의 키스를 예약한다. 이제 '키스'는 사회 내에서 '팔 수 있는 것'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다.

변혜정 서강대학교 양성평등성상담실 교수는 '성적 거래의 변형과 확산의 정치학' 논문에서 "성 상품 후보가 '특정 여성(몸의 부위나 성적행위, 다양한 성적 서비스 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며 "어떤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지를 묻는 상품성의 조건은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서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여성의 키스를 사고파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인식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구매자는 문제의식 없이 성문화를 소비의 형태로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

변 교수는 "(키스방과 같은 변종 업소의 경우) 구매자들은 단골을 선호하며 감정적 서비스의 '진정성'을 요구한다"며 "구매자는 일정 시공간에서 특정 행위 부착된 '돈으로 가능한 제한적 친밀한 관계를' 구매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변 교수와 면담한 키스방 이용자 A씨는 "이런 업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남성사회에서는 찌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 같이 스펙 없는 애들은 솔직히 작업하기 힘들어요, 키스하러 오기보다… 단골이 되면 더 많은 것을 받아요"라고 진술했다.

키스방의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도 등장했다.
 키스방의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도 등장했다.
ⓒ 키스방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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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방에서 일하는 여성인 김미경(가명)씨 역시 변 교수와의 면담에서 "키스도 하지만 손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해요, 상담자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하죠, 돈 많이 주면 단골 되고 나중에는 그 사람 애인처럼 친하지만 바깥에서는 정말 모른 척해요"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이에 대해 "상호적인 서비스를 실행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연기'를 팔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변 교수는 "이윤추구를 하는 업주와 거래만 '정당하다'면 성적 서비스도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구매자는 어떠한 문제의식 없이 오히려 개인의 성적 자율성과 개방된 성 문화를 (돈만 있으면) 다양한 소비의 형태로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키스방이라고 키스만 한다고 아무도 생각지 않아"

그러나 키스방이 과연 합법적인 형태로만 영업을 할까. 박윤 다시함께센터 상담원은 "키스만하고 나온다는 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키스에서 성매매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실제 변 교수와 면담한 키스방 이용자는 "키스방이라고 키스만 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땡기면 하는 것이지 서로 동의 하는데 뭐가 문제예요"라고 진술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성매매까지 진행된다고 해도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를 규제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키스방을 제재할 법적·행정적 근거가 없기에 단속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분증과 임대차계약서만 있으면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는 키스방은 법과 법 사이의 틈새에 교묘하게 몸을 숨긴 채 음성적으로 퍼져가고 있다.

합법의 외피를 쓴 키스방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바로 키스방에 종사하는 여성이다. 박윤 상담원은 "키스방에 처음 왔을 때는 유사성교 행위만 이뤄지다 이후 개인적인 성매매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그걸 남성들이 이용해서 '돈 주고 했는데, 꽃뱀 아니냐'며 여성을 협박해 정기적인 성관계를 요구하고 스토커로까지 변질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상담원은 "법 안에서는 여성이 개인 성매매의 피의자가 될 수 있어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할 때가 많다"며 "여성들은 남성의 협박에 겁을 내 성구매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기 딸이, 부인이, 어머니가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20여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키스방들이 전국에서 성업 중이며,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노골적인 홍보를 일삼고 있다.
 20여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키스방들이 전국에서 성업 중이며,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노골적인 홍보를 일삼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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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담원은 "성매매 특별법 안에 유사 성교 행위의 개념 자체에 대한 재해석과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그런 부분이 명확해 져야 법망을 피하는 변종 성매매를 단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다시함께센터 상근변호사는 "업주들은 성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하기 때문에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벌금 몇 푼 무는 걸로는 눈도 깜짝 안 한다"며 "단속을 하는 주체인 검찰과 경찰이 성매매라는 불법적인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추징·몰수하려는 강경한 의지를 펼쳐야 성 산업이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합법, 불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 딸이, 부인이, 어머니가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답이 명확하게 나올 것"이라며 "돈으로 사람의 신체를 사고파는 것은 절대로 깨질 수 없는 본연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절대 합법하거나 타당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합법'이라며 당당했던 김상헌씨를 바라봐야만 했던 신지은씨 역시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다는 게 어이가 없고 불법, 합법이라는 기준이 굉장히 애매한 것 같다"며 "분명히 지켜야 할 무언가라고 있는데… '합법, 불법'이라는 기준은 양심의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혜정 교수는 "법의 강화와 더불어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한국의 성문화 자체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강화된 법을 실천력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그:#키스방, #성매매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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