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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알렸다. 이 책에는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과 지도자 차베스의 투쟁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하지만 항상 뭔가 아쉬웠다. 지도자 차베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층에서 활동하는 베네수엘라의 숨겨진 혁명가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던 게다.

최근 필자는 <베네수엘라 스픽스(VENEZUELA SPEAKS!)>라는 책의 번역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책에는 베네수엘라 풀뿌리 활동가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번역한 내용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생생한 속살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기자 말

만난이: 칸디도 바리오스(Candido Barrios)와 마누엘 멘도사(Manuel Mendoza)
회사이름: 페드로 페레즈 델가도(Pedro Pérez Delgado) 협동조합 / 오스피노(Ospino) 도축장
지역: 포르투게사(Portuguesa) 주 오스피노(Ospino)

2006년 5월 1일, 오스피노 도축장의 노동자들은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증조부이자 마이산타(Maisanta)로 알려진 전설적 인물 페드로 페레즈 델가도(Pedro Pérez Delgado)의 이름을 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현재 150명의 노동자가 회사를 운영한다. 사장이나 경영자는 없다. 조합원들은 그들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라인에서 일한다. 그들은 임금으로 얼마를 받을지 무엇을 할지를 함께 결정한다.

경제위기로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가죽 값이 원가의 10% 밑으로 떨어져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합원인 칸디도 바리오스는 소금에 절여져 엄청나게 쌓여있는 소가죽을 짜증난 얼굴로 쳐다본다. 소가죽은 자동차 회사들이 차의 시트 용도로 구입을 한다. 하지만 국제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소가죽 수요가 바닥을 쳤다.

베네수엘라 오스피노 도축장의 모습
 베네수엘라 오스피노 도축장의 모습
ⓒ P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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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칸디도는 다른 협동조합들이 그러는 것처럼 소가죽을 구매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조합이 도축장 영업권자로 인정을 받아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출을 받고 설비를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3년간 도축장을 운영해 왔지만 정부는 아직 협동조합을 법적인 영업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방 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도축장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영업권을 부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오스피노의 노동자들은 부패하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관료들과 지방 정부의 잇속 때문에 자신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스피노 도축장 노동자들의 상황은 베네수엘라 공장점거운동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공장점거운동은 공식적으로는 카라보보(Carabobo) 주에 있는 베네팔(Venepal)에서 시작돼서, 카라카스(Caracas) 외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로스 테케스(Los Teques) 시에 있는 산업용 밸브 제조회사인 CNV로 이어졌다.

민간 경영자들이 회사를 포기하자 노동자들은 뭉쳐서 정부가 회사들을 국유화하고 정부와 조직된 노동자가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공동경영(co-management)' 방식으로 회사 운영을 재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차베스는 2005년에 사회주의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응답해 그 해 1월에는 베네팔(인베팔(Invepal)로 개칭)을 국유화하고 4월에는 CNV(인베발(Inveval)로 개칭)를 국유화했다.

차베스는 이어서 다른 민간 기업 소유주들에게도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공장을 폐쇄한다면 국유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욱 전진하기 위해서 인베발(Inveval)의 노동자들은 2006년에 공장점거 공동경영 노동자 혁명 전선(FRETECO - Frente Revolucionario de Trabajadores de Empresas en Cogéstion y Ocupadas)을 설립했다.

인베발 노동자들은 의사결정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공동경영 모델을 시험하면서 내부에서 의견충돌을 겪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FRETECO'같은 조직이 자신들의 요구를 밀고 나가는 데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장을 접수하려는 다른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동경영은 실제 그것이 시행되고 있는 공장들에서 다양한 모습을 띠면서 계속 논쟁중이다.

