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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에 올라가 있는 환경운동가 세명의 식사 모습. 50g의 선식과 50g의 물이 한끼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에 올라가 있는 환경운동가 세명의 식사 모습. 50g의 선식과 50g의 물이 한끼다.
ⓒ 염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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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28일째. 한 달이 코앞이다. 7월 말 남한강 한가운데 솟아 있는 20m 높이의 콘크리트 기둥에 올라 일 년 가운데 가장 더운 시기를 고스란히 다 보냈다.

4대강 사업 중단과 국회 검증기구 구성 등을 요구하며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이포 바벨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염형철·박평수·장동빈, 세 명의 환경운동가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밤새 경찰 측에서 비추는 서치라이트에 잠 못 이루고 며칠째 선식만 먹고 있다는 소식에 주위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농성 27일째 하루 동안의 일기는 이포 바벨탑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는 영양 부족으로 현기증을 느끼고 준설선 소리에 괴롭힘을 당하며 공사 관계자의 태도에 자존심 상하는 일상을 담담하게 적었지만, 읽는 이의 마음은 편치 않다. 염 처장은 염 처장대로 농성이 한 달 가까이 돼 가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음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염 처장이 <오마이뉴스>에 일기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올라갈 때 가져간 수동전등을 개조해 휴대전화를 충전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농성자들은 무전기 배터리도 제공되지 않아 1주일째 외부와 모든 교신이 끊긴 상태였다. 다음은 염 처장이 보내온 '이포 바벨탑 일기' 전문이다.... 편집자 말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의 옥탑방. 세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지내고 있는 움막은 간디와 소로우의 움막처럼 단촐하고 간소하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의 옥탑방. 세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지내고 있는 움막은 간디와 소로우의 움막처럼 단촐하고 간소하다.
ⓒ 염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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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눈 침침...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17일 오전 5시 35분. 안개 자욱한 촉촉한 날씨 속에 잠을 깼다. 뚝 떨어진 기온에 한기를 느낀다.

6시 10분. 아침 생각을 정리하느라 몇 자 끄적이는 중에 동료들이 일어나 앉았다. 살금살금 움직인다고 했는데도 조심성이 부족했다. 요가 동작 몇 개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찌뿌듯한 몸이 늘어나 제자리를 찾아가지만 습하고 흐린 날씨 탓에 기분은 밝지 않다.

6시 30분. 인부들의 아침 체조와 운동이 시작됐다.

7시. 강 건너 소수력 발전소 현장에는 57~58명이, 천서리 쪽 공사장 입구에는 26~27명이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인원 중 가장 많다. 아마 강물이 불어 이틀 동안 하지 못했던 공사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경버스 3대, 경찰차량 3대(버스, 25인승, 봉고차), 소방차 1대, 앰뷸런스 1대. 경찰의 대응은 점차 느슨해지는 것 같다. 강제진압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곳곳의 거미줄을 걷는다. 사방에 설치된 서치라이트 탓에 날파리, 날도래, 강도래 등이 날아들면서 거미의 번식이 놀랍다. 거미줄을 걷어낼 때마다 고민이 생긴다. 이놈들을 어찌해야 하나. 결국 주변으로 치워내는 것이 다지만, 개중에는 치명상을 입는 놈도 있다.

아침은 역시 선식이다. 45번째. 이것으로 섭취할 수 있는 열량은 성인 필요량의 1/5 수준이며 이제는 물려서 토할 것 같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환경운동가들이 자가 발전 전등을 개조해 만든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환경운동가들이 자가 발전 전등을 개조해 만든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
ⓒ 염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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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40분. 남아 있는 선식 2.5kg, 생수 14리터, 연료 1통 반. 연료로는 세 차례쯤 물을 끓일 수 있으니, 물은 19리터. 4~5일치 식수와 선식이 남아 있는 셈이다.

건강상태는 양호하다. 세 명 모두 현기증을 많이 느끼고, 두 분은 눈이 침침하다고 한다. 의사말로는 영양부족의 결과다. 몸무게는 5~10kg 정도 빠진 것 같다. 홍수로 무너진 공사진입로를 포클레인이 다시 쌓는다. 시커먼 흙탕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묻혀있던 부직포와 비닐 등은 다 떠내려 보낸다. 불법투기와 매립이 분명하다.

8시. 1km 하류의 준설선이 일찍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물이 제대로 빠지기 전인 어제 오후에도 일을 시작했고, 강 절반까지 파고들어가는 작업로가 잠기기 전까지도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이곳 공정 중에 제일 맹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다. 하천의 생태를 급속하게 파괴하는 저 사업이 누구를 위해 위급하게 시행되는지 알 수 없다.

8시 30분.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는 현수막을 고쳐 달았다. 시간이 흘러 헤지고 닳은 곳이 여럿이다.

9시 30분. 지원상황실이 설치되고 있다. 7명의 활동가들이 분주히 오가며 천막 손수건으로 이루어진 현수막 등을 내걸고 있다. 지원상황실이 있는 장승공원에 찬성 측에서 밤 10시부터 집회하는 것으로 신고를 내놓은 탓에 매일 아침이면 상황실을 꾸리고 저녁이면 걷고 하는 '시지프스의 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저녁 드르렁 거리며 다리를 넘었던 탱크들이 하류 둔치에서 밤을 나는 훈련(2010 을지연습)을 했던 모양이다. 환경위기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도 안보일 텐데, 저들은 준설선 곁에서 곧 사라질 모래밭 위에서 야영과 은폐 훈련을 하고 있다.

