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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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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동산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어찌보면 사람들은 평생 번듯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자산을 불리려면 부동산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기존의 부동산에 대한 관념들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더불어 막연히 계속되리라 믿었던 부동산 신화가 깨지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문제들과 갈등들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집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중산층'하면 서울 등 수도권에 괜찮은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지고 있는 가정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중산층의 범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상당히 힘든 한국 사회에서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면 '이제 나도 중산층이구나'하는 인식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중산층에 대한 관념도 바뀌고 있다. 집이 있어도 가난한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는 말 그대로 집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2000년대 들어 아파트 가격이 치솟자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집을 장만하지 않으면 영영 집을 장만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빚을 내서 고가의 아파트를 구매했다. 은행 이자 부담이 걱정이었지만 집값이 지금처럼만 오르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8년 집값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은 자산 가치 하락과 대출이자 부담에 허덕이게 되었다. 특히 새로운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이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여 대출금을 갚아나가려 했던 가구들은 부동산거래가 끊겨 이전에 살던 집을 팔지 못하면서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서 <하우스 푸어>에 따르면 이러한 '하우스 푸어'는 수도권에 95만 가구, 전국적으로 198만 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대체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이자 갚는데 탕진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비 등 여타의 다른 생활비 지출을 고려하면 가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지경이다. 더 이상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존의 중산층의 삶을 그려볼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하우스 푸어'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물가부담이 증가하며 최저수준의 기준금리는 정상화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부동산 시장은 어떤 특별한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 불패신화에 기대어 집을 산 것이 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 한국의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온 결과는 가계 빚의 급등으로 나타났다. 2000년 1분기 222조2259억 원에 그쳤던 가계 신용은 2010년 1분기 739조630억 원으로 10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했다. 이중 주택담보 대출은 2010년 1분기 약 333조4431억 원으로 2009년 말에 비해 약4조6000억 원이 증가했다.

지금도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또한 개인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2004년 1.14배에서 2009년에는 1.43배로 증가했다. 소득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가계부채의 급증은 단순히 '부채문제로 몇몇 가구들이 힘들구나'하는 수준을 넘어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대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좌초위기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힐스테이트' 아파트 공사 현장.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힐스테이트' 아파트 공사 현장.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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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침체의 여파는 비단 주택시장 뿐만 아니라 각종 대규모 개발 사업에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대규모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줄줄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돈을 빌릴 때 땅이나 건물 등의 구체적인 담보 없이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사업성과를 담보로 대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건설 시행사는 당장의 큰 부담없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동안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업만 펼치면 큰 수익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주었기에 사업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대규모 건설 사업이 곳곳에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향후 수익이 불투명해지고 이에 따라 금융권으로 부터의 추가적인 자금유입이 어려워져 대형 건설 사업이 좌초되기 일보직전으로 몰린 것이다. 

8월 6일 2조 원대의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복합물류터미널사업이 민간 PF사업으론 사상 처음으로 파산신청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총사업비 31조 원 규모의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사업으로 불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토지 중도금을 마련하지 못해 좌초위기에 처해있고, 5조 원 규모의 '판교 알파돔시티'사업 역시 착공은커녕 땅값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인천 송도 인천타워, 옛 인천대 주변 재개발사업인 도화지구 PF사업, 경기 고양 일산 한류우드2구역 PF사업 등은 사실상 좌초한 상태다.

지난 10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공모형 PF사업은 모두 36건으로 사업 규모만 120조 원에 달한다. 이 중 7건은 유찰 또는 계약 해지됐고, 24건은 사업이 일시 중단되거나 사업협약을 변경하는 등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추진 중인 사업은 5건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국민일보> 8월10일자)

이렇게 대형 건설 사업들이 좌초 되면 거기에 돈을 투자한 주체들은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고, 주변 부동산 시장의 사정은 더욱 얼어붙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한 투자자들간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자금을 지원한 금융권의 연쇄부실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재 금융권에서 추산하는 은행권의 PF대출 잔액은 약 48조 원이다. 매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지만 연체율이 2008년 말 1.07%에서 2010년 3월 2.9%로 높아지고 있어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서울경제> 8월9일자) 

