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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씨와 그의 부친 황상기씨. 삼성전자에 다녔던 황유미씨는 지난 2005년 백혈병이 발병했고, 2년 뒤인 2007년 세상을 떠났다.
 황유미씨와 그의 부친 황상기씨. 삼성전자에 다녔던 황유미씨는 지난 2005년 백혈병이 발병했고, 2년 뒤인 2007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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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공개된 피해자만 59명... 더 많아질 수 있어"

- 미국공중보건학회 수상을 축하한다.
"미국공중보건학회 산업안전분과에서 주는 상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병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반올림의 싸움이 수상의 계기다. 반올림이 받았으면 했는데, 개인이 수상할 수밖에 없어서 형식상 제가 받은 것이다. 상을 받으러 가면 산업안전분과 소속 전문가들이 수백명 모일텐데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우리의 싸움을 효과적으로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병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국제적인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외국사례를 보면 보통 중년에 암에 걸린다. 젊어야 30대다. 그런데 우리는 21살, 22살에 죽는다. 정말 억울하다. 잘 싸워서 이겨야 한다. 어영부영 넘어가면 (삼성이) 중국에서도 그럴 것 아닌가? 이번 수상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 사람들이 미안해 한다. (미국에서는) 20년, 30년 전에 알려진 문제인데, 유산이나 기형아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도체 양산 라인이 다 아시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노동환경보건운동 했던 분들과 열심히 연대하고 있다." 

- 어떻게 삼성반도체 산재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07년도에 황유미씨가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던 중 황씨의 부친인 황상기씨로부터 5-6명의 동료들도 백혈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었던 분들이 대책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제가 일하고 있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도 대책위에 참여하게 됐다."

- 처음 대책위에는 주로 누가 참여했나?
"20여 군데에서 참여했다. 이종란 노무사가 일했던 민주노총 경기법률원과 다산인권센터, '건강한 노동세상'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여기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재노동자협의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회당, 삼성해복투, 삼성일반노조, 경기비정규직센터 등도 참여했다."

-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
"7월 현재까지 공개된 피해자는 59명이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늘어나) 100명에 육박할 것으로 파악됐다. 종전에는 제보를 통해서 피해자 규모를 파악했는데, 이번에는 정부에서 조사한 자료 등을 종합했더니 그렇게 규모가 커졌다. 이들 대다수가 암이고, 10% 정도만이 암 이외의 다른 질환을 보였다. 사망이 확인된 사람만 30명이다."

- 앞으로 피해자 규모가 더 커질 수 있겠다.
"더 나올 것이다. 백혈병뿐만 아니라 난소암, 자궁암에 걸린 사례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우리 활동이 주로 백혈병으로 한정돼 알려져 있어서 백혈병 사례에 편중돼 있었는데 이제는 다른 암 사례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백혈병이 아닌 암도 상당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 피해자가 더 많아질 것 같다."

- 주로 피해유형은 어떤 것인가?
"제일 많은 것이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이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철분이 결핍된 게 아니라 골수가 망가져 피를 못만들어 생기는 병이다. 림프종과 백혈병을 묶어서 암으로 보기도 하고 (암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보기도 한다. 림프조혈기계 암이 제일 많다. 이게 40% 정도 된다.

그 외 피해유형은 다양하다. 한혜경씨는 뇌종양이었고, 연제욱씨는 보기 드문 생식세포종이었다. 삼성반도체와 LCD 외에 삼성전기 휴대폰 공장, 삼성전관(현재 삼성SDI), 삼성코닝 등 삼성의 전기계열 제조업 피해 노동자들이 10명 정도 된다. 이들은 암은 아니지만 희귀질환인 육아종이나 루게릭병, 다발성 말초신경염 판정을 받았다. 말초신경염은 (원인으로) 화학물질과의 연관성이 대단히 높은 질환이다.

생식독성은 생식계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영어로 리프럭티브 디스오더(reproductive disorder)라고 한다. 암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소나 난소에 문제를 일으킨다. 생리불순, 불임, 조기폐경, 무정자증, 유산, 선천성 기형아 출산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 생식독성 피해자 숫자가 집계되지 않았다. 제보는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정리작업을 하고 있는데 모아놓니 상당히 많더라.

