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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한 외국인이 밤 비행기를 타고 고국 네팔로 쓸쓸히 돌아갔다. 집 앞에 잠복해 있던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붙잡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지 보름만이었다. 그리고 1992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관광비자를 들고 김포공항에 내린 지 17년 8개월만의 일이었다.

 

그의 이름은 미노드 목탄(39). 한국 친구들은 그를 '미누'라고 불렀다. 미누는 신문에 난 88올림픽과 남산타워 기사에 반해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그는 스탑크랙다운 밴드 보컬로, 다문화 강사로, 이주노동자방송 MWTV 대표로,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으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이주민과 한국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미누가 네팔로 돌아간 지 벌써 1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인의 친구' 미누는 네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그에게 한국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지난 29일 미누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의 근황을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고 유쾌해 안심했다. 하지만 네팔에서 잘 지내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했다. 이어 그는 "완전히 적응했다면 거짓말이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추방당한 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지금은 혼란스러워요. 다행히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친구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만약 이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한국에서의 추억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인생의 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냈으니까요. 이젠 마음 속에 묻어둬야죠."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일뿐, 범죄자 아냐"

 

하지만 미누는 아픔을 딛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누는 현재 네팔과 한국을 연결하는 매스미디어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있을 당시 이주노동자방송 MWTV에서 미디어 활동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온 그는 이제 네팔에서 그 활동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스미디어를 만들려 하는 이유는 네팔에 있는 한국인들과 한국에서 돌아온 네팔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또 한국의 매스미디어와 연결해서 네팔과 한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다.

 

"한국의 여행객들에게 네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요. 마찬가지로 네팔에서도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고요. 그래서 한국과 네팔을 잇는 전문 매스미디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치, 문화뿐 아니라 여행, 사회, 노동, 인권 등 전체적으로 네팔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체가 될 겁니다. 매체가 완성되면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최근 G-20를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한국의 상황에 대해 그는 "매우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그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마음 아파요. 미등록이 되고 싶은 이주노동자들은 한 명도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등록이 되는 거죠. 미등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이지 범죄자가 아니란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고용허가제의 부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영화다. 그는 영화 <우리도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어요>를 통해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국 친구들 만나면 소주 한잔 하고 싶다"

 

 

그는 오는 9월 4일 대학로CGV에서 열리는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2008년 열린 제3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던만큼 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그의 영화 <우리도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어요>도 만날 수 있다.

 

미누씨는 "이주노동자영화제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영화제"라며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영화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영화제하면 빨간 레드카펫과 유명한 스타를 생각하지만 이주노동자영화제에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블루카펫이 깔렸으면 좋겠다"며 "그 블루카펫 위를 이주노동자와 유명 스타들이 함께 걷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에 열릴 제6회 이주노동자영화제에는 멋지고 매력적인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찍어 내고 싶어요. 사람들은 이주노동자하면 소수자로만 여기잖아요.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멋지고 매력적인 이주노동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들을 영화에 등장시킨다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 같아요."

 

이어 "지금은 한국사회내 이주민이 2% 가량이지만 앞으로 10%, 20%로 늘어나게 될 텐데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며 존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이주노동자영화제가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우리 서로 똑같은 아름다운 동지/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은걸/ 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 삶을 위하여/ 아무리 이 세상이 우릴 힘들게 하여도 힘차게 더 강하게 가는 거야/ 와! 푸른 하늘 저 넓은 바다. 너무도 자유로워. 우리 모두 다 차별 없는 자유로운 멋진 세상 향해 달리자'

 

스탑크랙다운 1집 앨범에 수록된 '와'의 노랫말에 나오는 차별 없는 자유로운 멋진 세상, 그것은 미누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누를 기억해주시는 사람들에게 감사드려요. 언젠간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하면서 소주 한잔 하고 싶어요."


태그:#미누, #이주노동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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