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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한?일 정부는 99엔(1300원) 문제부터 해결하라" 규탄 기자회견 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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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간, 혹은 수년간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1300원을 받았다면?

자장면 반 그릇 값도 안 되는 이 돈을 일의 대가로 손에 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초등학교 교육도 채 받지 못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향했다. 모국은 이웃 나라에 빼앗긴 상태였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중·고등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약속 받았던 '교육'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에 일터로 향해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침에는 된장국에 밥, 점심에는 주먹밥 하나, 저녁에는 단무지와 밥이 다였다. 이마저도 충분치 못했다.

그러기를 수개월, 혹은 수 년. 모국은 자유를 되찾았고 이들은 어렵게 돌아왔다. 하지만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혹시나, 연금 기록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11년 만에 '후생연금'이라는 것을 납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연금 탈퇴수당'을 청구했다. 그런데 그 금액이 '99엔', 한국 돈으로 1300원 가량이었다.

이들은 말한다. 적어도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은 받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법에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그동안 12~15세의 '소녀'들은 '할머니'가 되었다.

"살기 위해 일했다...그런데 이제 와 1300원이라니"

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중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맨 오른쪽)가 울먹이고 있다.
▲ 울먹이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중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맨 오른쪽)가 울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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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이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2일 오후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한 눈에 봐도 연로해 보이는 세 명의 할머니가 일본대사관 앞에 섰다. 김선호 광주시 교육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최봉태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 지부장 이상갑 변호사 등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이날 집회는 지난 달 27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에 불복해 신청한 심사 청구를 기각한 데 따른 항의 집회였다. 미쓰비시는 10만여 명을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강제동원한 1등 전범기업이다.

이날 참석한 세 명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양금덕(82), 김성주(82), 김정주(80)씨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결정에 일제히 분노했다. 양금덕씨는 일본대사관을 향해 "똑똑히 귀 기울여 들으라"고 말문을 연 뒤 "(내가 일본에 징용갈 때) 부모 데리고 재판에 문의하고 데려갔나, 그런데 99엔이 웬 말이냐"라며 분개했다. 양씨는 이어 "당연히 받을 대가를 정당히 할머니(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죽기 전 사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성주씨는 자신의 개인사를 들려주며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이제 와 99엔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일하는 동안) 얼마나 잠도 못 자고 시달리며 하루에 두 세 번씩 무서운 굴속에 들어갔는지 아나, 살기 위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지금 99엔은 아이 세 끼도 못 먹이는 돈이다. 그런 못된 것들이 세상에 어디 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작고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고 김혜옥씨의 아들, 안호걸(45)씨가 말을 이어갔다. 안 씨는 "재심사 청구가 기각되었을 때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꼈다"며 "일본 정부는 피해를 보상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자국민을 외면하지 말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안 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 어머니가 10대 초반에 항공기 공장에서 강제로 노역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면, 분노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안 도와주지"

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 후 양금덕 할머니(오른쪽)이 이번 후생노동성의 기각 결정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왼쪽은 역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중 한 명인 김성주 할머니.
▲ 분통을 터뜨리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2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심사 청구' 기각 규탄 기자회견 후 양금덕 할머니(오른쪽)이 이번 후생노동성의 기각 결정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왼쪽은 역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중 한 명인 김성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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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이들을 돕는 모임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일본 후생노동성의 결정에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강제연행과 불법노역, 인권유린을 자행한 일본정부가, 사죄도 부족할 판에 이제 와서 '법 규정' 타령인가"라고 규탄했다.

또한 이들은 성명서 마지막에 '한일 양국이 '99엔' 문제, '공탁금' 문제와 관련한 외교적 채널을 가동해 최소 올해 안에 이 문제를 매듭지을 것', '과거사에 대해 사죄할 것',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한 특별법을 즉각 제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인 2010년을 맞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자세와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동시에 촉구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또 다른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김정주씨는 기자에게 "(일본은) 죄를 받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먼저 일본으로 향한 언니 김성주씨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일본인의 꾐에 집을 떠나 후지꼬시 중공업에서 근로정신대로 일했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던 김씨는 "65년 세월을 환산해서 (보상해) 줘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옆에서 김씨의 말을 듣고 있던 양금덕씨가 한 마디를 보탰다.

"우리는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안 도와주지."

한편 이날 오후 양금덕, 김성주, 김정주, 안호걸씨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김희용 대표와 이국언 사무국장은 외교통상부를 방문, 정부 관계자와 면담했다. 오후 3시가 못 되어 시작한 면담은 8시가 다 될 때까지 이어졌다. 당초 이들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면담이 끝난 후 김희용 대표는 이날 면담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면담에 참석한 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미나 기자는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근로정신대, #99엔, #과거사, #후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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