한혜경씨는 20대 미혼여성이었는데 입사한 지 2년이 지나자 월경이 없어졌다. 백혈병 사망자인 황민웅씨 아내 정애정씨도 자연유산 경험이 있었다. 산재신청을 했던 김경미씨는 아이가 안 생겨 불임치료를 받다가 28살에 아이를 가졌다. 그런데 아이 돌잔치를 앞두고 사망했다. 그런 사례가 많다."

"반도체 공정 연구원 4명 중 3명이 백혈병·흑생종·육아종에 걸려"

- 피해자는 주로 반도체와 LCD 라인에서 일하던 사람들인가?
"반도체와 LCD 라인의 제보가 제일 많이 들어온 것뿐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몰라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외국에서도 이 산업의 업종 분류가 임의적이었다. 전자와 전기로 나뉘지만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삼성SDI에서 휴대폰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리튬이나 카드뮴 등 중금속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반도체와 LCD 라인이 제일 큰 문제이고, 다른 곳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반도체와 LCD 라인만 많이 알려진 것뿐이다."

- 림프조혈기계 암과 반도체․LCD 등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험적 증거가 많다. 삼성반도체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같은 작업을 하거나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백혈병 등 암에 걸렸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84년 라인이 만들어진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는데, 1라인부터 6라인까지 구형라인에서 (백혈병 등 피해자들이) 많이 나왔다. 최신 라인인 10 몇 라인에서 나온 경우는 없다. 여기는 자동화돼 있다.

피해자들 중에 4명이 한 팀으로 일했던 경우가 있다. 디퓨전 공정을 관리하는 엔지니어들인데, 부장은 40대 초반에 백혈병에 걸려 현재 투병 중이고, 과장은 흑생종(피부암)에 걸려 죽었다. 다른 한 명은 육아종에 걸려서 현재 투병 중이다. 4명 중에 3명이 이렇다. 이것이 우연인가? IBM 연구소에서 웨이퍼 반도체 공정을 연구하는 연구원 12명 중 2명만 빼고 10명이 암과 뇌종양에 걸렸다. 그 10명 중 4명이 뇌종양이었다. 이게 알려진 게 1985년이었다.

삼성은 다른 나라 얘기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반도체 칩을 검사했던 박지연씨는 백혈병으로 사명했다. 칩을 검사했던 여성 노동자들 중에 재생빈혈이나 뇌종양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 화학물질을 밀폐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쪽에서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증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10년 전 (반도체 공장에) 발암물질이 없었다는 증거도 없다.

2008년과 2009년에서야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 (암을 유발하는) 산재환경이 없었다고 얘기할 수 없다. 특히 중요한 건 발암물질로 밝혀진 게 있고, 밝혀지지 않는 게 있다는 점이다. 또 발암물질인지 아닌지 모르는 물질도 있다. (그런데도 상관관계가 없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어느 동네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동네에 전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논리를 펴는 것과 같다.

어떤 책을 번역하다 본 것인데, 미국에서 사용량이 제일 많은 100대 물질을 놓고 그 물질의 안전성이 확인됐는지를 평가했다. 그 결과 발암성이 있는지 연구가 이루어진 물질은 50%에 불과했다. 생식독성이 있는지 없는지 연구한 것도 50%였다. 발암, 신경독성, 생식독성, 소아에 있을 수 있는 독성, 환경독성 등을 모두 종합해서 봤더니 90%가 (안정성 연구가) 안된 걸로 나왔다.

