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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입니다. 지난 9일 여정을 중단한 이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경남 하동에서 폭염을 뚫고 피신을 감행한 이후, 태풍 뎬무에 이어 여러 날에 걸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무리 맘을 다잡아도 꾀가 나던 참에 때마침 내린 비가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개도 좀처럼 떠날 맘이 생기지 않더군요. 행복한 여행을 위해선 몸과 맘이 나란히 가야 하는데 둘 중 하나가 앙탈을 부리니 또 기다려줄 수밖에요. 저 사는 방식이 이렇습니다(웃음). 이렇듯 마음이 꼼짝 않을 땐 그 안에 문을 활짝 열고 활력소가 될 만한 것들을 충분히 채워야 합니다. 

지친 여행자를 위한 세 권의 책

마음의 영양분이 된 책들.
 마음의 영양분이 된 책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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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유용한 것 중 하나가 책입니다.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체력 소모가 심하고 하루 대부분을 노상에서 보내는지라 책이나 신문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탓에 지난 스무 날 동안 정서적 갈증 또한 상당했지요. 출발할 때는 틈틈이 지적활동을 병행하자 맘먹었지만 실전에서 다짐대로 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해갈을 위한 책 선정은 즐거움을 최우선했습니다.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마음을 찬찬히 적시며 스며들 정도의 무게와 깊이. 그래서 꺼내든 책이 일본 소설 <돈 없어도 난 우아한게 좋아>, 만화가 허영만과 열세 명의 길벗이 함께 한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끝으로 조효제 교수의 <인권의 풍경>입니다.

전자의 두 권은 시원한 푸른빛 표지와 동병상련 격의 책 제목이 이유였고 조 교수의 책 또한 다소 여유로워진 마음을 지긋이 잡아 당겼습니다. 이 세 권의 책은 기죽지 않고 원하는 삶의 방식을 고수할 것과 집 나가 기꺼이 생고생하게 하는 여행의 쾌감, 여행과 결국 한 길인 삶에서 '무엇을' 보고 실천해야 할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2000원짜리 물병의 힘 

2000원짜리 물통 하나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2000원짜리 물통 하나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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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D-1입니다. 사람이 간사해서 처음 서너 날 쉬어가자 한 것이 벌써 2주가 넘었습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기운을 차린 마음이 며칠 전부터 성화입니다. 

여정을 앞두고 새 물통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오랫동안 가지고 다닌 물통은 지난번 거제도에서 떨어뜨려 깨졌었지요. 여행용 물통은 컵 기능을 할 수 있는 뚜껑이 분리된 것이 좋습니다. 산에서 약수를 마시거나 이따금씩 인스턴트 커피를 타 먹을 때 종이컵을 아낄 수 있거든요.  

이 외에도 2000원짜리 물통 하나면 여름날 하루 평균 0.5리터 생수를 3개 마신다고 가정할 때 매일 3000원 가까운 돈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생수병 용기를 아끼는 데도 일조하니 그 소용이 상당합니다.

건강한 지구살이를 위한 'T-캠페인'

일본에서의 T-캠페인
 일본에서의 T-캠페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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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는 건강한 지구살이를 위한 작은 실천 하나를 더합니다. 일명 'T-캠페인'인데 지난 3월 일본 여행에 앞서 나홀로 여정이 자족적인 데 그치지 않고 보다 가치있을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착안했습니다.

머릿글자 T의 의미는 'Travel(여행)'의 T, 'Tee shirt(티셔츠)'의 T, 'Together(다함께)'의 T입니다. 여행 중에 몸에 걸친 티셔츠를 이용해 전지구적인 인식 변화와 실천이 필요한 메시지들을 전하려는 시도입니다.

3월과 5월 두 차례 일본 방문 때 내건 3가지 슬로건은 '지구를 위해 일회용품과 이별하세요', '어리석은 소비가 빙하와 섬을 삼킨다', '소중한 연인을 위해 장미와 함께 콘돔을'였습니다. 장소가 해외였던 만큼 한국어, 일어, 영어 세 나라 언어를 이용해 천에 컴퓨터 자수를 놓는 방식으로 플래카드를 주문 제작했습니다. 티셔츠나 배낭에 자유자재로 부착하려던 의도였는데 이것이 되레 가독성이 떨어지고 경비 면에서도 부담이 커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시도하려던 것이 잉크젯과 전사지를 이용한 프린팅이었는데 이 방법은 업체마다 개인 주문을 거절해 직접 제작을 위해선 잉크젯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날 고민하던 중에 간단한 방법을 두고 괜한 고민을 하고 있단 자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의도가 특별히 짐을 더하지 않고 티셔츠 한 장으로 메시지를 더하는 것이었으니 실은 방법이란 게 무척 간단했습니다.

좀더 가치있는 길 걷기를 위한 'T-캠페인'
 좀더 가치있는 길 걷기를 위한 'T-캠페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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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여행 중 입을 편안한 티셔츠 2장. 제작비는 유성매직 구입을 위한 현금 천 원이 전부입니다. 이번 T-캠페인의 슬로건은 '자연은 살아있다' 와 '연인을 위해 장미와 함께 콘돔을'입니다. 국내 4대강 사업을 위시한 숱한 환경파괴적인 생활 패턴과 이제 놀랍지도 않은 잇단 영아유기 사건 등에서 이 두 과제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혼자만의 작은 실천이지만 언젠가 좀더 크고 강력한 변화의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선선한 바람 부는 저녁입니다. 한낮 햇볕 아래선 '가을은 무슨...' 싶다가도 이맘때가 되면 여지없이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내일 이 시각이면 어딘가 낯선 길 가운데 또다시 홀로 서 있겠지요. 한편으로 설레고 남은 한편으로 쓸쓸함이 맴돕니다. 이 여정이 끝나는 곳에서 제 마음 안팎에 향기로움이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착한여행, #국내여행, #T-캠페인, #자연은살아있다,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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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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