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마라톤 애호가다. 전남의 한 군에서 마라톤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읍내 경기장에서 동호인들과 훈련을 한다. 마라톤대회가 있는 날이면 거의 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해 전에는 100㎞ 울트라마라톤도 다녀왔다. 이 정도면 '마라톤광'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싶다. 이런 마라톤광이 운동과 친하지 않은 마누라를 집에서 그냥 쉬도록 놔뒀겠는가?
마라톤광 남편을 둔 나,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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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아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지만 당신 마누라는 아니거든. 마라톤광 남편 때문에 괴롭습니다. |
나를 마라토너로 만들기 위한 마라톤광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 열정에 맞추기 위한 나의 도전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내 도전은 약 7년 전 무주마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10㎞를 달린 적이 있다. 모유와 분유의 맛을 정확히 아는 4개월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어머니께 맡긴 채 말이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분유 한 병과 함께. 나의 의지는 결코 아니었다. 순전히 마라톤광의 강압에 못 이겨서였다.
8월 한여름의 햇볕은 뜨겁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얼마쯤 가다가 걸어 버렸다. 마라톤주자 한 분이 그러신다. "아, 여자 1등이세요?" 이게 뭥미? 21.0975㎞ 하프보다 5분 늦게 출발했지만, 뛰지 못하고 걷다보니 어느새 하프에 묻혀 버린 것이다.
마침 내리막길이라 힘을 내어 달리고 있는데, 하프 1등으로 안 것이다. 아니라 할 수도 없고 맞다 할 수도 없고 참…. 나중에 그 분이 하프 1등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낄 황당함을 뒤로 한 채 보폭을 최대한 넓혀 달렸다. 뒤에서 그런다.
"1등이라 그런지 잘 달리네." 마라톤 거리에 따라 접수번호가 구분되어 쉽게 알 수 있으련만, 하프인지 10㎞인지 구분을 못하는 그 분은 분명 마라톤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였나 보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마라톤광 때문이야, 누가 달린다고 했냐고, 내가 다시는 달리기 하나 봐라'는 생각을 하면서 달린 기록은 1시간 30분. 마라톤광의 하프 1시간 32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달리기와 친하게 지내지 않던 나는 '쌩' 땀을 흘려 생긴 두통과 움직이느라 고생한 근육통으로 며칠을 고생하며 끙끙 앓았다. 마라톤에 처음 입문하는 이에게 이러한 고통은 '달리기는 힘들다'라는 고정관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안 뛸 수는 없고, 뛰자니 괴롭고그래도 명색이 마라톤 동호회 회장의 마누라니, "뛰라"는 그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마라톤광 체면에 어느 정도 호응해 주고자 10㎞ 말고 5㎞를 달리면 어떻겠느냐고 절충안을 제시해 봤다. 마라톤광은 양보하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버티기 작전까지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멈출 줄 몰랐다.
3년 전 도민체육대회. 친선을 목적으로 한 대회였다. 번호표만 달고 운동장만 돌아서 나가라는 마라톤광의 달콤한 유혹에 그러자고 했다. 대회 당일. 구령대에는 대회 진행자가 달리는 사람의 번호를 일일이 불러가며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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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각종 부스들. 달리지 않고 저 부스들을 순회하면 얼마나 좋을까나. |
ⓒ 박윤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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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달리다 보니, 도저히 운동장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참가번호 00번. 꼴찌. 빨리 달리세요'라는 말을 들을까봐 운동장을 돌지 않고 구령대 아래 화장실로 들어가 번호표를 얼른 떼어 버렸다. 최소한 운동장 한 바퀴는 돌아가지 그랬느냐고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2년 전 도민체육대회. 마라톤광의 말처럼 있는 힘껏 달려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 기쁨도 잠시. 30여 분 동안 어떻게 달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책이 저만치 보였다.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직진할 때, 나는 조용히 우회전해서 옆길로 새버렸다.
때는 10월 말 수확 철이라 감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눈이 즐거웠으니 입도 즐거우라고 감을 두 개나 따먹었다. 끈질긴 마라톤광을 위해 감을 따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운동장으로 들어가서 감 하나를 내밀자 마라톤광 웃고 만다.
뛰었노라, 완주했노라, 계속 도전하노라그 이후로도 마라톤광의 끈질긴 구애는 계속되었다. 마라톤광은 간간이 대행접수를 해댔다. 접수비만 얼마나 날렸는지 모른다. 달리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성화였다. 어디가 아프다라고 말할라치면 늘 대화의 끝은 달리기였다. 5㎞라도 달리라고 했다. 이런 마라톤광에게 나의 인내심도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올해 4월 함평마라톤 대회를 다녀왔다. 비록 달리지는 못하고 중간에 걷기도 했지만 5km의 첫 공식적인 데뷔였다. 그러다 5㎞ 완주라는 사고를 친 것은 올해 6월 영광마라톤대회였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려 달리는 데는 더없이 좋았다. 4㎞를 통과한 지점부터 마라톤광은 옆에서 같이 달려주었다. 드디어 결승라인에 도착. 마라톤광의 끈질긴 강압(?)과 관심이 나의 도전을 성공하게 했다. 물론 아침, 저녁으로 운동한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완주했으니 끝이냐고? 천만에. 마라톤광은 호시탐탐 또 대행접수를 해댈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못 이기는 척, 접수비가 아깝다는 핑계로 한번 먼저 나서 볼까?