1년에 4만가지 신규 화학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정부나 삼성에서는 발암물질이 없다고 하는데, 발암물질로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법에도 안걸린다. 지금이야 벤젠을 발암물질로 알고 있지만, 저는 초등학교 시절 실과시간에 벤젠으로 옷에 붙은 껌을 지웠다. 벤젠을 문구점에서 팔았다.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20년 전에는 몰랐다. 지금은 그것이 발암물질로 알려졌는데도 그걸 사용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수십년 써보고 나니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연히 규제도 늦게 도입된다. 그러면 직업병 아닌 게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소한 암의 10%는 직업상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산재 판정을 받은 암은 작년에 4명, 재작년 5명 정도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중 16명이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8명은 '불승인'이 났고, 나머지 8명도 '불승인'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중 16명이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8명은 '불승인'이 났고, 나머지 8명도 '불승인'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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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반도체 조사 결과 공개하지 않아"

- 백혈병 등 암 발생은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먼저 화학물질이 주요한 요인이다. 두 번째는 방사선이나 유해광선이다. 엑스선은 여러 가지 검사에서 사용하는 걸 확인했다. 칩을 만들 때 회로가 미세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듯이 찍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자외선을 노출시킨다. 반도체나 LCD 다 마찬가지다. 또 고압에너지도 쓰는 데 고압에너지를 쓰면 전자기장이 형성된다. 고압설비들이 있고, 이온을 만들고, 전하를 만드는 공정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자기장이 형성된다. 그런 것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모른다.

세 번째는 노동시간을 어떻게 짜느냐의 문제가 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과 교대근무가 발암요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발암물질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데, 1등급은 실험을 통해 사람한테 암이 발생한다는 발암성이 확인된 것이다. 석면이나 벤젠이 여기에 해당한다. 투에이(2A)는 '프라버블'(probable)이다. 즉 확정적인 근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농후한 등급이다. 물론 확정적 근거가 나오면 등급이 올라간다.

그리고 투비(2B)는 '파서블'(possible)이다. 동물실험을 했는데 사람한테도 발암성이 있을 것 같다는 등급이다. 야간노동이 포함된 교대근무는 투에이(2A)등급으로 여성들에게 유방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확정적으로 확인됐다. 젊은 노동자들이 10대부터 심야노동, 교대근무을 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은 화학적 요인은 아니지만 인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다."

- 왜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공개하지 않는가?
"기업이 저한테 공개할 의무는 없다. 물론 정부기관이 요구하면 내놔야 한다는 것은 있다. 예컨대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역학조사 규정이 있다. 하지만 '노동부 장관이 역학조사를 명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정도다. 강제(의무)규정이 없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알 권리 보장하기 위해 화학물질과 관련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규격화돼 있다. 물질의 성질, 보건상의 문제 등이 정리돼 있다. 그걸 (현장에) 배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MSDS조차 영업비밀을 허용하고 있다. 혼합물질일 경우 몇 %씩 구성됐는지 나와 있는데 (명시하지 않은) 0.2%의 물질을 '영업비밀'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제조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물질을 명시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에서도 (반도체와 관련) 조사를 해서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기업의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가 2008년 초 반도체 제조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암환자 자료를 내놓으라고 해서 다 조사했다. 그런데 '영업비밀'을 들이대며 공개를 거부했다.

영업비밀이라도 공공의 건강, 안전문제와 관련되면 공개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긴 하지만 (조사결과가 공개되기 위해서는) 이중삼중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실리콘 밸리(캘리포니아)에서는 시민이 화학물질 리스트 공개를 요구하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주법('지역사회 알 권리 법안')으로 만들어져 있다. 캘리포니아 오스틴에도 삼성공장이 있다. ('지역사회 알 권리 법안' 때문에) 캘리포니아 삼성공장은 미국 시민에게 정보공개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똑같은 회사가 암에 걸려 딸이 죽은 한국의 아버지나 노동자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사람이 아닌가? (한국과 미국의) 그런 사실이 정말 대비되더라. 삼성이나 정부는 얄팍한 법 뒤에 숨어서 공개를 안 하고 있다."

- 삼성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박지연씨 사망했을 때 삼성은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꾸려 조사하겠다고 했다. 지금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피해자 쪽에서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채 이름만 올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 문을 열어줘야 한다. 회사가 고용한 연구진만큼의 인원을 학계나 시민사회에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다."

"발암물질이 없는 환경에서 일했다는 증거도 없어"

- 삼성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나?
"돈으로 덮는 것이다."

