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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역사 탐방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클럽 회원들과 함께 중국 실크로드 역사탐방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는 약 160만㎢의 면적으로 중국 전체의 1/6을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중국 최대의 분지, 최고의 고원, 대사막, 대초원, 대고비, 대삼림은 웅대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황금과 중국의 비단을 바꾸고 불교와 이슬람문화를 전한 동서문물 교류의 접합점입니다. 신장의 실크로드는 사막과 낙타로만 여겨지던 과거 버려진 길이 아닌 천태만상의 자연환경과 다채로운 민속, 유전과 가스로 이어지는 막대한 지하자원을 가진 성장잠재력이 무궁한 곳입니다.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의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7박 9일간의 여행을 연재 중 입니다. <기자주>

 

 

중국인들이 줄여서 부르는 이름 카스는 원래 카슈가르로서 '각양각색의 집'이란 의미이다.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카스는 중국의 한 도시라기보다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도시에 중국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한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곳이다. 도심 중앙에 발달된 쇼핑거리, 위락시설과 구시가지의 전통 가옥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카스를 방문해보면 최신 외화를 상영하는 극장, 외국 패스트푸드점 등이 활발히 영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 당국도 '대형무역', 대형관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재개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위구르족 -약소민족의 서러움

 

이 지역 대부분의 위구르족은 중국어를 잘하지 못한다. 때문에 얼마 전부터는 위구르 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한족 기업으로 인해 중국어를 잘 배워야 취직도 할 수 있고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위구르 청년들이 갖는 안타까움일 수 있다.

 

위구르족은 원래 유목민이었지만 같은 기마민족과의 전쟁에서 패해 뿔뿔이 흩어졌고 몽골, 티무르제국, 청나라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갈 곳을 잃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정착도 유목도 아닌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행동의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가고 싶다고 아무 데나 갈 수는 없다.

 

위구르인들의 소박한 생활을 볼 수 있는 구시가지

 

카스 중심가에는 허름한 모습의 위구르 전통가옥이 있다. 카스고성이라고도 하며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이 거주하고 있다. 흙으로 만든 허름한 가옥 사이에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뻗어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고 하지만 아직도 이곳에 남아 옛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곳 골목은 미로라는 게 실감이 난다. 조선족 가이드가 "사람을 놓치지 말고 따라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어요"하며 당부해 놓고, 우리가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에 길을 잃어 버렸다. 그가 10분 후 뛰어와 땀을 닦으며 하는 말, "죄송합니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찾는 비밀은 길에 놓인 직사각형과 정육각형 벽돌 속에 있다. 직사각형 벽돌을 따라가면 막다른 골목이고 정육각형 벽돌을 따라가면 외부로 통하는 길이다. 가이드가 문이 열려있는 허름한 집에 들렀다. 500년 됐다는 이 집은 4가구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6평쯤 되는 마당을 공유하고 1층에 두 집, 2층에 두 집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1층 부엌위에는 마늘이 걸려 있었다.

 

마침 옆에 있던 현지 가이드에게 우리의 마늘 식용 습관에 대해 이야기 하고 문을 열어 놓는 것과 닫는 것의 의미에 물었다.

 

"위구르 주민들은 마늘을 삶아서 갈아 먹어요. 건강에 좋고, 체력도 향상된다고 믿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집안에 손님이 왔으며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문을 반만 열어 놓으면 집에 남자가 있다는 의미로 허락을 맡고 들어와도 된다는 의미인데 반해, 문을 완전히 닫고 잠갔으면 여자만 있거나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위구르족 민가는 집 처마 ․ 처마 ․ 기둥 ․ 창문에 여러 가지 도안을 조각하거나 그려 넣는 것이 특징이다. 가옥 내 벽에 파여 들어간 벽감에는 여러 가지 물품과 공예품을 진열하며 벽감 사면은 조각과 그림으로 벽면을 눈부시게 장식한다. 시골 민가에는 대체로 자체 정원이 있는데 정원에는 포도나무 넝쿨이나 과목, 꽃 등을 재배하여 고요하고 전원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드가르 모스크 - 신장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카슈가르는 신장 이슬람의 요람이고도 말할 수 있다. 10세기경부터 이곳을  통해 이슬람이 신장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신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에티갈 마스지드가 있어 '제2의 메카'로 불린다.

 

1442년에 건축되었고 그 뒤 몇 번의 수리를 거쳐 1872년 진행된 대규모 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사원은 정문 건물과 교정·경당·예배당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슬람 예배는 하루 다섯 차례 이뤄진다. 일출·정오·하오·일몰·심야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한다. 이때가 되면 사원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평일에만 2~3천명이 모이고 이들의 안식일인 금요일에는 무려 6천 명 가량이 모인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용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의 중요한 절기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모스크 구경을 마친 일행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상점과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현장 구경에 나섰다. 신장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낭'과 '나이차'다. 낭은 위구르족·카자흐족·타지커족의 일상생활 주식이다. 작은 것은 10㎝에서 커다란 세숫대야만한 것도 있다. 낭은 면과 첨가제 성분, 모양, 굽는 방법에 따라 이름 또한 여러 가지이다.

