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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쟁비축미 100만 톤을 보유하고 있다"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정부 쪽에서도 뒷받침하고 나섰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100만 톤 이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100만 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냐"는 질문에 "그렇게는 아니고 100만 톤을 조금 넘는 규모"라고 말했다.

북한의 군량미 규모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100만 톤 이상'이라는 규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 지원한 쌀 240만 톤과 옥수수 20만 톤의 상당수가 군량미로 전용됐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러 측면에서 의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북 식량지원재개 문제 둘러싼 정부 이견 드러나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자료사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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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대북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해 볼 때 김무성 원내대표의 발언은 매우 미묘한 시점에 나왔다.

민주당 등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뿐 아니라 여권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덕룡 대통령 특보까지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이에 대한 여론이 확산돼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없이는 대규모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이틀 뒤 "북한 비축 군량미 100만 톤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나왔다. 또 김 원내대표는 구체적으로 "북한은 남한의 쌀을 지원받으면 군량미로 비축하고 기존의 쌀을 방출한다"말해, 사실상 대북 식량지원의 근거 자체를 허물어 뜨리려는 뜻을 나타냈다.

'북한 군량미 규모'라는 '정보사안'을 정부 쪽에서 적극적으로 확인해주는 것도 이례적이다. 김 원내대표도 이에 대해 정보기관에서 들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주고받으며 키우기'를 하고 있는 정황이 역력하다.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한 관계자는 "정부 내에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사과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가 먼저 움직여서 사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북한 군량미 비축규모' 뉴스는, 대북식량지원 재개를 반대하는 쪽에서 처음 흘렸을 개연성이 높다. 이는 최근 남북한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물밑 접촉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관측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북한 군량미 비축규모 정확하게 알 수 있나

북한의 군량비 비축량을 남한 정보당국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실장과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정부에 있을 때 그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파악이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며 "군량미 비축량을 외부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이 투명한 사회라면 이미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안보라인 고위 관계자도 "망해가는 나라라 할지라도 군량미는 비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 3개월 지속설 또는 6개월 지속설 등을 근거로 북한군의 필요 물량을 추정하는 정도지 그 정확한 비축규모를 남측에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는 '100만 톤 이상'이라는 규모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올해 초 통일부는 북한의 식량 수요량은 548만 톤인데 비해 지난해 생산량은 431만 톤에 그쳤다며 북한의 식량 부족량을 117만 톤으로 추산했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올해 북한이 125만 톤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김 원내대표 등의 말대로라면 북한은 한 해 부족량에 가까운 식량을 군량미로 쌓아놓고 있는 셈이다.

북한 농업전문가인 농촌경제연구원의 권태진 박사는 "북한 같은 만성 식량부족국가가 군량미로 100만 톤을 쌓아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군량미를 포함해서 당국이 관리하고 있는 식량 규모는 40만 톤 정도로 추정하는데, 이것도 구체적인 자료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북한 내 시장가격 변동 등 여러 정황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군량미는 쌀과 옥수수"라며 "군량미 100만 톤이라면 그 중 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텐데, 북한이 이 정도 쌀을 쌓아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더불어 100만 톤은 북한 정규군 119만 명이 1일 500g기준으로 4년 7개월간 먹을 수 있는 양인데, 쌀의 질까지 감안할 때 이만한 규모를 보관해 놓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북식량지원 '군부 전용논란' 의미 있나

북한이 대규모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 식량지원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후 대북식량지원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논리다.

그러나 한 북한 농업전문가는 "군량미 전용가능성 등을 감안해 북한에 쌀을 보낼 때는 도정해서 보낸다"며 "도정을 할 경우 일반 보관기간은 6개월이내고 길어도 1년을 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남쪽이 보낸 쌀을 계속 보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군인이 먹든 민간인이 먹든 1년 안에 소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북한도 년 170만 톤 정도, 농사가 잘 될 때는 200만 톤까지도 쌀을 생산하는데 자체 쌀을 돌리면 되지 굳이 남쪽에서 온 쌀을 군량미로 보관하고 그만큼 북한 쌀을 방출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서 "취약계층에 공급되도록 분배투명성을 고려하기는 해야 하지만, 쌀이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남한 쌀이 군부로 들어갔다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더 나아가 "북한 같은 식량배급국가에서는 분배투명성을 확보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남한에서 온 식량을 바로 군부에 주는 것이나, 남한 식량을 먼저 민간에 풀고 대신 민간의 식량을 군으로 넘기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태그:#김무성, #북한 군량비, #식량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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