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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소국을 품에 안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남양주 금곡에 있는 홍유릉 덕혜옹주 묘에 보랏빛 소국을 바치고 사흘 후 권비영 작가의 꿈에 어느 소녀가 찾아왔다. 4년 전 대한제국을 재조명한 기사에 실린 사진 속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꿈 속 그 소녀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였다.

 

꿈에서 깬 후 '옹주께서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는 그녀는 그 기운을 받아 집필을 시작했고 50만을 울린 2010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되었다. 세차게 비가 오던 8월 10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무명작가에서 유명작가가 된 <덕혜옹주>의 저자 권비영씨의 강연회가 열렸다.

 

오마이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강연회를 신청한 시민들이 소설 '덕혜옹주'가 만들어진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는 권 작가의 말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권 작가가 4년 전 대한제국을 재조명한 기사에서 가장 눈길이 간 것은 덕혜옹주의 사진이었다. 옹주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덕혜옹주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던 중 혼마 야스코라는 일본 학자가 쓴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를 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덕혜옹주에 관한 책이다. 귀국의 역사에 관한 것이니 잘 살펴보기 바란다"는 헌사를 본 작가는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한국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는 반성을 했고 부끄러운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단편인 덕혜옹주의 삶을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집필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며 우리 역사에 대해서 무심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장 덕혜옹주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잘못된 정보도 많았다. 옹주의 묘가 대마도에 있다는 정보에 대마도까지 날아가기도 했고 옹주의 남편 다케유키가 추남이며 성격도 괴팍하다는 내용은 후에 자료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에서 작가는 다케유키를 덕혜옹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남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실제 1972년 다케유키는 옹주를 만나기 위해 낙선재에 찾아왔지만 옹주가 만남을 거부했다 <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 그래서일까? 일부 독자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막연하게 일본인이라고 해서 그녀의 남편을 악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소설에서 '복순'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소설에서 복순은 100% 허구적 인물이지만 복순을 통해 당시 빼앗긴 나라에서의 여자의 삶을 이야기했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망한 나라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것은 여자의 삶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복순을 통해 일제치하에서 여성들이 겪은 고통을 표현했던 권 작가의 눈은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많은 청소년들이 읽게 되는데 복순이 겪은 고통들이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걱정이라고 한다.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운명을 달리한 덕혜옹주를 위한 제사는 최근까지도 없었다고 한다. 출가외인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몇 년 전 어느 황실 관련단체에서 첫 제사를 지냈다.

 

대한제국 황실 황녀의 제사치고 너무 초라했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고 권 작가는 말했다. 하지만 <덕혜옹주> 출간 이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올해 4월 18일엔 덕혜옹주 묘에서 격식을 갖춘 제사를 지냈다. 초라했던 첫 제사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참석한 시민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권비영 작가는 대학생들에게 "가벼움이 걱정된다"고 이야기 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전 세대에 비해서 고생을 많이 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의식을 단단하게 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강연회를 찾아준 참석자들에게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를 끝으로 강연회는 마무리되었다.


태그:#덕혜옹주, #권비영,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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