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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클럽 회원들과 함께 중국 실크로드 역사탐방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는 약 160만㎢의 면적으로 중국 전체의 1/6을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중국 최대의 분지, 최고의 고원, 대 사막, 대 초원, 대 고비, 대 삼림은 웅대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황금과 중국의 비단을 바꾸고 불교와 이슬람문화를 전한 동서문물 교류의 접합점입니다. 신장의 실크로드는 사막과 낙타로만 여겨지던 과거 버려진 길이 아닌 천태만상의 자연환경과 다채로운 민속, 유전과 가스로 이어지는 막대한 지하자원을 가진 성장잠재력이 무궁한 곳입니다.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의 7박 9일간의 여정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중국 현대문학의 비조 노신은 "땅에는 본시 길이 없었다. 사람이 걷고 걸으면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 길은 낙양에서 출발해 지중해를 건너 로마까지 장장 2만리. 이 길을 실크로드라 부른다.

 

동서가 교통하고 무역하며, 한족과 서역 국가들이 싸우던 곳이다. 거기다 불교와 이슬람교가 특유의 미술과 함께 들어오던 통로였다. 또한 그곳은 모래먼지 속을 질풍처럼 달려가는 준마가 있고, 준마 위에 바람처럼 달려가는 스키타이가 활약한 무대였다. 그들은 기원전 6세기부터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내륙으로 몰려왔고, 한쪽에서는 몽골고원으로부터 고비사막을 건너 준거얼분지, 아니면 천산산맥에다 동그란 파오를 짓고 목축을 하고 살았다.

 

거기에는 알타이 산맥을 비롯 남북으로 뻗은 쿤룬산맥, 러시아 등의 여러 나라와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뻗은 천산산맥이 정상에 하얀 만년설을 이고 있었다.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 사이에는 준거얼분지, 천산과 쿤룬산맥 사이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이 만들어낸 타림분지가 있다. 동서의 고개요 지구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을 넘으면 카스피해, 흑해를 건너 지중해를 만난다. 여기가 바로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명명한 실크로드.

 

실크로드는 북방 유라시아의 스텝지역을 횡단하는 '초원의 길'과 중국 서북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사막지대를 경유하여 유럽에 도착하는 '사막의 길' 또는 '오아시스길'과 선박을 이용하여 중국 화남지역과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에 도달하는 '바닷길'이 있다.  

 

중국의 서역진출이 확인된 것은 2천 2백년 전 한무제가 장건을 시켜 서역을 공략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감숙성에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의 한사군을 두어 국방 및 행정을 강화했다. 실크로드 연도에는 몽골인, 아랍인, 이란인, 카자흐인, 만주인, 한족을 포함 47개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주종을 이루지만 불교, 유교, 기독교까지 뒤섞였다.

 

신장에 오면 '이색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신장의 독특한 자연경관과 중원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고대문화, 중화문화, 인도문화, 그리스 로마문화, 이슬람문화 등 다양한 문화적 충격이 한데 어우러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은 7월 25일 오후 7시 20분에 우루무치를 향해 인천을 떠났다. 공항에는 해외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67명이나 되는 일행 중에는 초등학생부터 79세의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이 존재한다. 일행을 이끄는 분들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국립중앙박물관 민병훈 박사. 민박사는 실크로드 연구에 20년 이상을 바친 실크로드 전문가다.

 

비행기는 4시간 반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불법을 연구하기 위해 서역에 갔다 평생을 바치고 돌아오지 못한 혜초, 원측 두 법사를 생각하며 잠깐 잠이든 사이다.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려는 데 벌써부터 이색적이다. 고등학생이나 될 법한 관리직원이 서있는 통로 위에 글자가 눈에 띈다. 한문으로 쓴 '공작원출입처'. 공작원? 북한 공작원? 하지만 '공작원'이라는 글자는 여행내내 따라 다녔다. 한국의 공무원을 공작원이라 칭한 것이다. 한국인이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단어다.  

 

우루무치엔 밤10시가 넘어야 해가 지고 섭씨 40도면 선선한 날씨라고 한다. 한국과 한 시간 차이가 나며 출근시간은 오전 10시, 점심시간은 오후 2시 반 , 퇴근시간은 7시 반이다. 여행자의 설레는 마음과 밤 12시가 넘어 피곤한 여행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형트럭이 길을 막고 도로공사 관계자와 싸움이다. 10분 이상 기다리다 가이드까지 합세해 겨우 뜯어 말리고야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한시가 넘었다. 가이드 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깁니다" 첫날부터 색다름의 연속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일행은 신장성 박물관에 가서 신장의 역사와 문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이날은 월요일이라 휴관일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열사의 사막을 누비며 실크로드를 연구한 민병훈 박사와 관장이 막역한 친구라 특별개관을 실시해 이날 우연히 박물관을 찾은 다른 관광객들이 덕을 봤다.

 

 
우루무치는 몽고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이다. 도시는 옛 실크로드 북로에서 약간 빗겨나 있다. 따라서 둔황이나 투루판처럼 도시 내에 역사 문화 문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루무치는 교통의 중심지로 베이징에서 출발한 장거리 열차가 멈추는 종착점이었지만 지금은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 열차 노선이 운행되어 좀 더 서쪽으로 갈 수 있다.

 

역사에 따르면 한나라 시대부터 우루무치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때 이미 한족들이 우루무치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고 당나라 시대에는 한족이 파견한 군대가 주둔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우루무치는 위구르자치구의 수도이면서도 신장지역 중 한족문화가 가장 많이 들어와 있다.

 

인구는 약 120만 명인데 한족과 위구르족 외에도 카자흐족 등 13개 종족이 모여 살고 있다. 작년에는 인종폭동이 일어나 192명이 사망했다. 혹시나 TV에서 봤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했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허긴 사람의 마음 속 깊은 심정을 어찌 알랴. 길을 가며 피부로 느끼기로 했다.

 

신장박물관은 우루무치시 서북부에 있으며 전형적인 위구르족 양식으로 지어졌다. 총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신장역사관에는 실크, 병기, 지폐, 고문서 등 5만여 종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구역에는 '민족민속 동부전람'으로 신장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재 전시실이다. 세 번째 전시실은 미이라 전시실이다. 박물관의 세 구역 중 하나가 미이라 전시실인 이유는 그만큼 신장 지역에서 미이라가 많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신장의 자연환경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가뭄과 폐쇄성에 대해 개탄하지만 건조한 기후가 아이러니하게도 천년의 역사와 미이라를 낳게 했다. 역사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하던 민병훈 박사가 한국인의 관광 습관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기록에 관한 습관을 비교하자면 한중일 삼국 중 한국인이 가장 서툴러요. 유적 문화재를 방문할 때는 느낌, 기록, 스케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밑바탕이 되어야 한국에서 노벨상도 나옵니다. 한국인은 관광지에서 사진만 찍습니다."

 

문명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전시실 유리관 속에 든 최초의 실크 조각을 보며 저게 그렇게도 멀고 먼 나라까지 목숨을 걸고 찾아와 교환한 원동력인가 하는 생각에 경건한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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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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