9시 40분. 입구 쪽 공사장에 최대의 대형 크레인이 동원됐다. 그동안 1대가 작업을 해왔었는데, 엄청나게 속도를 올리는 모양이다.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간다'는 식으로 무슨 강짜를 부리는 느낌이다. 반대편 수력발전소 쪽에도 두 대의 크레인이 작업 중이다.

10시. 상황실에서 앰프를 통해 아침인사를 전해온다. 인천환경연합 이기영 실장이 오늘의 대장인 듯하고, 주요 언론보도 내용도 소개해 준다. 한숙영 간사가 골랐다는 음악도 틀어준다. 하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들리지 않는데, 그래도 동료들의 정성이 맘에 와 닿는다.

10시 30분. 며칠 만에 햇볕이 제대로 난다. 그동안 더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모처럼 빨래를 널 수 있는 기회다.

11시. 이포댐 상판 다리에 3명의 경찰이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고 있다. 신문을 읽거나 잡담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가까이 오지도 않고 경계심이 가득하더니, 이제 안부도 묻고 걱정도 해준다. 그럴 때에 이곳이 여주고 시골이라는 생각을 한다.

낮 12시. 점심 역시 변화 없다. 선식, 소금, 물. 먹는 것의 즐거움을 따지지 않기로 한 환경운동가이지만 그래도 조금 물린다.


수동전등을 개조해 휴대폰 충전기를 돌리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모습. 수동식 플래시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장동빈 수원환경연합 사무국장.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모습. 수동식 플래시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장동빈 수원환경연합 사무국장.
ⓒ 염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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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우'하는 소리가 쉬지 않는다. 강바닥을 긁는 저돌적인 준설선의 소음인데, 이곳에서 가장 귀에 거슬리는 것이다.

2시. 찬성 주민들의 선무방송이 시작됐다. 오늘은 20여 일 동안 반복했던 내용을 조금 새롭게 녹음한 것인데,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1535년 만에 생겨난 절호의 발전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이고, 서울의 한강고수부지보다 더 친환경적인 개발로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외지인들은, 그리고 요즘의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단하고 물러가라는 내용이다. 좀 더 진지하고 합리적인 주장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2시 30분. 그늘을 찾아 낮잠을 잔다. 체력소모를 줄이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3시 30분. 모처럼 햇살이 따가운데, 확실히 변한 것은 8월 초의 끈적거리는 무더위가 아니라 그늘로 피하면 견딜 만한 가을 햇살이다. 계절이 벌써 이만큼 변한 거다. 수동전등을 개조한 휴대폰 충전기를 돌린다. 내부와 외부에 기고할 내용을 보내기 위해서 답답한 수고를 해야 한다. 10분을 쓰기 위해 1시간을 돌린다.

6시. 대림산업이 우리에 대한 인권을 유린한 것을 비판한 기자회견이 있었다는 문자를 확인했다. 그들로서도 답답할 테지만, 최소의 인정과 연민도 없는 대림 측에 미움이 쌓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반 그릇의 선식가루, 반 그릇의 물. 이들을 이긴 반 그릇의 선식을 먹는다. 47번째 식이다.

6시 30분. 움막이 아닌 그늘로 옮겨 외식을 했다. 식사 중에 때 이른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다. 환경운동연합 기관지 <함께 사는 길>에 원고를 보냈다. 세 사람의 심정을 담은 것인데, 너무 나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수정해서 다시 불러줬다. 상황실 활동가들이 타이핑해서 보내게 될 것이다.

7시 30분. 27번째 촛불집회를 했다. 8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상황실을 보며 우리도 30분 넘게 서 있었다. 이기영 실장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다 실패했고, 거듭 다른 노래로 시도했다 성공하지 못했다. 늘 용기를 주려는 마음에 고맙다. 방문자 없이 진행하기로는 두 번째 촛불집회인 것 같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위 간이화장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강에 버리지 않습니다. 잘 모아놓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기 여주 이포바벨탑(이포보) 위 간이화장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강에 버리지 않습니다. 잘 모아놓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 염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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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날씨가 추워져서 집을 개조해야 할지, 비닐을 더 쳐야 할지 논의가 있었다.

9시. 대림산업 현장소장이 올라와 우리 단체의 본사 항의방문 등으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물 6리터를 올려 보냈다.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하지만, 크게 선심 쓰는 듯한 태도에 자존심이 상한다.

10시 30분. 아내와 아이들과 통화했다. 아이들은 학생회 수련회를 다녀왔다고 한다. 집청소와 공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며 아빠의 건강을 걱정해 준다. 어려움 속에서 딸들이 부쩍 큰 것 같다. 딸에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해줬다.

11시. 이제 취침이다.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대중은 없지만,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외부 방문자가 전혀 없었던 날은 오늘이 처음이다(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다.) 문득 협상을 위해서 우리 쪽은 소외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환경연합이 전국적인 비상활동에 돌입했다지만, 시민사회의 연대가 더디고 야당들이 주춤거리는 듯보여 조바심이 난다. 이러다가 상황이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태그:#4대강 고공농성, #4대강 사업, #이포바벨탑,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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