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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완전히 굴욕을 당한 겁니다. 굴욕!"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교과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은 전교조 쪽의 근거 없는 '조롱'은 아니었다. 이미 법원이 '김상곤 무죄 판결문'을 통해 교과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였다.

 

27일 오후 법원은 김 교육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는 교사 시국선언 행위가 '명백한'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원 징계권은 1차적으로 교육감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시국선언 교사와 정당 가입 교사들을 해임·파면 등 중징계하라는 '지침'을 지역 교육청에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법적 조치하겠다"는 교과부의 엄포는, 억지 주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교과부의 '굴욕', 법원 교과부 주장 조목조목 반박 

 

반면 "교원 징계권은 교육감에게 있다"며 교과부의 지침에 '반기'를 든 전국 6개 시·도 진보 교육감(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인은 11월 취임)들의 활동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와 같은 전망은 이날 법원 판결문에 모두 담겨 있다. 우선 법원은 "교사 시국선언 행위는 '명백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시국선언 행위가 집단행위 금지 등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행위인지 아니면 헌법상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권(특히 표현의 자유) 행사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며 "또한 선례로 삼을 볼 만한 대법원 판례도 없는 상태"라는 근거를 들었다.

 

이어 법원은 "교사 시국선언 행위는 교육공무원의 직무인 교육과정이나 학습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학습권의 침해가 문제된 사안도 아니다"고 밝혔다.

 

또 법원은 "검찰의 공소장 등 범죄처분결과통보가 있었어도 그동안 교육감이 내부종결, 경고, 주의 조치만으로 사건을 종결한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며 "그동안 관행을 보더라도 교육감에게 징계사유에 대한 1차적인 판단 재량이 있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교과부의 신속한 중징계 처분 지침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일침을 놓았다.

 

"교과부의 지침은 시국선언 교원들에게 신속하게 중징계 처분하는 방침인데, 신속하게 중징계 처분을 강행할 경우 헌법상 보장된 공무원의 신분보장제도를 침해할 수 있고, 다른 징계대상사범과의 형평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이런 법원의 결정으로 교과부의 정당 가입 교사 중징계 방침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교사 시국선언 '명백한' 징계사유 아니냐... 교원 징계권은 교육감에게"

 

교과부는 5월 23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교사가 정치자금을 불법 기부한 것은 중대하고 심각한 위법행위"라며 관련 교사 134명 전원을 파면·해임키로 하고 전국 16개 시·도교육감에게 중징계하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김상곤 교육감은 "정당 가입 교사들을 경징계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등 다른 5개 시·도 교육감들 역시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줘야 한다",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징계를 유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교과부는 다시 "법적 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한 교과부는 현행 교원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며 '교원평가제 시행을 위한 규칙 폐지(안)'을 발의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과 지난 13,14일 치러진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거부 선택권'을 보장한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미 일선 교육감을 고발한 초유의 일에서 패한 입장에서 다시 법적 소송을 걸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가 다시 법적 소송을 강행할 경우 '진보 교육감 발목잡기'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교과부가 소송 '남발' 지적을 무릎 쓰고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면 다시 '교육감 권한 침해'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협의나 타협이 아닌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교과부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편 시국선언 문제로 이미 징계를 받은 경기도 이외의 '시국선언 교사'들도 대규모 행정소송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지역의 시국선언 교사들이 징계를 받지 않거나, 경징계로 그친다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날개' 달아... 정당 가입 교사 대부분 경징계로 그칠 듯

 

이미 김상진 전교조 제주지부장 등은 지난해 12월 시국선언을 이유로 교육청에게 해임을 당했다. 김 지부장은 지난 4월 법원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았다. 판결 직후 김 지부장은 "벌금 100만 원과 선고유예라는 무죄에 가까운 판결이 나왔는데, 과연 시국선언이 해임과 정직처분을 내릴만한 사안이었는지 교육감에게 묻고 싶다"고 밝혔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김상곤 무죄 판결이 시국선언 문제로 이미 징계를 받은 교사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해임 등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이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엄 대변인은 "법원이 징계권이 교육감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앞으로 교과부가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미리 결정해 일선 교육청에 지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이날 재판 이후 "전교조 시국선언을 이끌어떤 교사들에 대해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되는 마당에 김상곤 교육감에게 무죄판결이 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 역시 "교육감은 범죄통보에 대한 형식적인 요건에만 재량권을 가질 뿐 실질적 판단은 징계위원회에서 해야 한다"면서 "이번 판결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항소의 뜻을 밝혔다.

 

물론 검찰이 2심 재판에서 승소해 교과부의 떨어진 위신이 다시 설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대결 이전에 교과부와 일선 교육청이 교육자치 시대에 어울리는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상곤 교육감도 재판 직후 "직선제 교육자치 시대의 단체장 징계권한과 재량권을 구시대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교육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무리하고 소모적인 갈등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교육계의 '대타협'이 이뤄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태그:#김상곤,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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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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