베네수엘라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은 공동경영을 단순히 노동자가 기업의 지분 일부를 소유하는 것으로 보지만, FRETECO는 자신들이 '혁명적 공동경영'이라 부르는 개념을 발전 시키길 원한다. FRETECO는 '혁명적 공동경영'을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공장 운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경로로 본다. 하지만 FRETECO는 기업의 소유권은 국가가 그대로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노동자가 공장을 소유하는 것은 또 다른 자본주의적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스피노 도축장 노동자들은 FRETECO의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FRETECO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도축장이 정부 소유로 남아있기를 원한다. 반면에 회사 운영은 지난 3년간 해 온대로 전적으로 자신들이 운영하기를 바란다. 지방 정부 대표자가 오스피노 노동자들에게 다시 민간 기업과 함께 회사 지분을 공동으로 소유하라는 제안을 강요하지만 오스피노 노동자들은 그 안을 거부한다.

노동자가 점거한 공장들 중 상당수가 부패한 관료들이 공장점거운동의 진정한 잠재력을 억누른다고 얘기하며 여전히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본가가 포기한 자신의 회사들을 국유화해 달라고 계속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런 모든 얘기들 중에서 차베스는 역시 노동자 통제를 주장하는 측의 표현을 사용한다.

차베스는 2009년 5월에 여러 철강 회사들을 국유화한 후에 이 국유화된 공장들은 실질적으로 완전히 노동자들이 통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스피노 도축장의 노동자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원이 없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이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 실험이 실패한다면 베네수엘라에서 경제적 이행과 노동자 통제 실험에 끔찍한 결과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칸디도 바리오스와 마누엘 멘도사

칸디도 : "도축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여기서 일을 했는데요. 당시 이곳은 사실상 버려진 창고였어요. 건물을 고치더니 1998년 11월 9일에 첫 회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오스피노 소(牛)산업 컨소시움(CIGO-Consorcio Industrial Ganadero Ospino)이라는 회사였는데 5년 정도 돌아가다가 당시 오스피노 시장이었던 아밀카르 페레즈가 경영진을 쫓아냈죠. 페레즈는 도축장의 영업권을 탐냈어요. 하지만 그는 공개적으로는 단지 동업자중 한 명이지 회사의 공식 대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사실 페레즈는 얼굴마담을 회사의 공식 대표로 임명해놨죠. 회사 이름은 포르투게사 육가공사(FIPCA - Frigorífico Industrial Portuguesa)였습니다.

회사는 이전 회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계속 착취했습니다. 게다가 사측이 설비들을 유지보수하지 않아서 상황은 더 나빠졌어요. 이전 회사도 우리한테 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도축장에 설비 투자는 했거든요. 고기저장소를 수리한다든지 기계를 정비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FIPCA 때는 기계가 고장 나서 이틀이나 사흘씩 쉰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기업일 때는 임금이 형편없었어요. 도축장 시설은 늘어나고 우리는 더 많이 일했지만 월급은 절대 안 올랐습니다. 계속 협박당했지만 당시에는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이 없었어요. FIPCA 때는 복지 혜택조차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우리가 업무상황을 감시하는 온갖 장비들을 구입했습니다."

칸디도 바리오스 씨
 칸디도 바리오스 씨
ⓒ P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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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 "당시 회사는 죽은 소를 도축했어요. 이건 불법이죠. 죽은 소는 격리해서 전문가들이 검사해야 하거든요. 절대 도축해서는 안돼요!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 소는 한 번 감염되면 주변 소들까지 전부 감염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개의치 않고 죽은 소를 사용했습니다. 회사는 그저 소를 도축해서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 있었죠.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회사에서는 조용히 있으라고,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는 INPSASEL(예방, 보건, 노동안전을 담당하는 국가기구) 안전기준도 어겼습니다."

회사 측과 싸우다

칸디도 : "이 모든 것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어느 순간 나 자신, 직장동료, 내 가족을 보호해야 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조직해서 사측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을 정도로 배운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압니다. 도축장에서 제가 하는 일은 회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저는 소의 머리를 제거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만큼 숙련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관리자 입장에서는 제가 없으면 안 되거든요. 제가 항상 불만을 제기해도 회사에서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느니 제가 계속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회사가 문을 연 지 1년 만에 노조를 만들어서 등록했어요. 무척 힘든 과정이었지요. 우리는 관리자가 사무실로 가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화장실에 모여서 필요한 형식과 법적 서류들에 사인했습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얘기합니다. 제 가족은 작은 가게를 하는데, 우리가 노조 서류를 등록할 때 충분한 자금이 없었는데 제 가족 저금에서 인출해서 사용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여유가 있을 때는 저를 도와주기도 하고요."

