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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 달동네 달동네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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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보릿고개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생활하던 시절, 비라도 내리면 가마니, 비닐조각으로 지붕을 덮느라 시끌벅적. 눈오는 겨울이면 아이를 등에 업고 19공탄을 새끼줄에 끼어 날라야 했고, 공동우물이 고갈되면 급수차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시절, 등교 출근시간은 다 되었는데 공동화장실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안 나오면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달동네의 추억은 가난과 고통이 아니고 이웃과의 따뜻한 숨쉬기였다.   
 -순천 달동네 세트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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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의 높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달동네'라 한다. 달동네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사람마다 그 상상은 다르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달동네를 가 본 적이 없는 내게 달동네는 그저 드라마에서 본 스토리나 배경이 전부다. 그런데 지난 8월 말경 '순천 달동네 드라마 세트장'를 가보게 되었다. 내가 본 달동네는 드라마를 통해 본 인정과 사랑을 말하기엔 너무나 아픈 삶의 현장이었다. '과연 달동네가 추억과 가난, 고통이 아닌, 이웃과의 따뜻한 숨쉬기 공간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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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달동네 세트장'에 도착한 것은 8월 28일,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40-50 가구가 모여 있는 달동네에 부슬부슬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붕에서부터 골목, 창문, 담벼락까지 달동네는 검은 잿빛이었다. 주홍색 슬레이트 지붕 몇 채가 빛이 바래 있었다. 비 내리는 달동네 골목길은 암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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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로 들어가는 첫 집은 '뉴서울상회 쌀집'. '뉴서울쌀집'에서 갈라지는 좁은 골목길은 오르막길이다. 뉴서울쌀집 앞에 서있는 전봇대의 반공방첩이 당시의 시대 배경을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찌그러진 문짝, 지붕 아래 시꺼먼 굴뚝, 판잣집 앞에 놓인 노란주전자와 소주병이 달동네 사람들의 빈곤의 고뇌와 아픔을 잘 말해 주었다.

집 한 채 크기가 대형아파트 안방 정도나 될까.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방문, 골목길 연탄재, 그러나 촘촘히 쌓아올린 붉은 벽돌의 의미는 무얼 말해주려는 것인지 아이러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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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전망은 끝내주겠지?"

동행한 한 선생님의 말이 참으로 씁쓸했다. 달동네 공동 우물 앞에 서 있으려니 순천시고층아파트가 한눈에 보였다. 순간, 순천 달동네 드라마세트장의 배경이 된 드라마가 생각났다. 달동네를 둘러싼 사랑과 분노, 그리고 재개발의 아픔을 말해 주듯이 산동네 비탈길에는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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