- 일부 피해자는 삼성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더라.
"거액을 받은 분은 박지연씨 한 명뿐이다. 3억 3000만원 정도 받았다. 박지연씨는 2년간 투병했는데 워낙 가난해서 빚으로 살았다. 박지연씨 어머니가 급식보조원이었는데 1년 넘게 간병하느라 일을 못했다. 그동안 수입이 제로였다. 남들은 삼성에서 준 3억3000만원으로 집 한 채도 살 수 있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진 빚을 갚고 조금 남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남은 돈은 못 쓰겠다'고 하더라.

산재를 신청한 16명 중에서 6, 7명에게 (돈과 관련) 제안을 삼성 쪽에서 했다고 한다. 삼성쪽은 '어차피 안 된다, 설사 산재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1억여원 정도 나오는데 회사에서 줄테니 취하해라'고 한다. (그게 안 되면) 삼성이나 하청업체에 다니는 친인척, 선후배를 동원해서 압박해온다. 그래서 돈을 받고 산재신청 등을 포기하면 '돈을 바라고 그랬다'고 비난한다. 이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위로금이라고 얘기하는데 조건을 걸고 위로금 주는 게 어디 있나? 그것은 매수다. 물론 세계적인 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치료비 등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삼성은 단순히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팔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껏 해온 일이 마치 돈을 바라고 한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가난하고 못배운 분들이 양심과 정의감으로 버티고 있는데 그 마지막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매우 못된 짓이다.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가족들은 '자식 목숨을 세탁기값 흥정하듯 하는 데서 상처받는다'고 말하더라. 삼성의 수법은 암에 걸리도록 방치한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주요 이유는 무엇인가?
"산재를 신청한 16명 중에서 8명이 승인을 받지 못했다. 나머지 8명도 올해 안에 다 불승인을 받을 것 같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5~6년 전 발암물질을 썼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발암물질의 농도, 노출정도가 충분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노출기간이 확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부 일축했다. 한마디로 '가보니까 없더라'라는 것이다. 방사선의 경우 있긴 한데 노출강도가 낮아 자연방사선 수준이라고 했다. 다 밀폐해서 노출이 안 됐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한혜경씨는 '하루종일 약냄새를 맡으면서 초록색 기판에 부품을 올리고 통으로 구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납녹는 냄새가 났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쪽 증인으로 나온 전직 직원은 냄새가 안 났다고 했다. 회사에서 극소배기장치를 잘 해놨다고도 했다. 결국 한혜경씨 진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피해자들이 발암물질이 하나도 없는 환경에서 일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발암물질이 없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암물질의 증거와 존재, 노출강도 등을 피해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한혜경씨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은 증언해줄 수 없다. 동료 진술자를 찾는 것도 참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이나 기업주가 깨끗하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 외국에서 비슷한 경우로 산재 인정받은 사례가 있나?
"이런 문제를 맡고 있는 미국의 변호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변호사 말에 의하면, 무슨 화학물질을 썼는지 그 리스트를 노동자가 가져오거나 본인에게 없으면 변호사가 확보한 리스트를 가지고 변호사와 회사, 보험사 3인이 만난다. 변호사 쪽에서 '이런 물질이 노출됐을 것으로 본다'고 하고, 보험사 직원도 오케이 하면 보험료가 지급된다. 산재 인정은 대체로 쉬웠다고 한다.

IBM 노동자 250명이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산재 소송이 아니라 사용한 화학물질 중에 발암물질로 확인된 게 있다는 것이다. 생식독성 피해자들이 많았는데 81년엔가 기형아를 낳기도 했다. 그 발암물질은 이미 75년에 확인된 것이었다. IBM이 그런 책임을 인정하라는 소송이었다. 하지만 IBM의 고의성 입증이 어려웠다. 판사는 '회사가 발암물질인 것을 알면서 사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그 소송이 우리나라에는 잘못 알려져 삼성 쪽에서 일하는 몇몇 전문가들이 '미국에서도 소송에서 졌다'고 호도했다. 1970년대부터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재문제 소송을 맡아온 아만다 허즈 변호사가 우리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분이 '삼성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리스트를 달라'고 해서 '삼성이 안 준다'고 말했더니 '어떻게 기업에서 그 리스트를 안줄 수 있냐'고 놀라워하더라.