마누엘 : "칸디도는 노조 위원장이었습니다. 사측이 칸디도를 사무실로 불러서 그에게 수천 볼리바르를 주려고 했습니다. 사장은 칸디도에게 백지수표를 건네며 얘기했습니다. "여기에 원하는 액수를 적으시오." 사장은 칸디도에게 승용차를 제공하면서 단협을 무력화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칸디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 단협을 지켰습니다."

회사를 접수하다

마누엘 : "이 모든 문제들 때문에 우리는 회사를 접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중에 계약직 노동자가 많았습니다. 5달 동안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관리자가 저와 다른 네 명을 해고하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규직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회사는 우리를 자르고 새로 계약직을 고용했는데요. 우리는 항의하기 위해서 근로감독관을 찾아 갔습니다. 6달 동안 싸워서 마침내 복직 판정을 받았지요.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사측에 복직을 명령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관리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안 됩니다. 복직시킬 수 없어요!" 우리에게는 동지애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정규직을 포함해서 나머지 노동자들이 공장점거를 결의했죠. 2006년 5월 1일에 우리는 모두 함께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먹고 잤지요. 사장이 오더니 우리보고 회사를 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날 이후로 우리는 사장을 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가 사라진 것이죠."

마누엘 멘도사 씨
 마누엘 멘도사 씨
ⓒ P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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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도 : "우리가 회사를 인수해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말했죠. "당신들이 어떻게 저 사람들한테서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 사람들은 돈이 엄청 많다고요!" 특히 한 목장 주인이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에게 우리가 도축장을 운영하게 되면 초청을 할 테니 소를 데리고 여기 와보라고 얘기해줬죠.

나중에 그 목장주인은 와서 이렇게 얘기했죠. "오! 당신들 진짜로 해냈잖아!" 우리는 아무도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노력해서 성공했죠. 만일 우리가 생산을 하지 않았으면 지역 먹거리 체계(local food chain)에 큰 타격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도축장을 접수한 첫 날부터 협동조합 체계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이제껏 근무일에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재정적 어려움

마누엘 : "도축장의 재정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 소가죽 매출에 의존해 왔거든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카시트 용도로 소가죽을 많이 구매합니다. 하지만 세계경제위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이 감소했어요. 전에는 장당 100에서 120볼리바르에 팔았는데요, 지금은 고작 15볼리바르에 팝니다. 완전 똥값이죠. 지금은 아예 팔리지를 않아요. 여기에 2000개가 쌓여 있어요. 사기업이 운영했을 때, 그들은 소가죽으로 엄청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에 투자하지는 않고 자기들 주머니에만 돈을 쑤셔 넣었죠."

칸디도 : "아쉽지만 우리는 도축 서비스만 제공합니다. 재원이 없어서 우리가 직접 판매용으로 소를 살 여력은 없어요. 소가죽은 우리 협동조합에는 단지 미봉책일 뿐이에요. 이 지역 차원에서도 그렇고요. 한 달에 소 600마리를 도축해서 소가죽을 장당 120볼리바르에 팔 때는 증기보일러, 물탱크를 새로 살 수 있었고 울타리도 고치고 건물에 페인트칠도 하고 모터도 수선했죠. 지금은 한 달에 2400마리를 도축하는데도 목구멍에 풀칠하고 있어요."

