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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8일 밤 늦은 시각, KBS 별관 근처 술집에서 만난 박승규 당시 노조위원장은 내게 "정 사장은 KBS를 사랑하지 않는군요"라고 이야기했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밤이 되자 폭우가 쏟아졌다.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밤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아파트 입구로 누군가가 찾아 와 벨을 눌렀다.

아내가 실내 모니터를 통해 누구시냐고 물었다. "KBS 후배"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 낯선 일이었다. 내 집을 찾아오는 KBS 직원은 없었던 터다. 아내가 "KBS 후배 누구시냐"고 다시 묻자 "박선규"라고 답했다.

엠시 자리를 간절하게 원했던 박선규 기자

박선규 청와대 전 대변인
 박선규 청와대 전 대변인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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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규. 그는 나의 사장 재임 시 KBS 1TV의 <일요진단> 엠시(MC)로도 활약을 했다. 그러다가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는 KBS 프로그램의 엠시 또는 앵커 자리를 정말 간절하게 원했던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7년 5월 말, 한국기자협회 주최 언론사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다. 전 해에 이 대회에서 우승한 KBS 팀은 8강에 진출하여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8강전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NFC)에서 있었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고 해서, 나는 전 해와 마찬가지로 8강전을 응원하러 갔다.

2007년에는 KBS 팀이 8강전에서 '머니투데이' 팀에 지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근방 식당에서 뒤풀이가 있었다. 고생한 선수들과 함께 술 한 잔을 나눴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박선규 기자(1999년 KBS 기자협회장을 지냈음)가 내 옆으로 와서는, 프로그램 진행을 잘 했는데, 왜 <일요진단>에서 내렸느냐, 다른 프로그램에서 엠시 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참 한심한 친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KBS 사장으로 온 지 벌써 만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프로그램 진행자를 사장이 정하는 줄 알고 있었으니…. 나의 재임시, 프로그램 앵커든, 엠시든, 특파원이든, 모두 각 본부 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1, 2 TV 뉴스 앵커를 정하는 경우에는 뉴스 제작팀 내에서 각 팀원들이 매긴 점수와, 보도본부 팀장들이 매긴 점수를 합쳐서 결정되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보도본부장이 점수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4~5 명의 성적과, 이들이 실제 뉴스를 어떻게 읽는지를 담은 카메라 테스트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항상 보도본부장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면 예외 없이 최고 점수자를 찍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그렇게 자율적으로 투명하게 뉴스 앵커를 정하고, 특파원을 선발하고, 프로그램 진행자를 정하고, 보도의 자율권을 확대했다. 보도본부뿐 아니라 다른 본부도 마찬가지였다. 사장인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자율의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었다. 

'자율의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들

박선규 청와대 전 대변인
 박선규 청와대 전 대변인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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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율적으로 앵커와 프로그램 진행자를 결정하는 일이 뿌리를 내렸는데도, 박선규 이 친구, 한심하게도 사장에게 그런 청탁성 발언을 했다(내게 앵커 시켜 달라고 청탁한 한 인물은 또 있었다. 지금 KBS 1TV  오후 11시 <뉴스라인> 진행을 맡고 있는 박상범 기자다. 그는 앵커 응모도 하지 않은 채, 앵커 결정되는 날 즈음, 그 자리를 원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내게 보낸 적이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증언 4'에 나오는데, 그 글에서 나는 앵커 청탁을 한 인물을 그냥 '박○○ 기자'라고만 적었다. 그런데 KBS 뉴스 앵커 가운데 박○○ 기자가 몇이 더 있어, 일반 독자들 가운데는 '엉뚱한 박○○ 기자'를 '인사 청탁을 한 인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음을 나중 알게 되었다. 다른 박○○ 기자들의 명예를 위해 박상범 기자의 이름을 밝힌다).

어쨌든 박선규 기자가 KBS의 앵커나 엠시 자리를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게 나중에 걷게 되는 '정치인의 길'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뛰어 들었다.

2008년 1월 말 또는 2월 1일에 KBS 기자 5명이 사표를 냈다. 4월에 있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박선규·안형환·신성범 기자가 한나라당 후보를 목표로, 장기철·배종호 기자는 민주당 후보를 목표로 사표를 냈다. 박선규씨는 서울 관악을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 공천에 도전했으나, 공천을 따내지 못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지 두 달 남짓 지난 뒤인 6월 말께, 청와대의 비서실 조직과 인적 구성이 바뀔 때 그는 언론 2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늦게 내 집을 찾아온 박선규 비서관

그러니까 박선규씨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오후 11시께 내가 살던 아파트로 찾아 온 2008년 7월 19일 토요일은, 그가 청와대 언론 2비서관으로 들어간 지 아직 한 달도 안 되던 때였다. 그는 이에 앞서 2주 전 쯤 KBS 내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있다. 청와대 언론2비서관으로 발령이 나자, 얼마 뒤 KBS를 방문하여 보도본부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 길에 사장실도 방문했다. 나와 둘이 마주 앉았다. 그는 "사장님 생각을 청와대에 그대로 전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즈음 늘 해오던 생각과 이야기를 다시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나라에 비로소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의 근본은 마련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과 고난을 치렀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게 수많은 희생과 고난을 통해 이룩된 이 민주주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KBS 사장 임기를 지키는 일은 바로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일이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다."

불과 몇 주 전 그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까지 했기에 7월 19일 오후 늦게 그가 내 집까지 직접 찾아오다니, 의아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 친구가 공을 세우려 애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로서는 나의 '자진 사퇴'를 얻어내는 일이 '큰 공'이 될 수도 있었을 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늦은 밤에 내 집을 왜 찾아 왔을까….