LH공사 부실과 사업 재검토 

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여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고통으로도 전이되는 모습이다. 무리한 공사로 천문학적 빚더미(부채 118조 원, 하루 이자만 100억 원에 육박)에 올라앉은 LH공사는 최근 전국 138개 신규사업 가운데 120여개 사업에 대해 대대적인 사업조정에 나섰다. 그에 따라 지역의 뉴타운 사업 등이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LH공사와 지자체 및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도 커져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주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서 정확한 타당성 분석보다는 난개발 식의 무리한 사업을 펼쳐 온 데다 LH공사가 보유한 토지, 주택 등이 팔리지 않으면서 자금난이 가중된 것이다. 향후 수익을 내어 자금을 회수하기도 어려운 사정이다. LH의 미분양 토지 및 주택규모는 모두 23조6800억 원에 달한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공공택지 등 팔지 못한 토지만 20조6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이데일리> 8월 11일자). 

결국 이러한 LH공사의 사업조정은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뉴타운 등 주변 지역 개발 소식으로 치솟았던 집값·땅값이 폭락할 것이고, 개발을 기대하며 은행 등에서 빌려 쓴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게다가 LH공사의 사업 가운데는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 서민들의 주거 여건 개선을 위한 사실상의 공익사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지역은 민간 건설사에 맡겼을 경우 개발되기 힘든 지역으로 서민들에게 까지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문제의 근원은 부동산 불패 신화와 거품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한 부동산의 모습.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한 부동산의 모습.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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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경제적 문제점들과 사회적 갈등들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당장의 부동산 시장 침체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따지자면 '부동산 불패 신화', '부동산 거품'에 기대어 모순적으로 성장해온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하우스 푸어' 문제의 경우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의 개인적 문제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불패 신화가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집을 사게 부추긴 측면 역시 크다. 집을 사는 것 자체가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현실, 어떻게든 집을 사야지만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게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현실이 근본적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부동산에 대한 환상이 지금 깨어지면서 고통 받는 계층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나타나 이제는 한국경제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형 건설 사업들이 좌초위기에 처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부동산 시장 침체도 침체지만 부동산 거품에 기댄 무리한 개발 사업이 근본적 문제다. 이러한 사업들은 추진 당시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작된 사업들이었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급급한 정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부동산담보대출과 PF대출로 손쉽게 돈을 벌었던 금융회사, 개발만 하면 막대한 이윤을 획득했던 건설사, 이를 보고 몰려들었던 투기꾼들이 화를 키웠다. LH 공사가 빚더미에 앉게 된 데에도 부동산 환상에 따른 무리한 재개발·재건축 사업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부동산 신화와 거품에 기대어 운용되어오던 한국경제의 근본적 문제점들이 현재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환상에서 깨어나 새로운 준비를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두고 하루빨리 DTI규제 등을 풀어 부동산 시장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도 여전히 DTI규제 완화 카드를 접지 않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선뜻 규제완화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DTI문제뿐만 아니라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 등 어떻게든 규제를 완화해서 부동산 시장을 띄워 보려는데 현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남지 않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하락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정책 효과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언제까지 가계에 빚을 권하며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 가야 하는가? 빚을 더 내서 빚을 갚는 식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신의 소득 50, 60% 이상을 부동산 대출 갚는데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건전한 국가 경제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지금과 같은 문제들이 표출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한국경제가 부동산 거품에 의존해 지탱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경고다. 그러하기에 문제해결의 초점도 단기적으로 어떤 부양책·구제책을 마련할지 보다는 한국경제의 근원적 구조를 되돌아보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맞추어져야 한다. 

부동산 신화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시기다. '부동산 공화국'을 허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하락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설령 억지로 하락세를 잡아놓는다 해도 이전과 같은 부동산 시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우스 푸어' 등의 사회적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이 불거질 것이다. 지금껏 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건설자본과 토건족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단기적 경기부양에만 집착해서는 결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규제완화 등의 방법으로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려 하는 것은 조만간 터질 폭탄을 여기서 저리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에 따른 후과는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민권연구소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하우스푸어, #PF, #부동산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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