정부 승인

마누엘 : "우리는 농업토지부나 다른 정부기관에 여러 계획을 제출했어요.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서 우리를 지원해 주지 못하더군요. 베네수엘라에서 대부분의 도축장은 지방정부 소유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사기업이 영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기업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도축장도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FIPCA가 영업권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이전 시장인 아밀카르 페레즈는 이 사업의 이해당사자였기 때문에 우리를 승인해주려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새로운 시장과 주지사가 있는데, 둘 다 베네수엘라 통합 사회주의당 소속입니다. 선거 때 우리가 지지했던 사람들이죠. 그들은 PDVAL(베네수엘라 식품생산분배회사) 조정관을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합작사업을 제안했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PDVAL에서 일하게 되는 거죠. 회사는 국가, 노동자,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소유하고요. 우리는 그들에게 지난 11년간 이 회사는 민간 기업이 운영했는데 거의 아무것도 개선된 것이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우리가 운영할 때만 설비투자와 유지보수가 이뤄졌죠."

칸디도 : "우리는 합법적이기도 하고 비합법적이기도 해요. 합법적인 이유는 우리가 INDEPABIS(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인민의 접근권을 보호하는 기구)의 승인을 받아서 공장을 인수했기 때문인데요. INDEPABIS는 당시에는 INDECU(소비자 교육 및 권익보호 기구)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우리가 공장운영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승인해줬다고 말했습니다. 첫날부터 우리는 책임을 지고 있었죠. 비합법적인 이유는 우리 협동조합이 이 도축장을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영업권이 협동조합에 주어졌다는 법적 문서가 없어서입니다. 하지만 문서 한 장이 우리를 방해할 수는 없어요."

마누엘 : "우리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해요. 돈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도축장은 실질적으로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설비투자에 필요한 대출만 있으면 되요.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가 투자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이 필요해요. 예컨대 지금은 그냥 버리는 소기름으로 비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누를 만들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한 겁니다. 쓰레기를 처리할 운동수단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소득이 늘어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도축장은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정부가 우리에게 지원을 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사회주의 혼합기업

마누엘 :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 혼합기업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 눈으로 직접 본 것들을 다 실패했어요. 운영비용도 감당하지 못했죠. 국가에 또 다른 짐이 되는 거죠. 이런 방식은 피해야 합니다. 라라(Lara) 주의 키보(Quibor)에 있는 도축장에 갔는데 협동조합이 있긴 했지만 이름뿐이었어요. 실제로는 정부 관료들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관리자들은 도축장을 운영해본 경험도 없고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있었죠. 완전히 비효율적이었어요. 노동자들은 돈이 될 만한 소의 부위들을 마구 버리더군요. 이러건 저러건 정부지원금이 나오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겁니다. 도축장 노동자들에게 주인의식이 없었어요. 결국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서 도축장이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이곳에서도 노동자 통제를 배제하려는 것 같아요."

칸디도 :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스스로 벌어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몇 안 되는 협동조합 중 하나입니다. 이날까지 정부기관 중 단 한 군데도 도축장이 100% 가동될 수 있도록 투자해 준 곳이 없었어요. 주지사, 시장, 장관 국회의원들이 우리한테 와서는 정부기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고 합디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그저 말뿐이었죠. 우리한테 약속만 하고는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면 두 세 명의 자본가한테 공장이 쉽게 넘어가는 거죠.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침착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꾸려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계속 이 일을 할 겁니다. 국가 관료들은 우리의 일이 잘 안되기를 바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직접 보고 깨닫는 때가 올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대통령이 그의 주변에 있는 소위 혁명가를 자처하는 무리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게 되겠죠. 공적인 자리에서는 혁명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중에 보면...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모르겠네요. 물론 정부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어요. 모두를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 온 사람들 중에는 단 한명도 제대로 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관료들은 노동자 계급에게 더러운 짓을 하고 있어요. 말로는 이 혁명과정이 무엇보다도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떠들면서 말이죠. 우리는 진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겁니다. 왜냐면 우리 경제가 석유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게사 주에서만 매달 150톤의 고기가 소비됩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이 도축장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거든요. 오스피노는 야노(Llanos) 주로 가는 관문 같은 곳이거든요. 이곳은 소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바리나스(Barinas) 주 바로 옆에 있어요. 도축장은 주요 고속도로에서 50미터 거리에 있습니다. 소를 실어 나르기에도 좋지요. 금방 도착할거예요. 게다가 이 지역의 다른 도축장에 비해 시설이 가장 좋습니다."