내 서재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했고, 청와대 안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선배들의 많은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물었다.

2주 전 쯤 그가 사장실에 찾아 왔을 때는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청와대에 전하겠다며 자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나더러 '자진 사퇴 가능성'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사장 임기에 대한 생각과 원칙의 문제는 이미 지난번 만났을 때 다 했으니, 더 이상 반복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이 자진사퇴만 해주시면..."

"사장님이 자진 사퇴를 하시면, 김인규 선배가 KBS 사장으로 오는 것은 제가 어떻게든 막겠습니다".

김인규 KBS 사장
 김인규 KBS 사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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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청와대 내 분위기가 이번엔 김인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그것도 MB의 후보 시절부터 따라 다닌 '핵심'도 아닌 처지에, 나의 '자진 사퇴'를 전제로 한다 치더라도, KBS 후임 사장에 김인규 특보 출신을 막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박선규 언론2비서관'의 힘으로 '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후에 판명된 대로 청와대가 '김인규 카드'를 잠시 접었을 뿐이었다. 2008년 8월 11일 내가 강제 해임된 뒤 있었던 후임 KBS 사장 공모 때 김인규씨는 공모 마감일 전인 8월 19일 공모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뜻밖의 인물'인 이병순씨가 KBS 사장이 되었다.

내가 자진 사퇴를 하면 '특보 출신' 김인규씨가 사장으로 오는 것을 막겠다고 하는 박선규 비서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는 전날 저녁 박승규 노조위원장에게, 그리고 그 즈음 나의 자진사퇴를 이야기했던 인사들에게 했던 말과 거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KBS 사장 임기를 지키는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무엇과 바꾸기 위해 흥정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랬더니 박선규 비서관 입에서 전날 저녁 박승규 노조위원장으로부터 들었던 말과 똑 같은 말이 나왔다.

"사장님은 KBS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군요".

참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저렇게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을까. 서로 종종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거나, 아니면 '정연주 체제'에 동의하지 않았던 KBS 수구 세력이 그런 생각과 가치를 공유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더라도 사용하는 단어와 발상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나는 박선규 비서관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 KBS 후배들, 당신과 생각이 비슷한 후배들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지금 한 이야기와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오. 어쩌면 그렇게 사용하는 단어까지 똑같을까".

그러면서 나는 그런 이야기 이제 그만 하자고 했다.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보면 그는 다시 그 이야기로 되돌아 왔다. 그러면서 자기가 청와대에서 자리를 잡고, 힘을 얻어야 되는데 선배들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선규 비서관과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궁중사극'의 주인공이 된 청와대 홍보실 3인방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엄경철) 파업 7일째인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 시민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김인규 KBS 사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엄경철) 파업 7일째인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 시민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김인규 KBS 사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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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듬해 8월 말,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MBC 앵커 출신인 김은혜씨와 함께 청와대 공동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지자체 선거 이후 최근 청와대 개편 때 이동관, 김은혜씨 등과 함께 3인이 모두 퇴장을 했다. 언론에서는 '궁중사극'으로 알려진 사건 때문에 모두 퇴진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궁중사극' 사건의 내용은 <오마이뉴스> 7월 6일자가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조직 및 참모진 개편을 앞둔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과 대변인들이 '내부암투' 논란에 휩싸였다. 평소 이 수석에 불만을 품은 박선규 대변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고, 김은혜 대변인이 이같은 사실을 이 수석에게 알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홍보수석실의 암투 의혹이 제기된 것은 <중앙일보>의 6월 19일자 기사. 당시 <중앙> 기사는 다음과 같이 청와대 내부사정을 전했다. 

"최근 A수석 비서관실 소속인 B비서관은 상관인 수석 몰래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A수석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B비서관의 입장에서 다룬 이른바 '발전방안'을 보고서로 낸 것이다. 청와대 개편을 앞둔 상황인 만큼 이런 행동이 미친 파장은 컸다. B비서관의 직보가 이뤄진 며칠 뒤 A수석은 자신의 조직에 관한 보고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통령에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B비서관을 불렀다.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했느냐'며 호통을 쳤다. A수석은 B비서관의 은밀한 보고를 어떻게 알았을까. 같은 수석실의 C비서관이 B비서관의 보고서를 빼내 수석에게 건네줬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밝혔다. 이들 관계자들에 따르면 B·C비서관도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했다고 한다."

5일 <오마이뉴스>의 확인취재 결과, A는 이동관 홍보수석, B는 박선규 대변인, C는 김은혜 대변인으로 각각 밝혀졌다. 이 수석은 1985년 <동아일보>, 박 대변인은 1987년 KBS, 김 대변인은 1993년 MBC에서 기자 생활을 각각 시작한 언론사 선후배들이다.

홍보수석실 사정을 잘 아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수석과 박 대변인의 성격 차이가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의 갈등 구도에 김은혜 대변인까지 끼어들어 결과적으로 세 사람이 으르렁거리는 구도가 됐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알려드립니다
 정연주의 증언 37편에 실린 '2008년 7월 18일 저녁 박승규 노조위원장과 술자리에 시민사회단체 인사인 양○○이 참석했다'고 기록한 부분에 대해  양○○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그렇게 기록한 부분에 대해 독자여러분과 해당 당사자에게 사과드립니다. 당시 정연주 사장이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이 전화했을 때 "시민사회단체 두 분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그 술자리에 갔을 때 누군가가 양○○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인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혀와 기사 일부를 정정했습니다.


태그:#정연주, #박선규, #박승규, #김인규, #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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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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