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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결혼하면서부터 함께 모았어요. 가져가서 거울왕자 완채군을 위해 써주세요"

 

한참 되었다. 나에게 그것을 가져가라고 한 지가.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러 가지 못했다가 지난 6월 말 정도에야 가지고 왔다. 바로 동전 꾸러미다. 얼마나 모았을까.  그들 부부가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니 적어도 2년은 모았을터.

 

참 알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쓰다 남은 잔돈을 돼지 저금통에 모아 살림에 보태곤 하는데 그들은 한 사람을 생각하며 내내 동전을 모았던 게다.

 

동전 주머니에는 50원 짜리 동전, 100원짜리 동전, 500원짜리 동전 등과 1000원짜리 지폐가 두어 장 들어 있었다. 

 

그것을 은행에 가서 바꿨더니 4만3340원이었다. 당장 거울왕자 완채군 계좌로 부쳤다. 14년 째 근육병으로 집에 누워 있는 완채군에게 그 부부의 사랑을 전한 것이다.

 

이번엔 동전, 지폐와 꽃 편지까지

 

그런데 20일 정도 뒤, 또 다른 분께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제가 몰래 드릴 게 있어요."

 

무얼까. 모임에 갔더니, 그 분이 나에게 무언가를 전해줬다. 마치 간첩이 동료와 몰래 접선하듯이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쇼핑백을 건넸다. 엉겁결에 주는 걸 받았들었는데 쇼핑백이 묵직했다. 무얼까. 생각 같아선 그 자리에서 뜯어보고 싶었지만 부탁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집으로 돌아와 무엇인지 궁금해서 당장 풀어보았다. 이것 또한 동전 꾸러미가 아닌가. 깨알같이 모은 동전들이 웃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봉투도 있었다. 아니 웬 봉투? 예쁜 꽃무늬 봉투를 열었더니 지폐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5만 원짜리 한 장과 만 원짜리 5장, 합이 10만원. 10만원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동전까지 함께. 그것도 편지까지 써서.

 

"완채군, 널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무지 많다는 것 알지. 힘내고 지금처럼 환한 웃음을 잃지 않길 바래. 밝게 웃는 네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 넌 알까? 화이팅. 또 한 사람의 수호천사가."

 

꽃 편지지에는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처럼 예쁜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걸 전해준 분이 평소에 이렇게까지 완채군을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역시 사랑은 표현해야 사랑인가보다.

 

만선의 소식을 전하는 어부마냥 싱글벙글 웃으며 만난 완채군

 

이번엔 은행으로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바로 전엔 완채군의 어머니가 은행가는 불편을 덜어 드리려고 직접 계좌이체를 했지만, 이젠 전해 줄 편지가 있어서 어차피 완채군의 집에 가야 했다.

 

나는 무슨 만선의 기쁨을 전하는 어부마냥 싱글벙글한 얼굴로 아내와 함께 그들을 만났다. 완채군도 완채군의 어머니도 오래간만에 모두 웃었다.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소 완채군이 좋아하는 나와 아내이니 두말해서 무엇하랴. 거기다가 다른 사람의 사랑 보따리까지.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가져간 편지를 완채군에게 읽어주니 흡사 연애편지라도 받은 것인양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어머니와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날 밤 꿈속에서 완채군은 자기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들과 놀이 공원에서 신나게 뛰어 놀지 않았을까.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 #완채, #거울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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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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