협동조합 운영

마누엘 : "처음 시작할 때는 협동조합에 대표와 회계담당자를 두었어요. 그런데 그런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려 들면서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어요. 일은 안하고 지시만 내리고 의사결정에서 조합원들의 참여를 배제했어요. 그래서 그런 자리들을 없앴습니다. 현재 8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공식적 위원회가 있는데 이들은 재무적으로 우리를 대표해서 은행 측에 공식 서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조합원 총회에서 모든 결정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머지 노동자들의 참여 없이 조합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다수결로 결정을 합니다.

여기에는 사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이죠. 우리 스스로가 모든 결정을 합니다. 처음에 우리 머릿속에서 '사장'을 지우고 우리가 이 공장의 운영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각자가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지요. 필요한 물품들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설비의 유지보수비용도 감당해야 합니다. 은행에 돈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경제 상황에 따라서 지불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해야죠. 공장이 사측의 소유일 때는 우리는 이런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는 단지 월급만 받고 작업 일정에 전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죠. 물론 회사는 우리를 착취했죠.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를 시켰습니다. 지금의 이 상황이 만만치는 않지만 멋진 경험입니다.

우리 모두는 임금이 똑같습니다. 보건부에 등록된 수의사는 빼고요. 수의사들은 전문직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습니다. 수의사들이 보건부에 등록되어 있지만 정부가 수의사들에게 임금을 줄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수의사들의 임금뿐만 아니라 수당과 크리스마스 보너스까지 지급해야 합니다.

지역 공동체 돕기

마누엘 : "우리는 단순히 국가에 짐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우리 지역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장주로부터 대여섯 마리의 소를 구입해서 도축한 후에 지역 공동체에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윤을 붙이지 않고 원가에 파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사회적 노동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칸디도 :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에 고기를 더 싸게 사먹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본주의에 맞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성공하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합원들이 집을 살 때 저리로 대출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픈 조합원들이 있었는데 치료에 도움이 되라고 2000 내지 3000볼리바르를 무상으로 지원했습니다. 오스피노의 노인정에 선풍기, 텔레비전, 믹서, 도미노 테이블, 식탁, 500볼리바르 상당의 식품과 안락의자를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정 건물에 페인트칠을 해주고 물탱크를 설치했습니다. 다해서 7500볼리바르 상당의 기부를 한 것입니다. 지역의 모든 학교에 냉장고를 제공했습니다. 전에는 오스피노에 냉장고가 있는 학교가 한 군데도 없었죠. 한 학교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을 지어줬어요. 전에는 학교 뒤편의 구멍을 화장실로 사용했었거든요."

향후 투쟁

칸디도 : "우리 협동조합이 사라질까봐 걱정됩니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겨야 할 테지요. 우리 협동조합이 여기서 생존할 수 없다면 베네수엘라에서 협동조합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협동조합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협동조합에 줄 돈이 없는 상황이 오면 그런 협동조합들은 망할 거예요. 우리는 자력갱생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걸려있고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챙겨줘야 하니까요. 몇몇 노동자들은 민간 기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장이나 도지사의 유일한 관심사이기도 하고요. 시장이나 도지사 입장에서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것보다 몇몇 소유주가 운영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될 테니까요. 마치 생일 케이크를 10명이 나눠먹느냐 50명이 나눠먹느냐 하는 상황과 비슷한 거죠. 시장이나 도지사는 케이크를 10명이 나눠서 더 많이 먹고 싶은 것이고요. 우리는 좀 적더라도 50명이 함께 나눠먹자는 것입니다. 그게 행복하잖아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네수엘라, #협동조합, #공동경영, #자주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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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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