 

'나이차'는 신장 여러 민족, 특히 카자흐족 ․ 멍구족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이다. 천산 북쪽의 광활한 초원에서나 남쪽 타림 분지의 오아시스에서나  유목민의 파오에서 시골 농가에 이르기까지 진한 나이차로 손님을 극진히 모신다.

 

한참을 걸어가다 묘하게 생긴 호박을 보았다. 중앙에 10㎝의 꼭지 부분과 나머지 둘레의 모양새와 색깔이 전혀 다르다. 처음에는 다른 종류의 호박을 접붙인 줄 알았다.

 

각 지역에는 고유한 문화와 문명이 있다. 하지만 이 지역도 개선해야할 부분이 있다. 길거리 상가에서 양 고기를 고리에 통째 꿰어 매달아 놓은 채 판다. 뜨거운 날씨에 금방 부패하지 않을까?

 

내 어릴 적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절이 변했고 여기도 냉장고가 보급됐으니 개선해야할 걸로 보인다.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문화에 간섭한다고 할 줄 모르나, 모든 생물이 죽으면 상한다는 건 보편적 자연 현상이다. 심지어 트럭 화물칸에 잡은 양을 가득 싣고 달리는 걸 봤다.

 

아파크 호자의 가족묘 - 향비묘

 

청 건륭황제의 위구르족 후궁이었던 향비의 묘가 있는 아파크 호자 묘소는 이슬람교 백산파의 수장 아파크 호자와 그의 가족들이 묻혀있다. 전형적인 이슬람식 고묘 건축예술을 따랐으며 1640년 전후에 창건되었다.

 

높이 40m에 아름다운 모자이크 첨탑과 원형 아치지붕이 궁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크게 문루·소예배실·대예배실·교경당·주묘실 등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아치형의 돔 위에는 정교한 모양의 탑루가 있으며 탑루의 꼭대기에는 금빛 초승달이 도금되어 영롱한 빛을 반짝이며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밖에 나와 사진을 보니 정말 예쁘다. 그녀는 몸에서 향내가 난다고 해서 향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향비(1734~?)에 관한 연표를 보면 18세기 시대 사람인데 당시 사진이 있었을까? 그리고 몸에서 향내 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글쎄다. 윤색한 것 같기도 하도, 어떤 목적하에 의도적으로 영웅시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 여행의 재미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

 

카스의 전통 재래시장 - 대바자르

 

바자르는 '시장'이란 의미로 원래는 투만허다리 주변 500m에 늘어선 재래시장을 일컬었다. 신장 지역 사람이 한꺼번에 장보러 왔을까?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사람이 치인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좀 찍으려도 사람이 걸려  찍을 수 없다. 그래도 카메라 앵글에 잡힌 사람들은 웃어준다. 이게 여행의 맛! 사람 사는 맛이다.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다. 초원에 사는 순수한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호주에 사는 친척은 한국에 올 때마다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호주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웃어준다고 한다. 서울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습관적으로 웃었더니 한 남자가 '미친X' 취급하며 불쾌한 표정을 하고 쏘아보며 가더란다. 우리도 남을 대할 때 웃자. 아니면 편한 얼굴로 대하자.

 

5천여 개에 달하는 각 점포에는 신장 지구 남자들이 차고 다닌다는 칼, 카페트, 주석세공품, 전통 옷, 과일, 바늘과 실, 전갈, 거북과 독사 말린 것 등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오죽 했으면 '중국-서아시아 국제무역시장'이니 '중국- 아시아 물자박람회'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물건 값? 50%는 깎아야 한다. 아내는 조그만 선물용 주석세공품을 다섯 번 만에 반값에 샀다. 흥정하다 가려면 잡고, 돌아서면 다시 붙잡고. 흥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길을 잃어 본적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공간 감각은 괜찮은지 길에 관한 한 자신 있었는데 일행이 기다리는 버스 주위를 네 번이나 돌았어도 못 찾아 눈총을 받았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사람에 치어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실크로드여행! 언젠가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보고 "우리 한국 6~70년대와 같다"는 여행기를 읽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가 실크로드의 잠재력에 받은 충격! 순전히 우리 것으로만 알고 있던 탈춤이 이역만리 쿠차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 느낀  문화의 보편성과 전파성에 대한 생각.

 

좁은 세상에서 '우리 것이 최고!'라고만 주장하는 국수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서 세계와 함께 가자! 자! 이제 실크로드 유목민에서 다시 일상으로 간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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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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