(삼성 반도체 백혈병 발병 등과 관련) 해외투자기관들 삼성에 질의를 보낸 적이 있었다.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큰 일이었다. 삼성에 투자를 하는 8개 기관은 북유럽쪽 연기금 투자기관들이다. 북유럽은 유엔과 책임투자협약(PRI)을 맺고 있다. 환경, 도덕성, 사회적 책임 등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업 운영이 비민주적인 곳은 투자를 안 한다. 그런 기관들이 삼성에 질의를 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추이를 지켜본 뒤 총회에서 투자 철회를 결정할 수도 있다.

삼성처럼 큰 기업이 투자기관들로부터 질의를 받는 것 자체가 큰 일이다. 이 기관들이 8월에 삼성을 모니터하러 왔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다른 외국기업들은 알아서 답변을 잘 하기 때문에 (모니터단을)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답변이 미약해서 (모니터단을) 보낸 것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는 백혈병 등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는 백혈병 등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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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돈 써서 막으려는 데는 한계가 있어"

- 삼성 반도체 백혈병 싸움을 계기로 '청정산업'이라는 반도체 산업의 그늘이 한국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황유미씨는 반도체 노동자로서 산재(암)를 신청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생산직 소녀들'이다. 외국자료를 보면 70년대 영국 반도체 노동자들을 '걸들(girls)'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처럼 외국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걸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집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체력은 강한 '걸들'이었다.

영국에서도 물량이 많으면 화학경보장치를 끄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영국 반도체 공장은 생지옥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화학물질이) 노출되면 '걸들'이 사방에서 구토를 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영국에서도 암 피해자들이 조직됐다. 그런데 20~30년 지나서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느낀 삼성의 실체는 어땠나?
"삼성의 실체를 느꼈다기보다 실체의 발가락 때 정도만 봤다. 어떻게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 됐는지 알게 됐다. 한국은 조선강국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배를 빨리 만드는 5개 기업 중 서너 개가 한국기업이다. 하지만 조선소에서 숱하게 노동자들이 죽어갔다. 다만 반도체 공장에서는 떨어져 죽는 게 아니라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숨기려는 태도가 더 큰 잘못이다.

누구나 잘못(실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가피한 피해가 생겼을 때는 고쳐나가야 사람다워질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은 사람이 아니었다. 삼성은 괴물이었다. 박지연씨는 그의 어머니 표현대로 하면 '목숨값'으로 3억3000만원 받았다. 그걸 보고 거액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건희는 주식배당금으로 올해 874억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약 300년 동안 이런 돈(위로금)을 주고 (산재 문제를) 잠재울 수 있는 금액이다.

삼성이 내년에 26조원의 신규투자를 하는데, 반도체와 LCD 등에 11조원을 투입한다고 한다. 보통 반도체 한 라인을 만드는 데는 2~3조원이 들어간다. 삼성의 경쟁자인 일본의 한 기업은 5조원이고, 3위 기업은 2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투자금액을 비교해보면) 삼성이 반도체와 전자업 등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 같다. 삼성의 시장장악력이 커지고, 돈도 더 많이 벌고, 노동자도 더 많이 고용할 것이다.

그런데 (그에 비례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것을 예방할 수 있도록 지금의 문제를 직시해서 지금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삼성에는 그런 태도를 찾을 수 없다. 중국에서 얼마나 생난리가 날까 정말 걱정된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한국에서 겪었던 사람들이 먼저 제압해야 한다. 피해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싸우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생각인가?
"(삼성이라는) 괴물에 맞서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그 힘이란 피해자 편에 서는 사람들을 늘리는 일이다. 다수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이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정말 적었다. 3년 전에는 황유미씨 아버지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황유미씨처럼 이름을 드러내놓고 산재를 신청한 사람이 16명으로 늘어났다. 외국에도 알려지는 등 (지지자들을) 많이 모아왔다.

여기에 더 가속을 붙어야 한다. 피해자들도 더 찾고. 100명, 200명이 싸우면 부담이 덜하고 피해자도 덜 고통스럽다. 삼성이 돈 써서 막으려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올림'은 내년에 상설단체화할 계획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이길 때까지 싸울 생각이다."


태그:#공유정옥, #삼성반도체 백혈병, #황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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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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