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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라북도교육청 김승환 교육감은 법정 부담금(납입금의 3%) 납부의 불확실성, 고교평준화에 미치는 악영향 및 불평등교육의 심화 등을 들어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군산중앙고와 익산남성고의 지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하였다. 두 학교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동창회를 중심으로 교육감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는 극한 상황이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 전례에 따라 시정 명령을 내리고 직권으로 처분을 취소할 뿐 아니라 나아가 김승환 교육감을 직무유기로 형사고발 할 수도 있다는 태세이다.

1년에 200만원 내는 학교도 자율형 사립고라고?

자율형 사립고는 교육과정 편성 등에 자율권을 주는 대신 재정적 자립이 요구되는데, 최소한의 재정적 조건으로 "학생 납입금 대비 법인 전입금 비율이 광역시 5%, 도단위 3%"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 두 학교가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면 아마 논란이 덜했을 텐데 기준은 미달이면서 성적 상위자만 가려서 받는 특혜를 누리겠다고 하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두 학교 모두 법정전입금 기준에 턱없이 모자란 부실사학이었으며, 전북교육청은 이를 이유로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것 자체가 부실심사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규호 전임 교육감도 2009년 지정심사에서는 똑같은 이유로 자율형 사립고 신청을 반려한 바 있다. 과연 이 두 학교의 재정 상황이 어떠하기에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일까?

익산남성고와 군산중앙고의 재단전입금은 자율형사립고는커녕 부실사학 수준이다. 1년에 재단전입금이 200만원에 불과한 이런 학교가 어떻게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었는지 자체가 미스터리다. *표 금액 단위 (천원)
 익산남성고와 군산중앙고의 재단전입금은 자율형사립고는커녕 부실사학 수준이다. 1년에 재단전입금이 200만원에 불과한 이런 학교가 어떻게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었는지 자체가 미스터리다. *표 금액 단위 (천원)
ⓒ 학교알리미 편집(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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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알리미(스쿨인포 www.schoolinfo.go.kr)에 공개된 이 두 학교의 예·결산 현황을 분석해보면 이런 논란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두 학교 모두 자율형 사립고 최소 지정 기준인 학생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3%에 턱없이 모자라는 전입금을 납부하고 있었다.

익산남성고의 경우 2007년 재단전입금인 200만원은 전체 수입의 0.04%이며, 2008년 재단전입금 200만원은 전체의 0.02%밖에 되지 않았고, 2010년 예산에서는 400만원을 재단전입금으로 약정하여 전체 수입의 0.06%밖에 안 된다. 군산중앙고 역시 남성고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기준에 한참 미달인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2007년 5200만원으로 0.95%, 2008년에는 2500만원으로 0.4%밖에 되지 않는다. 두 학교 모두 재정자립도는 1%에도 못 미치고, 자율형 사립고 기준액에도 턱없이 미달이다.(2009년 자료는 학교알리미 미공개)

각 학교의 재단전입금이 익산남성고는 1년에 평균 200만원으로 전체의 0.03%, 군산중앙고는 3900만원으로 전체의 0.7%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재정적 자립을 조건으로 하는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되었는지 불가사의다. 지정 자체가 특혜이고, 심사 자체가 부실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학교 측에서는 지금까지 재단전입금이 미약하지만 당장 수십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약정까지 제출하면서 동문들의 기부금과 설립자의 사재 출연 등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장 수십억을 낼 수 있다는 재단이 왜 지금까지는 안 냈냐? 지금까지 없던 전입금이 하늘에서 떨어지냐, 땅에서 솟아나냐?"는 비아냥에 제대로 답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규호 전 교육감과 김승환 현 교육감, 누가 월권을 했나?

사실 이 두 학교에 대한 자율형 사립고 지정은 그 순간부터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2009년에도 똑같은 학교의 신청을 취약한 재정 상태 등을 이유로 반려하였던 전북교육청이 6·2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5월 31일 전격적으로 하나를 더하여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선거에 출마한 5명의 후보 중 4명이 자율형 사립고 지정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최규호 전 교육감의 이런 예상밖 결정이 분란의 불씨였다.

일각에서는 최규호 전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익산남성고 동문이라는 점을 들어 퇴임을 앞둔 교육감이 모교에 주는 선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이 두 학교를 제외하면 일반계 남자고교가 군산에 4개, 익산에 7개밖에 없어서 평준화 체제가 흔들릴 거라는 비판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교육청 앞에서 이리고, 원광고, 제일고 등 익산시내 인문계 고교 동창 40여 명이 "남성고를 자율고로 지정하면 나머지 3개 학교는 2류로 전락해 평준화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승환 교육감을 지지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자율형 사립고를 지정, 취소하는 것은 교육감의 권한인 것이 맞다. 한쪽에서는 "이미 지정된 자율형 사립고를 취소한 현 김승환 교육감이 월권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퇴임을 한 달 앞둔 전임교육감이 자기 모교에 특혜를 주기 위해 자격미달 학교에 특혜를 주는 월권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협의 절차 생략이 문제? 꼬투리 잡지 마라

자율형 사립고 지정과 취소의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는 데에는 법적인 이견이 없는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지정' 때와 마찬가지로 '취소' 때에도 교과부와 협의를 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초·중·등교육법 상에는 '지정'할 때에 교과부와 협의하여야 한다는 명문 조항이 있지만 취소할 때에는 규정이 없다. 그러나 교과부는 "행정 관례상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도 지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취소 시에도 사전에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북교육청의 자율형 사립고 지정 취소 처분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위반으로 판단, 즉시 시정 조치를 하겠다. 기간내 교육감이 취소하지 않는 경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직권으로 처분을 취소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나아가 앞으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법치 질서에 위배되는 교육감의 법령위반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제2의 김상곤 사태가 재발하는 것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교과부는 MB 정부의 정책 기조전환을 요구하는 교사들 시국선언에 대한 징계를 법원 판결 이후로 유보한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에 대해 이와 똑같은 논리로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자 직무유기로 고발하였다. 그러나 지난 7월 법원은 교사 징계는 교육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것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려 교과부는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교과부가 김승환 전북교육감에 대해서도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제2의 김상곤 사태를 초래하고 또 한 번 극한 대립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사실 교과부가 협의 절차의 생략이라는 절차상의 문제를 꼬투리 잡고 있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왜냐하면 자율형 사립고의 지정 또는 취소의 실질적인 권한이 시·도교육감에게 있고, 설사 취소 시에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협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교과부와 전북교육감의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생각이 다른 만큼 협의를 하더라도 동일한 결론에 이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교과부가 이번 사안을 문제 삼는 것은 협의 절차를 구실로 내세워 진보교육감에 대한 겁주기에 나선 것이며, 자율형 사립고를 더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율형 사립고라는 정책이 이주호 교과부 장관 내정자가 실제로 입안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이를 둘러싼 교과부와 전북교육청의 대립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가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마찬가지로 김승환 전북교육감마저 형사고발한다면 교육계의 화해는 요원해지고 우리의 지방교육자치는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1년 재단 전입금이 200만원밖에 안 되는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가 되고, 그 부실 심사를 지적하며 지정을 취소한 교육감에게 정부는 법적 대응 경고하고, 동문회 등은 퇴진을 요구하는 코미디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 관내 학교의 우수 학생 유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시장이라는 본분도 잊고 자신을 동문회장으로 인식하고 근무시간 중에 구시대적 색깔론을 꺼내며 막말을 해대는 이건식 김제시장은 이 이해 못할 꼴불견의 정점에 있다. 전북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에 따른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될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태그:#자율형사립고, #익산남성고, #군산중앙고,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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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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