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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통일세를 제안하더니 급기야 이에 대한 논의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통일부 내에 통일세 추진단을 구성한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 냉각 일변도로만 흘러온 남북관계 속에서 불거져 나온 통일세 논란은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통일세 보다 경제시스템 논의가 우선되어야

 

그리고 아직 정부가 통일세 세원 기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어 간단히 평가하기는 어려우나, 논의의 초점이 통일세 조달 문제로 급격히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어찌됐든 냉랭하기만 했던 통일 관련 논의가 모처럼 기지개를 펴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겠으나 걱정스런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동네에 조그마한 조직 하나를 만들 때에도 그 재정에 대한 운영원칙을 먼저 세우고 난 다음에 어떻게 비용을 조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통일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커녕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거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통일세라니. 아무래도 그 순서가 한참 뒤바뀐 듯하다.

 

게다가 대통령이 비록 "타산지석"이라고는 표현했으나, 이처럼 시스템이나 제도에 대한 논의를 먼저 제시하지 않은 이유가, 통일과정에서 과도한 통일비용을 양산하고 아직도 구 동서독인들 간 갈등과 이로 인한 온갖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독일의 통일과정을 혹시 무비판적으로 전제했기 때문이라면, 남북한 분단 상황이 여러 측면에서 구 동서독보다 심각하면 심각했지 나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부 입장에서 보아도 자칫 성급한 접근은 별다른 결과물 없이 괜한 '아마추어리즘' 등의 비판만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통일세라는 비용문제에 앞서 통일국가의 경제시스템이나 제도 등에 대한 진지한 숙의(熟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공정한 사회의 가장 큰 적은 토지불로소득

 

그렇다면 논의의 시발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통일세와 함께 공정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는데 여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듯싶다.

 

공정성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이며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하고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언급했다.

 

공정성에 대한 구체적 견해는 국민 개개인마다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으나 적어도 '출발과 과정에서의 기회의 공평' 정도의 내용에는 상식에 부합하고자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사회, 경제적으로 공정성 기준에 가장 위배되거나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일단 이것부터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진대 불로소득은 이 같은 공정성 기준에 철저히 위배된다.

 

특히,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어느 정도 사회적 순기능도 엄연히 존재하는 여타 불로소득과는 달리 토지불로소득은 순기능이 전혀 없을 뿐더러 그 악영향의 범위가 국가, 심지어 세계경제에까지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점은 최근까지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 온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렇다면 불로소득, 특히 토지불로소득의 제거가 공정한 사회를 세우기 위한 기초 중에 기초라고 할 것이다.

 

토지불로소득 환수의 최적 수단은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여 문제를 제거하는 여러 방법 중 경제의 효율을 저하시키지 않는 최선의 방법으로 알려진 것이 보유세(특히 토지보유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경제시스템의 측면에서 공정성의 가장 큰 적인 토지불로소득을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바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은 토지와 자연자원이 모든 사람의 공공재산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그것을 보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토지가치에 비례해 사용료를 공공에 납부하게 하고, 정부의 사용료 수입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하는 토지공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사유지에 적용하는 방안이 패키지형 세제개혁인데, 패키지형 세제개혁은 토지보유세를 토지임대료 수준까지 강화하고 이에 비례하여 다른 세금은 감면하는 방식이다. 반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국공유지에 적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토지공공임대제라고 한다.

 

따라서 토지공공임대제는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는 대신, 토지의 사용은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제도로써 토지 임차인은 임대 기간 중에는 자신의 토지 사용권을 자유롭게 처분하되 공공이든 민간이든, 토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사용료를 국가에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과 저리소액대부로 통일국가 경제시스템의 기초를 세워야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예상했겠지만,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통일국가 경제시스템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면 남한 사유지에는 패키지형 세제개혁을, 그리고 남한 국공유지와 북한에는 토지공공임대제를 적용하면 기존의 체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통합된 경제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보유세가 효율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실은 효율성을 증진시키면서), 경제의 형평을 살리는 최상의(적어도 가장 덜 나쁜) 세금임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임을 감안할 때 남북한에 공히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적용하게 되면 우선 경제문제의 가장 핵심 부분에 대한 기초를 효율적이고도 공평한 방식으로 다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한에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적용할 경우 훨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통일세의 세원도 경제의 생산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장 자연스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임 또한 쉽게 예측 가능하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에 더하여 통일과정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해서는 마련된 재원을 통한 빈민지원과 더불어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이라고 부르는 저리소액대부 방안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적용방안에 있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비용측면의 효율성 등을 감안할 때 무작정 신규기관을 설립하기 보다는 미소금융, 햇살론 등 기존의 소액 대부 제도를 활용하고 더불어 기존 다양한 유인을 통해 금융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대상대비 규모의 확대, 지속적인 시스템 유지 및 확충, 까다로운 대출조건 완화를 통한 수혜대상 확대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가 충분히 수정보완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아울러 필요시 신규기관을 확충해 나갈 수도 있겠다.

 

같은 방법으로 북한지역의 경우에도 일괄로 신규 소액대부기관을 설립하는 방식보다는 농촌지역에 이미 설립되어 있는 협동농장신용부 등의 금융조직을 적절히 수정, 활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시 신규로 설립해 나가는 방안이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저리소액대부의 경우에도 그 재원마련에 있어서 통일세와 마찬가지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도움을 적잖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처럼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으로 틀 잡고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자에 대하여 직접 지원과 더불어 저리소액대부 등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금융의 기초를 세울 때 비로소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기독교 언론인 뉴스앤조이와 뉴스파워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일세, #공정, #보유세, #토지공개념, #마이크로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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