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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일) 어머니와 난생 처음으로 단둘이 소풍을 갔다. 휴일이면 부모와 야외 나들이를 나가는 것이, 식사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인 요즘의 기준으로는 무슨 뉴스거리가 되냐고 반문 할지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일흔이 넘으신 어머니와 불혹을 넘긴 나는 단둘이서 어딘가에 '놀러'를 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어딘가 나다니 것'을 굉장히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해인 것을 알았고, 또 많은 자식들에 의해 '나 다니는 것을 싫어하신다'라고 인식되어진 이 땅의 많은 부모님들이 실은 자식들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풍으로 오랫동안 반신불구로 지내오셨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계신 어머니를 뵈러 나는 주로 일요일 오전에 간다. 요양원으로 향하면서 날씨가 흐리고 비교적 선선해서 오늘을 어머니와 단둘이 소풍을 가는 날로 정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일단은 어머니가 허락을 해야 하는데, 지난주에 넌 저시 운을 떼보니 놀랍게도 '네가 수고스럽지 않겠냐'고 하셨다. 이건 어머님의 어법으로서는 '강력한 긍정'의 표시다. 다만 휠체어도 챙겨야 하고, 어머니를 부축해서 차에 태워야 하는데, 차체가 높은 SUV를 구매한 나의 경솔함을 원망해야만 했다.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께 둘이서 간단하게 '구경'이나 다녀오자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그러자"고 하신다. 요양원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저렇게 말을 던지자마자 내 말에 동의를 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괜히 걱정거리를 주는 것을 우려해서 실명 직전까지 가고, 의사가 수술을 꺼리는 지경이 되어서야 나에게 '눈이 잘 안 보인다'고 고백하신 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대뜸 "그래 놀러가자"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나에겐 하나의 '사건'이다.

 

일단은 큰 키는 아니지만 요즘 제법 체중이 늘은 어머니를 차에 태워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순간 용기를 내본다. 나는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두 손으로 안아서 이동해본 적이 없다(물론 포옹도 해보지 못했다). 역시 같은 차로 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던 몇 년 전에는 간병인 아주머니와 둘이서 부축하고 낑낑대며 간신히 차에 태워드렸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고민을 했다. 사람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을 일에 대해 묘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여기서 간병인을 부른다면 어머니께서 심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어차피 돌아올 때는 나 혼자다. 그래서 용기를 내봤다. 어머니께 성한 한 팔로 나를 안으라고 말씀드리고 두 손으로 어머니를 안아서 번쩍 들어 올려 차에 모시기로 결심했다.

 

그 시도는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시도를 하다가 어머니를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온 힘을 집중시켜 어머니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마도 올림픽에서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역도선수의 희열이 이런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온전히 들어 올려서 내 차에 태웠던 것이다.

 

 

 

요양원을 내려가면서 어머니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창밖으로 구경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근처에 조성된 사찰 옆 공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달콤한 군밤도 사고 시원한 냉수도 챙겼다. 주말인데 한산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휠체어를 탄 노인과 동행한 중년 사내의 모습이 보통 풍경은 아니기에, 간혹 기분이 상할 정도로 기이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 한산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람 구경을 하고 싶으셨나보다.

 

꽃도 구경하고, 시원한 인공폭포도 구경하고 주변 건물들도 구경했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잽싸게 이동을 하고, 햇볕이 따가우면 그늘 속에서 풍경을 구경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는 건강하셨을 때 자주 놀러를 다닌(어머니 기준에서 자주라는 것은 5년에 한 번 꼴 정도가 아닐까) 절(직지사)이 어딨쯤 있냐고 자꾸 물어보셨다. 그 절이 우리가 구경중인 공원과 붙어 있는 지척이라고 말씀드렸었다.

 

절의 소재를 두어 번 언급하시기에 그 절에 구경 가고 싶으신 건가 싶어, 어머니께 여쭈니 "아니야, 안 간다"고 하신다. 가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보고 "그거 네 카메라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조그만 아이들이 지나가면 빤히 바라보시기도 했다.

 

아주 초라한 소풍이었지만 이제 물꼬를 텄으니 자주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야겠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꾸 근처에 있는 절로 화제를 돌리신다. 아무래도 절 구경을 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정말 구경을 가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과거의 추억 때문에 그러시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 '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어머니를 안아서 들어 올리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어쩌지?'하는 큰 걱정이 엄습해온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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