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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을 농사가 걱정스럽다.
가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여름 내내 신경 쓰이게 했던 고추 농사는 벌써 끝났다.
수박과 참외는 넝쿨을 걷어냈고 아직 줄기가 푸른데도 오이는 열리지 않는다.
늙은 가지나무에 달린 가지는 오그라들어 '붕탱이'가 되었다.

보낼 것은 보내고 치울 것도 치우면서 다른 계절을 맞이할 시간이다.
가을 김장준비를 위해 무, 파, 등 씨앗을 넣고 배추 모종도 옮겨야 한다.
꽃대가 올라온 상추, 꽃이 핀 부추, 때문에 채소 씨앗도 뿌려야 한다.
   
    병에 말라버리 고추.  걷어내는 일도 큰일이다.
▲ 고추 병에 말라버리 고추. 걷어내는 일도 큰일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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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날씨가 부조해주지 않는다.
이제 짧아진 해 때문에 퇴근 후에 텃밭에 들려도 별 일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텃밭을 돌 볼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주말에 내리는 비는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8월 중순 이후 남도에도 쾌청한 날이 별로 없었다.
태풍, 폭우, 그러고도 구름 낀 날씨에 간간히 쏟아졌던 비.

돌아보면 정리할 것들이 눈에 가득한데 주말인 오늘도 하늘만 바라고 놀고 있다.
고추 밭에 멀칭 했던 비닐을 걷어내고, 목초액과 소주를 타서 뿌려 소독하고 퇴비를 뿌리는 일도 땀 없이 되는 일이 아니지만, 그 자리에 시금치 씨앗 넣고 배추 모종 옮기는 일은 시간을 다투는 일인데 마음만 바쁜 것이다.

지난 여름 숙지원의 채소 농사 역시 최악이었다.
폭염에 이은 폭우에 노지의 채소들은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여름 식탁에 상추 몇 잎이라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상추 덕이었다.
지겨웠던 비.
그런데 다시 뜻하지 않는 가을장마라니.

아무래도 금년 가을 농사가 걱정스럽다.
김장 무와 배추 그리고 채소도 심을 시기가 조금 늦었지만 앞으로 날씨만 좋으면 그런 대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숙지원의 주력 작물인 고구마와 야콘이 아무래도 걱정이다. 고구마와 야콘은 뿌리 식물이기에 땅 속의 사정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고구마는 줄기의 세력으로 봐서 별 이상이 없을 것 같은데, 야콘은 전년에 비해 잘못 된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 줄기 끝에 달랑거리는 잎을 보면 마른 것 같지 않은데 땅에 누운 줄기는 까맣게 변해 있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줄기가 튼튼해야 알뿌리도 실한 법인데 지금으로 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만 같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확하기까지 아직 두 달 가량의 시간이 있기에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 달전 옥수수를 베기 전의 야콘밭 일부. 그때까지만해도 야콘은 씩씩했다.
▲ 옥수수와 야콘 한 달전 옥수수를 베기 전의 야콘밭 일부. 그때까지만해도 야콘은 씩씩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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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라고 항상 즐겁고 보람만 따르는 일이 아니다.
벌레와 병충해에 당하는 고추를 바라보는 일도 불편한 일이다.
그래도 벌레와 병은 마음만 먹으면 약으로 잡는 수라도 있지만, 고르지 못한 날씨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노력을 다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날씨가 나쁜 경우에는 그런 말도 무색해지는가 싶다.
도통 진인사(盡人事) 즉 사람이 힘쓸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야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싹을 틔워 모종을 만들고 두둑을 높여 멀칭을 하고 옮겨심기까지의 과정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었으나 땅에 옮긴 후에는 자연의 뜻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찜통날씨에 식물이 기운을 빼앗더니 며칠 비바람에 줄기를 땅바닥에 눕혀 썩히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던가!

   땅 속일은 알 수 없으나 고구마 줄기는 무성하다.
▲ 고구마 밭 땅 속일은 알 수 없으나 고구마 줄기는 무성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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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 의하면 농사에, 물은 부족한 것보다 많은 것이 더 탈이었다. 가물면 스프링클러라도 돌리면 된다지만 굳은 날씨 잦은 비에 녹아버리는 작물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도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3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견딜 수 없다고 했는지 모른다.

오늘도 천둥 번개에 빗줄기는 어찌 그리 굵은지.
비 속에서는 질척이는 땅을 갈 수도 없고 씨앗을 뿌리는 일도 할 수 없다.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요행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텃밭 농사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텃밭농사, #야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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