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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정신없이 인생을 살다 보면 문득 '나는 누구지?', '지금 나는 어디 있는 거지?' 그리고 '무얼 하며 지내는 거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등의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하며, 또 그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우뚝 멈춰 서버릴 때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 뭔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공허함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을 때, 그럴 때 가장 더디지만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떻게든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해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방법은 바로 '길 위에 서는 것'이다. 길을 걷는다. 또 홀로 길을 걷는다. 문명의 혜택을 받고, 더 편한 장치, 더 편한 수단, 더 신속하고 빠른 것이 생겨난 지금 오히려, 다시 원초적인 교통수단, 두 다리를 이용해 이동하는 방법을 갈망한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산티아고 가는 길> 역시 그 방법을 갈망한 어느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성 야고보가 걸었던 그 길을 걷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위해 산티아고로 간 그녀

<산티아고 가는 길> 겉그림.
 <산티아고 가는 길> 겉그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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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서문도 없이 무작정 모든 독자들을 자신의 길 위에 초대한 <산티아고 가는 길>의 저자는 첫 장부터 순례의 길 본론을 시작한다. 걷기도 전에 상점 안에서 만난 아시아인들과 친구가 되고, 길을 걸은 지 4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 길을 끝내는 것이 두렵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녀.

수십 명의 순례자들과 한 방을 쓰고, 밤이면 코골이 교향곡에 시달려야 하면서도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그 길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녀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그 어떤 사람의 이야기도 호탕하게 웃으며 들어줄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글을 읽는 첫줄부터 느껴졌다. 복잡한 서울 생활 역시 척척 해낼 것처럼 보이는 그녀도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산티아고로 떠났던 것이다.

그녀는 우선 신이 주신 자연에 감격한다. 하루에 30~40km를 걸어야 하는 고된 노동 속에서 참된 기쁨을 얻었다. 때론 큰 소리로 노래하고, 뛰면서 걷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그 길을 도저히 멈추고 싶지 않아 배고픔도 참으며 계속 걸어 나가기도 했다. 그것은 도보 여행자들이 곧잘 경험한다는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나는 걷는다>의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선배 순례자라고 표현하며, 그의 글을 인용했다.

바로 이때 신비스러운 연금술이 작용하여 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신, 그 순수한 정신은 광야와 초원 혹은 산꼭대기 위로 날아오른다. 무한함 속에서 보이지도 않고,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모래 바다 속의 모래알이 되는 그때, 우리를 가두고 있던 일상이라는 감옥의 창살이 순식간에 부서져 버린다. 그제야 비로소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순례지 곳곳에서 만난 이들과 만들어간 이야기

또 이 책은 주로 산티아고 순례지 곳곳을 걸으며 만난 사람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목적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튼튼해 보이는 나무지팡이와 자기 몫의 십자가 같은 묵직한 배낭, 그리고 몇 날, 심지어 몇 달 동안 그 길에 나를 맡겨 검게 그을린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누구라도 품에 안고, 진심으로 격려하게 된다. 이미 그 길에서 만난 것 자체로 마음 문은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그녀는 그 길 위에서 사랑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헤어지기도 한다. 도시 속에서 꼭꼭 숨기고만 있었던 갖은 감정의 표현을 분출한다.

산티아고 길에 관한 책은 참 많다. 특히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은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의 제목은 없겠구나. 이 책 제목이 가장 정직했구나, 정직할 수밖에 없을 만큼 깨끗한 맨얼굴이구나.'

비록 순례의 길은 밟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그녀와 함께 호흡하고, 숨을 고르고, 때론 구름 위를 걷는다는 착각도 하고, 내 속에 있는 죄악과 고통과 상처를 꺼내놓고 울기도 했다. 그녀는 자연을 통해, 그리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꼭 안아주었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 책을 통해 나를 지으신 분, 그분은 곧 나였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 은총의 길 위에서 나와 마주하다

유지형 지음, 가톨릭출판사(2010)


태그:#유지형, #산티아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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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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